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대신 라면 - 밥상 앞에선 오늘의 슬픔을 잊을 수 있지
원도 지음 / 빅피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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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음식들은 단순한 메뉴가 아니라 작가가 살아남기 위해 붙들어온 작은 등불들이다. 우리는 종종 삶의 거대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실제로 우리를 버티게 하는 건 대부분 이렇게 작은 것들이다. 뜨거운 국물 한 입, 지글거리는 팬의 소리, 해장국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김. 그 순간의 감각들이 마음 한 구석의 얼음을 녹인다.


이 책에서 음식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것에 가깝다. 작가는 지친 몸으로 돌아온 밤, 배달 앱에 손가락을 올렸다가도 결국 라면을 끓이고 만다. 이유는 단순하다. 삶이 버거운 날일수록 무엇을 먹는지가 내 마음과 너무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면은 게으름의 상징이 아니라 감정을 감당할 체력을 다시 채우는 최소 단위의 의식이다.


짜장라면의 양파처럼 삶도 자주 매캐해지고 불닭볶음면처럼 화끈한 일들이 마음을 쓸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걸 먹고 지우고 다시 먹으면서 지나온다. 그 반복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좌절과 회복 사이를 오가며 그때그때 저렴한 위로에 기대고 또 그 위로 덕에 겨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

책은 이 흔한 일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흔함 속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온기의 형태를 집요하게 지켜낸다.


책장을 넘길수록 나 역시 내 삶의 허술하고 엉성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뜨거운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며 울컥하던 밤, 해장국 한 숟가락에 목이 뜨거워지던 아침, 길거리 포장마차의 조명 아래에서 처음으로 그래도 괜찮겠다는 미세한 희망이 일던 순간.

음식은 삶의 본질을 설명하지 않지만 삶의 결을 만져볼 수 있게 한다. 망가져도 다시 손에 잡히는 무언가. 마음이 텅 비어도 일단 끓는 물을 올릴 용기는 남아 있는 무언가. 그렇게 사소한 행위 속에서 인간은 다시 살아갈 근거를 얻는다.


이 책이 돌려주는 메시지는 크지 않다. 하지만 오래 남는다.

삶은 구멍 난 채로도 흘러가고 사람은 허기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어떤 밤에는 뜨거운 한 그릇이 그 허기를 잠시나마 살아 있음으로 바꾼다는 것.


바로 그 미세한 전환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하루를 건너간다.

사유는 결국 여기에 닿는다.

내 삶을 지탱해온 것도 사실 이런 작은 온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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