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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몸은 과학이 된다 - 죽음 이후 남겨진 몸의 새로운 삶
메리 로치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빌리버튼 / 2025년 9월
평점 :
어느 날 문득, 죽은 뒤의 나는 어디로 갈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묘하게도 그때 내 손에 들어온 책이 바로 메리 로치의 '죽은 몸은 과학이 된다'였다.
제목이 주는 느낌은 냉정하고 조금은 차가웠지만, 첫 장을 읽는 순간 알았다.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이야기라는 걸.
누군가의 몸이, 숨이 멈춘 뒤에도 여전히 세상 속에서 작동하며 다른 생명을 돕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도 숭고했다.
시체, 부패, 해부 같은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조금은 긴장했지만, 메리 로치의 문장은 잔혹함이 아니라 경이와 존중으로 가득하다.
그녀는 인간의 몸이 해부대 위에서 어떻게 과학으로 환생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진실을 외면하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포푸스 연구소의 발표 장면에서 숲속에서 죽어가는 엘크 사슴은 땅에 드러눕는다. 그런데 인간은 왜 예외여야 할까.라는 구절을 읽으며 한동안 책장을 덮지 못했다.
자연은 늘 순환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부정하려 한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내 몸도 흙으로 돌아가, 다시 누군가의 생명 속으로 흘러들어가면 좋겠다고.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죽음을 다루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데 있다. 메리 로치는 특유의 블랙유머로 불편한 진실들을 부드럽게 감싼다. 예를 들어 시신을 실험에 사용하는 의학 교육 현장을 묘사하면서도, 그녀는 냉정함 속에서 인간의 따뜻한 면모를 포착한다.
“시신은 태우면 되돌려보낼 수 없으니까요.”
이런 문장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동시에 죽음의 윤리적 무게를 깨닫게 만든다.
그녀는 죽음을 경외하지만 결코 신성시하지 않는다.
죽음은 그저 삶의 연속선 위의 한 지점일 뿐이라고, 조용히 말한다.
책을 덮고 나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뒤에 더 진실하게 세상과 연결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생은 짧고 연약하지만, 그 끝에서조차 누군가에게 지식이 되고, 배움이 되고,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면, 그건 가장 인간적인 죽음 아닐까.
‘죽은 몸은 과학이 된다’는 결국 삶을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책이다.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이해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음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향한 가장 뜨거운 찬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