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커피 괴담
온다 리쿠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평점 :
커피 괴담은 제목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서운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그 기대를 비껴간다. 이 책에서 공포는 소리도 크지 않고 형태도 분명하지 않다. 대신 아주 조용하게,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일상 속에 스며든다. 그래서 읽는 동안에는 무섭다는 생각보다 이상하다, 뭔가 좀 걸린다는 느낌이 계속 따라온다.
이야기들은 대부분 정말 사소한 장면에서 출발한다.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 여행 중에 들은 이야기, 예전에 들은 괴담을 가볍게 떠올리는 순간 같은 것들이다. 특별할 것 없는 상황이라 처음엔 긴장을 풀고 읽게 되는데 페이지가 조금씩 넘어갈수록 말과 말 사이에 생기는 빈틈이 점점 신경 쓰인다. 누군가는 너무 담담하고 누군가는 중요한 부분을 슬쩍 건너뛴다. 그 어색함이 쌓이면서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공포를 일부러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이상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대체로 크게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 버린다. 그런데 그 태도가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질문해야 할 것 같은 순간에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가고 그래서 대신 의심하고 불안해하게 된다. 공포가 이야기 안이 아니라 읽는 사람 쪽에서 완성되는 구조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이 책이 귀신이나 괴담보다 기억과 시간에 더 관심이 있다는 점이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마다 기억이 다르고 그 기억들이 겹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무엇이 사실인지보다,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말하는지가 더 중요해 보인다. 그래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진짜 있었던 일을 따지는 게 의미 없게 느껴진다.
또 인상적인 건, 이야기의 끝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깔끔하게 설명해 주지 않고 약간 열린 상태로 멈춘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도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진다. 읽을 때는 별것 아닌 장면처럼 보였던 부분이 나중에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괜히 특정 문장을 다시 확인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단편집이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느낌도 있어서 전체를 다 읽고 나면 하나의 긴 여운이 남는다.
다 읽고 나면 커피를 마시는 시간 자체가 조금 달라진다. 평소엔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대화나 침묵이, 사실은 아주 미묘한 균열 위에 놓여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커피 괴담'은 무섭게 놀라게 하는 책이 아니라, 조용히 생각을 붙잡아 두는 책이다. 빠른 전개나 강한 반전을 기대하는 사람보다는, 일상 속의 이상함과 설명되지 않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특히 잘 맞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