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코드 가치 전쟁 - ESG를 둘러싼 새로운 자본주의의 얼굴
홍상범 지음 / 알토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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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와 ‘정의’라는 말이 왜 이렇게 복잡하게 느껴졌을까


처음엔 제목 때문에 트럼프를 옹호하는 책인가? 하고 약간 경계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책은 트럼프를 칭찬하는 책이라기보다 왜 트럼프 같은 인물이 계속 힘을 갖는지,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가치 싸움의 구조를 설명하려는 책에 더 가까웠다.


책에서 계속 나오는 단어가 ESG, PC, DEI인데, 사실 나는 이걸 그냥 좋은 일 하자는 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환경을 생각하고, 차별을 줄이고,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말이니까 당연히 좋은 방향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말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그래서 읽으면서 내가 너무 쉽게 동의해왔던 말들이 사실은 꽤 복잡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ESG 같은 가치들이 점점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나 관리의 방식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점이었다. 예를 들어 은행이 리스크라는 이유로 특정 고객의 계좌를 제한하는 디뱅킹 사례를 보면서 이런 결정들이 계속 쌓이면 결국 누가 사회의 기준을 정하느냐라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의로 시작한 기준이 언제든 조용히 누군가를 배제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꽤 불편하게 다가왔다.


젠더, 정체성, PC 담론을 다루는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어느 한쪽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왜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큰 갈등이 되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왜 분노하는지를 설명하려 한다. 읽는 동안 이건 좀 과한데? 싶은 부분도 있었고 반대로 이런 시각은 생각해본 적 없었다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오히려 책을 대충 넘기지 않게 됐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딱 떨어지는 결론을 얻은 건 아니다. 대신 질문이 더 많아졌다. 정의라는 말은 누가 쓰고 있는지, 좋은 가치라는 게 언제부터 규칙과 통제가 되는지, 기업이나 금융은 어디까지 사회를 관리해도 되는지 같은 생각들이 계속 남았다. 정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살아가는 사회와 직접 연결된 문제라서 더 크게 느껴졌다.


'트럼프 코드, 가치 전쟁'은 편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ESG나 PC 같은 단어를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기는 어렵게 만든다. 나처럼 이 주제에 대해 깊게 알지 못했던 사람도 한 번쯤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기에는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라고 느꼈다.


결국 이 책의 미덕은 독자를 특정 진영으로 설득하기보다, 너무 익숙해진 가치 언어들을 잠시 멈춰 세우고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불편함은 이 책의 결함이 아니라 의도된 효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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