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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로딘 ㅣ 책꿈 9
캐서린 애플게이트 지음, 찰스 산토소 그림,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5년 9월
평점 :
표지 속 반짝이는 곰이 너무 귀여워서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펼쳤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졌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이 책이, 오히려 어른이 된 나를 향해 속삭이는 것 같았다.
처음엔 마법이 등장하는 설정 때문에 흔한 판타지일 거라 짐작했지만 그 마법은 주문이나 환상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마음과 기억,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에 가까웠다. 작가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이야기의 바탕을 쌓아간다. 선물이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관계의 표식이 되고 신뢰의 증거로 변한다. 어릴 적,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려다 머뭇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잠시 책을 덮었다.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건네는 행위로만 완성된다는 것을, 이 책은 마법보다 더 솔직하게 보여준다.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간질거렸다.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껴안는 장면들. 그 순간마다 언어가 작아지고 대신 감정이 커진다. 특히 마법을 믿지 않아라는 말이 나올 때, 그 부정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믿음이 느껴졌다.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뜻함이 존재한다는 사실. 어쩌면 그 자체가 가장 오래된 마법일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숲으로, 생명으로, 그리고 인간의 욕망으로 번져가면서 긴장감이 서서히 쌓인다. 하지만 끝내 '윌로딘'은 파괴가 아닌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다투고, 오해하고, 상처를 주고받지만 결국은 서로의 손을 다시 잡는다.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고요해서, 마치 오래된 숲의 숨결을 듣는 듯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도, 여전히 그 가능성을 믿게 되는 이야기.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단순히 따뜻하거나 예쁜 동화로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 무너졌던 믿음과 오래된 두려움을 건드린다. 마법이란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니라 자신을 회복시키는 용기라는 걸, 이 책은 아주 은근하게 가르쳐준다.
마지막 장에 적힌 문장,
“지구는 나이가 많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
세상이 아무리 낡고 반복되어도, 우리의 마음만큼은 새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
'윌로딘'은 어른이 되어 잃어버린 믿음을 되찾게 하는 책이다. 그 안의 마법은 현실보다 조용하지만, 훨씬 더 진짜다. 책을 덮는 순간, 내 마음 속에서도 작은 불빛 하나가 켜졌다. 그것은 아마도, 여전히 누군가를 믿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다시 세상을 사랑해보려는 의지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