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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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에 걸렸던 건

사건도, 결말도 아니라

어른들이 안심하기 위해 선택하는 말들이었다.


다경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야기의 출발점일 뿐이다.

소설은 그 이후를 오래 붙잡는다.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언제쯤이면

이제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 질문들 앞에서

어른들은 끊임없이 말한다.

상황을 설명하고,

선택을 정당화하고,

서로의 결정을 확인한다.

그 말들은 대부분 틀리지 않다.

현실적이고, 상식적이고, 이해 가능하다.


그래서 더 불편해진다.


'여우 누이, 다경'은

아이의 고통을 확대하지 않는다.

눈물겨운 장면도,

극적인 폭발도 거의 없다.

대신 아주 사소한 순간들을 반복한다.

식탁에서의 말투,

아이를 부를 때의 호칭,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짧은 문장들.


그 작은 차이들이 쌓이면서

관계의 방향이 조금씩 바뀐다.

처음엔 배려였던 것이

나중엔 기준이 되고,

도움이었던 것이

어느새 침묵을 요구하는 조건이 된다.


이 소설은

누군가를 명확히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판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작가는 판단을 미루는 대신

상황을 오래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가 스스로

불편해질 시간을 갖게 만든다.


읽다 보면

다경보다 어른들의 표정이 더 또렷해진다.

아이를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서로를 의식하고,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조심스럽게 거리를 조정하는 모습들.


그 과정에서

다경은 점점 말을 줄인다.

그 침묵이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걸 말한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는데,

결국 말하지 않는 쪽이 생겨난다.


그래서 이 책은

불행한 아이 이야기라기보다

선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기록처럼 읽힌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상황을 닫아버리는지,

그리고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남긴다.


읽고 나서

마음이 정리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말이 느려진다.

도와준다는 말,

가족이라는 말,

책임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조심해서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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