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 아빠와 아들을 잇는 관계 인문학
김진용 지음, 정뱅 일러스트 / 파라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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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오래 묵혀둔 감정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았을까?

그건 성격도, 가치관도 아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김진용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부모와 자식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이 얼마나 구조적인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인간적인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가족 심리 에세이라는 형식을 빌려 실은 인간의 관계론을 다룬다.

아버지로서, 또 한 사람의 자식으로서,

저자는 자신이 겪은 20여 년의 부자 관계를 해부하듯 돌아본다.

의사이자 인문학자로서의 시선은 임상적이지만 동시에 무척 따뜻하다.

그는 감정의 상처를 치유가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다룬다.

즉, 아픔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 아픔이 만들어진 과정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


책 속에는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리어 왕과 코딜리아의 이야기. 

어린 왕자와 철로 교환수의 대화. 

작가 자신의 부자 관계 회고 등이 나온다.


셰익스피어와 생텍쥐페리를 인용하면서도 문학적 장식에 그치지 않는다.

리어 왕은 사랑을 측정하려 했고, 코딜리아는 말 대신 침묵했다.

그 비극은 결국, 표현의 실패이자 관계의 오해였다.

김진용은 그 고전을 현재의 가족 심리로 연결하며 묻는다.

사랑은 왜 늘 오해로 시작될까?


이어지는 어린 왕자 vs 철로 교환수 장에서는

현대인의 삶을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는 사람들로 그린다.

철로 위를 오가는 열차처럼 우리도 늘 무언가를 향해 바쁘게 움직이지만 정작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조차 모른다.

그 장면을 통해 작가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향한 마음의 방향을 잃었을 때 생기는 불안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 전체의 감정 구조에 대한 통찰이다.


좋았던 점은 무엇보다 그 진솔함이다.

김진용은 자신의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완벽한 아버지의 모델을 버리고

실수하고 반성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보여준다.

그 고백은 감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담백하고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감정의 표현이 절제돼 있지만 그 안에선 인간의 진심이 깊게 울린다.

의사로서 가족의 마음을 진단하되 철학자로서 관계의 윤리를 성찰한다.

리어 왕을 인용하면서 그는 말한다.

사랑의 언어는 권위의 언어가 아니라, 실패의 언어다.

그 한 문장이 이 책의 전체를 요약하는 듯했다.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서사의 긴장이 조금 느슨해지고

심리학적 분석보다 개인적 회고의 비중이 커진다.

서툰 아빠의 이야기가 다소 단선적으로 흐르며

아들의 시선이나 목소리가 충분히 재현되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이 불균형조차 현실적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란 언제나 한쪽의 언어가 다른 쪽보다 크고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멈춰 서서, 내 안의 서툰 사랑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이 책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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