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리뷰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반타 / 2025년 10월

📚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요즘 유난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같은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었는데 마침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겉표지를 보면 엄청난 SF나 철학적 미궁이 기다릴 것 같지만 실제로 읽다 보면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단단하면서도 또 얼마나 한계투성이인지를 차근차근 보여주는 이야기다.

해리는 죽을 때마다 같은 시점으로 다시 태어나고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삶을 반복한다. 그 설정만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하는 인생 리셋 판타지 같지만 실은 꽤 현실적이다.

아무리 많은 기회를 가져도 결정적인 순간에서 흔들리는 건 결국 인간의 마음 바로 그거라서다.

읽다 보면 문득문득 이런 감정이 들었다.

나도 똑같은 실수를 계속 하는 이유가 있지.

새로운 삶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삶을 조금 낫게 만드는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닐까.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해리의 반복되는 삶 속에서 지식이 늘어난다고 해서 성숙도 자동으로 쌓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게 참 인간적이다.

경험이 많아도 여전히 두렵고 기억이 많아도 여전히 외롭고 선택을 잘 알고 있어도 막상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순간들.

그건 우리 일상에서도 매번 반복되고 있지 않나 싶다.

“수십 번의 기회가 와도 사람이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무엇을 다르게 선택할 수 있을까?”

이 아주 소박한 질문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읽고 나면 삶을 극적으로 바꾸고 싶어진다기보다 그냥 내 하루의 어떤 장면을 더 정성스럽게 다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잠깐 멈춰 서서 오늘의 감정 하나, 말투 하나, 선택 하나를 다시 보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의외로 잔잔하고 은근히 따뜻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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