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사랑 - 우리가 무뎌진 것에 대하여
고영호.신혜령 지음 / 북스고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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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랑: 우리가 무뎌진 것에 대하여'는 사진가 고영호와 신혜령이 함께 쓴 에세이다. 제목만 보면 사랑에 대한 감성적인 이야기일 것 같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이 책은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차분하게 정리해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그 주변에 머무는 시간과 감각을 오래 바라본다.


책의 중심에는 사진 촬영을 통해 만난 여러 커플의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만남을 특별하지 않았다, 평범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 말에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며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특별하다는 시선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다만 그 특별함을 크게 강조하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장면들, 예를 들면 촬영 날의 날씨, 공기의 냄새, 어색한 표정이나 말 사이의 침묵 같은 것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보통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강렬한 순간이나 감정의 변화가 중심이 되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사랑'은 그런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비켜 간다. 대신 시간이 쌓이면서 생기는 안정감, 무뎌짐,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배려와 신뢰를 보여준다. 사랑이란 결국 큰 사건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문체 또한 이 책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 준다. 전반적으로 절제되어 있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사랑했다, 감동했다 같은 표현보다는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이 많다. 그래서 읽는 동안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기보다는, 천천히 따라가며 생각하게 된다. 독자에게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각자의 경험을 떠올릴 여지를 남겨두는 느낌이다.


다만 이런 담백한 문체와 반복되는 구조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이야기가 크게 요동치지 않고 비슷한 톤으로 이어지다 보니, 자극적인 전개를 기대한다면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중반 이후에는 내용이 조금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이 책이 선택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읽고 넘기는 책이 아니라 중간중간 멈추어 생각하며 읽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사랑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래 함께하는 관계에서 느끼는 익숙함과 무뎌짐, 때로는 지루함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함께 있기로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질문을 독자에게 조용히 던진다.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각자가 스스로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백이 많은 에세이다.


사랑을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사랑이 유지되는 상태를 보여준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들, 관계에 대해 한 번쯤 차분하게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책이다.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꾸준히 곁에 남는 사랑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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