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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 23년간 법의 최전선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온 판사 출신 변호사의 기록
정재민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0월
평점 :
“사람에게 다시 마음을 열어볼까 고민하는 요즘, 이 책이 슬며시 등을 밀어줬다”
요즘 내가 제일 자주 하는 생각은 사람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이다.
나이를 더 먹을수록, 누군가를 믿는 게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니라
훈련과 회복을 통해 다시 배워야 하는 기술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누구에게든 환하게 마음을 열어두면 금세 다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의심만 하다 보면
내 마음이 먼저 작아지고, 말라버린다.
이 책은 바로 그 틈새에 있는 우리를 살피는 이야기였다.
책 속에는 여러 법정 사례가 등장한다.
드라마 같은 사건들이지만 결국엔
사람이 사람을 믿는 순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배신, 오해, 억울함, 용기, 그리고 뜻밖의 선의.
우리의 일상에서도 늘 반복되는 장면들이다.
읽으면서 이런 장면에 자꾸 멈칫하게 된다.
나도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했을까?
나는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 적이 얼마나 되지?
의심을 기본값으로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책은 믿음의 위험을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
사기를 당한 사람, 거짓말에 휘말린 사람, 말 한마디로 억울해진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래서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반대 방향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을 믿는 게 결국 사람을 살린다는 사실을
사건 속에서 꺼내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건 이거였다.
믿음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한 번 더 들어주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상대의 말이 조금 엉성해 보여도
혹시 내가 놓친 사정이 있을까? 하고
작게나마 여지를 주는 것.
그 작은 틈 하나가 때로는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기억이 있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를 상처 낼 거라는 법은 없다는 것.
내가 받은 상처는 나를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 있지만
그 방패를 너무 오래 들고 있으면
결국 나를 가두는 벽이 되어버린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이상하게도 몇몇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요즘 내가 조심스러워서 거리를 둔 사람들.
괜히 말 줄이고 피하게 된 사람들.
생각해보면 그들은 내게 특별히 잘못한 게 없었다.
그냥 내가 지쳐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속에서 이런 말을 꺼내본다.
조금 더 믿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조금 더 들어봐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아주 조금씩 마음의 문을 다시 열어보는 연습을 해볼까 한다.
이 책은
사람을 믿어도 된다고 쉽게 말해주는 책이 아니다.
대신, 우리가 왜 믿음을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그 믿음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짚어주는 책이다.
삶이 자꾸 거칠어지는 요즘,
내 마음의 기본값을 의심에서 여지로 살짝 돌려주는
그런, 은근히 오래 남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