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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함정
낸시 스텔라 지음, 정시윤 옮김 / 정민미디어 / 2025년 12월
평점 :
1. 두려움의 ‘회로’를 이해한다는 것
'두려움의 함정'은 두려움이란 감정 자체보다 두려움이 굳어진 회로 _예상된 상처에 자동반응하는 패턴_가 우리 삶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읽다 보니 예전에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괜히 속도를 늦추며 조금만 기다리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자신을 속이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건 실제 위험이 아니라 예전에 한 번 느껴본 상실감의 잔향이었다. 두려움이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들이미는 움직임이라는 설명은 그때의 나를 거의 그대로 비춰냈다.
2. 사람을 떠올리는 명상 장면에서 스친 기억
책 속 안내_나를 지지했던 사람 세 명을 떠올리며 호흡하라는 장면_을 읽다가 대학 시절 어느 밤이 겹쳐졌다. 큰 실패 후 침묵으로 옆을 지켜주던 친구가 있었다.
삶에는 당신을 수용하고 사랑한 사람들이 있다는 문장을 보는 순간, 그때의 공기와 체온까지 되살아났다.
단순한 명상 조언이 아니라 관계가 신경계에 남긴 안정 자원을 어떻게 다시 호출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 두려움에 얼어붙을 때 뜨뜻미지근하게 떠오르던 얼굴들이 사실은 나를 지탱한 증거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이해하게 됐다.
3. 두려움이 만든 오해—상대의 감정을 추측하던 시절
책에 대화가 없으면 우리는 상대의 감정을 두려움으로 판단한다는 대목이 있다.
20대 후반의 한 연애가 즉시 떠올랐다. 상대의 침묵을 거절로 해석하며 혼자 불안의 굴레를 만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상대가 아니라 내 과거의 그림자였다.
저자가 말하는 오래된 회로를 새로 배선하기란 누군가의 침묵을 더는 지난 상처의 반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훈련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사실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4. 결론—두려움은 없애는 게 아니라 새로 쓴다
후반부의 힘은 두려움을 제거하는 비법이 아니라 두려움에 반응하는 방식을 새로 쓰는 법을 알려주는 데 있다.
두려움은 결함이 아니라 신호다. 문제는 그 신호가 과거의 패턴 때문에 지나치게 커져 현재를 압도할 때다. 저자는 그걸 함정이라 부른다.
책을 덮고 난 뒤 남는 감각은 묘하게 가벼웠다. 두려움을 몰아내려 애쓰는 대신 두려움과 함께 앞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
결국 이 책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두려움은 그대로 있어도, 그 두려움을 다루는 나는 더 나은 쪽으로 변할 수 있다.
아울러 책이 제시하는 재배선의 방식이 단지 심리적 요령이 아니라 몸과 기억의 층위를 다시 읽는 하나의 훈련이라는 점도 또렷해졌다.
두려움이 끼어드는 순간을 포착하는 기술 그 미세한 징후를 해석하는 감각이 쌓이면 결국 삶 전체의 리듬이 달라진다는 통찰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기 이해의 매뉴얼이라기보다 오래된 존재 방식을 고치는 데 필요한 느리고 성실한 동반자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