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죽음에 관한 철학
나이토 리에코 지음, 오정화 옮김 / 이사빛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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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삶은 과연 충만한가?”


책은 우리가 죽음을 외면하는 방식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동시에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준다.

의료 기술은 죽음을 밀어냈고 가족 구조는 죽음의 경험을 분리했다.

죽음은 멀어졌지만 불안은 가까워졌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래 생각했다.

죽음을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감각이 사라진 시대.

그러니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충격이 된다.


죽음을 인식하지 않고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삶은 얇다.

살아 있는 이유가 아니라 살아지기 때문에 사는 느낌.


죽음을 아주 조금 더 가까이 두는 일.

그건 삶의 무게추를 다시 맞추는 일이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다.


나는 그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2. “철학은 죽음 앞에서 무력한가, 아니면 유효한가?”


책은 여러 철학자의 관점을 가볍게 스쳐가지만 그 스침이 의외로 명확한 결을 남긴다.

철학은 죽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꾼다.


그 언어가 중요하다.

우리는 죽음과 마주할 때 언어를 잃는다.

언어를 잃으면 생각도 멈춘다.

생각이 멈추면 불안만 남는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무지의 경계로

하이데거는 죽음을 실존의 중심으로

비스트겐슈타인은 죽음을 언어 바깥의 사태로 보았다.


철학은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하는 능력을 돌려준다.

그건 위로보다 더 단단한 도움이다.


나는 그 사실이 좋았다.

철학이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사유할 수 있다는 것.


3. “나는 어떤 죽음을 상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이 가장 깊었다.

책은 죽음을 영웅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담담하고, 조용하고, 생활적이다.

마치 오래된 가구 표면의 결을 만지듯 죽음을 쓸어본다.


나는 나의 죽음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단지 언젠가는이라는 추상만 품고 있었다.

그러니 삶도 추상적이었다.


어떤 죽음을 원하는가 라고 묻히자

삶의 우선순위가 갑자기 선명해졌다.

미뤄둔 일들.

쌓아놓은 관계들.

말하지 않은 말들.

그 모든 것의 자리를 다시 정렬했다.


죽음을 상상한다는 건

삶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책은 그 설계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생각해보라고만 말한다.

그 여백이 좋았다.


좋은 점

죽음을 일상적 감각으로 끌어내린다.

공포 대신 사유를, 회피 대신 응시를 제안한다.


철학사의 주요 흐름을 죽음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재조립한다.

짧은 문장인데도 흐름이 명료하다.


과장 없는 태도.

죽음을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는다.

조용한 목소리로 오히려 더 크게 말한다.


생각이 즉각적으로 정돈된다.

죽음을 말하지만 삶의 중심을 다시 잡게 한다.



아쉬운 점


깊이의 불균형.

하이데거나 비트겐슈타인 같은 무거운 개념을 덜어 설명하니 독해가 빠르지만 내용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문화사,사회학적 관점의 결여.

현대 사회의 죽음 경험 변화에 대한 분석은 있으나 더 넓은 스펙트럼을 기대하면 약간 허전하다.


철학 입문자에게도, 중급자에게도 약간 어정쩡한 지점.

쉬우면서도 갑자기 어렵고 설명적이면서도 생략적이다.

그래서 읽는 속도는 빠른데 남는 찬탄은 조금 얕다.



책을 덮는 순간, 마음에 조용한 바람이 불었다.

죽음을 이야기했지만 삶이 더 환해졌다.

이 책은 죽음을 공포의 영역에서 꺼내

생각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법을 가르쳐준다.


거대한 철학을 가볍게 요약한 책이 아니라

죽음을 사유하는 습관의 입구에 놓인 작은 스위치 같다.


그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 나는 지금, 조금은 다르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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