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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패권 전쟁 - 미국과 중국이 촉발한 제2의 냉전
박종성 지음 / 지니의서재 / 2025년 12월
평점 :
AI 관련 뉴스는 넘쳐나는데 막상 그래서 이게 우리 삶이랑 무슨 상관이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피지컬 AI 패권 전쟁'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하려는 책이다. 이 책은 AI를 똑똑한 소프트웨어나 유행 기술로 보지 않고 국가와 산업, 그리고 사람의 이동을 바꾸는 현실적인 힘으로 설명한다.
책에서 말하는 피지컬 AI는 로봇이나 자율주행만을 뜻하지 않는다. AI가 공장, 물류, 의료, 군사 같은 물리적 세계를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변화가 기술 문제가 아니라 패권 경쟁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기술 설명보다는 미국, 중국, 유럽이 어떤 방식으로 AI를 키우고 통제하는지에 집중한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국의 위치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다. 인재 유출, 짧은 투자 회수 구조, 규제 중심 환경 같은 문제를 감정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왜 구조적으로 불리한지를 차분하게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중국이 인재를 끌어들이는 방식과 국가 서사의 역할을 비교하는 대목은 꽤 설득력이 있다. 덕분에 막연한 위기감 대신 우리는 왜 이 상황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의 장점은 과장이나 낙관론이 없다는 점이다. AI가 세상을 구해줄 것처럼 말하지도 않고 반대로 모든 걸 망칠 것처럼 겁주지도 않는다. 대신 국가 정책, 기업 전략, 인재 이동 같은 다소 딱딱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을 실제 사례와 함께 풀어낸다. AI를 뉴스가 아닌 현실의 문제로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최신 AI 기술이나 모델 구조를 기대한다면 아쉬울 수 있다. 이 책은 기술 설명서라기보다 AI를 둘러싼 큰 판을 이해하기 위한 책이다. 그래서 개발자보다는 정책, 산업, 사회 변화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더 잘 맞는다. AI 담론이 지나치게 가볍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신화화된 상황에서 이 책은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AI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왜 지금 국가들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다면 '피지컬 AI 패권 전쟁'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생각할 거리를 오래 남기는 책이다.
아울러 이 책은 기술 발전 = 자동적인 국가 경쟁력 상승이라는 흔한 도식을 의심하게 만든다. AI를 보유하는 것과 그것을 사회 전반에 안착시키는 능력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으며 피지컬 AI는 그 간극을 가장 가혹하게 드러내는 영역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특히 노동, 안전, 윤리, 군사적 활용처럼 불편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기술 외부의 변수로 밀어내지 않고 분석의 중심에 둔 태도가 인상적이다. 그 결과 이 책은 AI 담론 소비자를 AI 현실의 이해자로 이동시키는 드문 역할을 수행한다.
조용하지만 무게감 있는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