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가는 카피 손이 가는 브랜드 - 카피라이터 3년, 마케터 2년, 광고 같은 기록들
김화국 지음 / 시공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장을 펼치자마자 오래 묵힌 서랍을 여는 듯한 기척이 들렸다. 이미 알고 있다고 넘겨두었던 단어들이 다시 빛을 얻고 익숙한 감정들이 다른 결로 재배열되는 순간. 카피라이터의 기록이 이렇게 사적인 울림으로 번져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문장들은 짧고 간결하지만 그 여백이 오래 머물게 한다. 계절의 감각, 기계와 인간의 업데이트, 나이를 경계로 생기는 미세한 균열들까지… 작가는 아주 작은 경험의 조각들을 세심하게 꺼내어, 그것이 결국 한 사람의 사고를 어떻게 바꾸는지 들려준다. 광고라는 산업적 언어 뒤편에서 삶이라는 느린 엔진이 어떻게 구동되는지를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가장 반가웠던 지점은 업데이트라는 개념을 삶의 리듬에 끌어들이는 방식이었다. 기계의 업데이트는 불편하지만 명확하고 인간의 업데이트는 모호하지만 절실하다. 그 사이에서 망설이고, 자책하고, 다시 나아가려는 인간적인 몸짓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텍스트는 독자를 재촉하지 않고 그저 가능한 속도를 찾아 스스로 움직이도록 부드럽게 기울어져 있다.


읽다 보면 어느새 글쓰기의 조언이 아니라 존재를 유지하는 기술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진다. 좋아요에 녹아버린 감정의 값어치를 되돌아보고 행복이라는 단어의 무감한 사용을 경계하는 대목에선 단어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의 마음이 투명하게 보였다. 결국 이 책의 힘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 방법론이 아니라 온도에서 나온다.


책장을 덮고 난 뒤엔 손끝이 조금 조용해졌다. 아무 말이나 쉽게 쓰는 습관이 사라지고 문장 하나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시간을 건드리는 글이란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오래전 잊었던 감각이 되살아왔다.


1. 문장이 삶을 가만히 정비하는 법을 알려준다.

2. 사소한 감정의 결을 다시 만져보게 하는 책.

3. 단어 하나가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막 개봉한 연필에서 올라오는 나무 향처럼 선명했고 미지근하게 식은 라떼의 마지막 한 모금처럼 조용하고 솔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