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 - 리추얼이 만드는 일상의 회복력
펄 카츠 지음, 정영은 옮김 / 북다 / 2025년 12월
평점 :
📘 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를 읽고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지켜준다는 생각까지
나는 리추얼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습관이나 정해진 형식은 사람을 굳게 만들고 생각 없이 따라 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삶은 어쩐지 재미없고 답답해 보였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할 때마다 이런 반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쉽게 꺼냈다.
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는 바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딱인 책이다. 이 책은 리추얼을 특별한 의식이나 전통적인 관습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행동들, 말을 건네는 방식, 감정을 표현하는 법, 애도하는 태도, 상담실에서 오가는 침묵까지도 모두 리추얼의 한 형태로 바라본다. 책을 읽다 보니, 나는 이미 수많은 리추얼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인상 깊었던 건, 리추얼이 감정을 통제하거나 억누르는 장치가 아니라 감정이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틀이라는 설명이었다.
예를 들어 장례와 추모 의식은 슬픔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커진 감정이 우리를 압도하지 않도록, 일정한 시간과 형식 안에 슬픔을 담아 두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언어에 대한 이야기도 비슷했다. 문법과 규칙은 자유를 막는 것이 아니라, 말이 가능해지는 조건이다. 규칙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그 안에서 각자의 말투와 표현, 개성이 생겨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규칙과 자유를 늘 반대편에 놓아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자유라는 개념 자체였다.
나는 그동안 자유를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는 상태로 상상해 왔다. 하지만 책은 완전히 규칙이 없는 상태는 자유라기보다 불안에 가까울 수 있다고 말한다. 예측할 수 있는 반복과 리듬이 있어야 사람은 그 안에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시나 음악, 예술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정해진 형식이 있는 소네트나 하이쿠 안에서 오히려 더 새로운 표현이 나온다는 점은,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낸다고 해서 삶이 정체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반복 위에서만 아주 작은 변화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리추얼을 무조건 긍정하게 된 것은 아니다.
집단적인 관습이나 국가적 의식은 때로 개인의 감정을 한 방향으로만 이끌고 불편한 감정이나 질문을 밀어내기도 한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슬퍼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순간, 리추얼은 치유가 아니라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이 책은 리추얼을 무조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건 그 리추얼이 나를 돕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억누르고 있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 점에서 책은 설득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판단의 몫을 남겨둔다.
이 책을 보고 나는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시간, 같은 길로 걷는 출근길, 반복되는 작업 습관 같은 것들이 단순히 지루한 루틴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 주는 리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반복이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무작정 깨뜨려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는 않게 되었다.
단단한 삶이란 대단한 결심이나 극적인 전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날들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는 이미 살아내고 있는 하루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읽고 나면 삶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 스스로를 너무 쉽게 무시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