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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인터뷰하다 - 삶의 끝을 응시하며 인생의 의미를 묻는 시간
박산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0월
평점 :
“죽음의 문턱에서 되찾은 삶의 온도”
- 사라지는 순간들 사이에서 발견한 인간다움의 기록
책을 펼치는 순간, 오래된 부엌 찬장에서 꺼낸 유리잔 같은 기운이 밀려왔다.
가볍지만 쉽게 깨질 수 있고 오래 다뤄왔기에 손에 착 감기는 그런 감촉.
죽음을 다룬 책이 이렇게 투명한 인상을 주다니 조금 놀라웠다.
초반 인터뷰는 말수가 적은 사람과 나란히 앉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같았다.
말의 리듬이 크지 않아서 더 선명하게 들리는 숨 그리고 말보다 더 오래 남는 침묵.
그 침묵 속에서 이 책은 사라지는 존재들을 위한 온도의 대화를 시작한다.
특히 마음 약한 이들을 오리에 비유하는 장면에서 나는 오래 들고 다니던 손거울을 떠올렸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한 물건이지만 정작 내 얼굴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건
그 손거울뿐이었다.
책 속의 비유도 그랬다.
타인의 결핍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선의 문제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이 책은 점점 조금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 어둠은 무섭지 않았다.
마치 밤 늦게 혼자 식탁 앞에 앉아 반쯤 마시다 남긴 미지근한 커피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쓴맛과 단맛이 모두 남아 있고 식어버렸지만 여전히 향이 살아 있는 커피 한 모금.
그런 조용한 쓸쓸함이 책 전체에 흐른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살아 있는 몸을 더 또렷이 느꼈다.
숨을 고르게 쉬고 등받이에 기대고 손가락 끝으로 종이의 결을 느끼고…
이런 사소한 감각들이 새삼스럽게 소중한 것처럼 느껴졌다.
죽음의 이야기가 오히려 삶의 외곽을 더 선명하게 밝혀주는 역설.
이 책은 바로 그 역설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본 기록이 펼쳐진다.
그 문장들은 오래 묵혀둔 설탕 단지가 굳어버린 모양처럼 조금은 투박하고
하지만 부서뜨리면 오히려 더 고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그 흩어짐 속에서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약하고 또 얼마나 단단한지를
나는 반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덮고는 아주 작은 과자의 부스러기가 손바닥에 남아 바스락거리듯
잔향이 오래 이어졌다.
이 책은 죽음을 말하지만 그 죽음이 결국 살아 있는 우리의 마음을 데우는 방식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조용한 여운을 손에 감싸 쥔 채 가만히 두고 싶었다.
한줄평
1. 죽음의 이야기로 삶의 온도를 되살리는, 드문 종류의 따뜻함.
2. 삶의 마지막 결을 쓰다듬는 조용한 손길 같은 책.
3. 사라져버린 이들의 빈자리가 어떻게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