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하루 - 공감의 뇌과학
에벨리너 크로너 지음, 곽지원 옮김 / 에코리브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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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뇌의 하루’라는 제목이 좀 딱딱하게 느껴졌다.

과학책이라면 왠지 어려운 용어나 실험 이야기로 가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전혀 달랐다.

에벨리너 크로너의 '뇌의 하루'는 과학책이면서도 따뜻했고, 실험보다 사람 냄새가 났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괜찮아, 뇌는 원래 그런 거야”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하루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뇌가 어떻게 일하고 쉬고 감정을 느끼는지를 보여준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뇌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화를 내거나, 심지어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실 때도 뇌는 수많은 신호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걸 단순히 전기적 활동으로 설명하는 대신, 작가는 그 안에서 인간다움을 찾는다.

그래서 과학인데도 묘하게 시적인 기분이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우리가 공감할 때, 뇌는 실제로 상대의 고통을 느낀다는 부분이었다.

이걸 읽는데 괜히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 괜히 마음이 아픈 이유가, 단순히 착해서가 아니라 정말 내 뇌가 그렇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니.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건 결국 생물학적으로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게, 왠지 믿음직하게 느껴졌다.


겨울철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설명도 인상 깊었다.

햇빛이 부족하면 멜라토닌이 엉키고 피로가 쌓인다는 대목에서

작년 겨울 내내 무기력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땐 그냥 내 의지가 약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게 단순히 호르몬의 장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책 한 권이 이렇게까지 자기합리화를 도와줄 줄은 몰랐다.


음악과 예술에 관한 장도 정말 흥미로웠다.

음악을 들을 때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mode network)가 활성화된다는 부분.

그게 바로 생각이 자유롭게 떠돌게 하는 뇌의 회로라니!

나는 가끔 새벽에 이어폰으로 슈베르트를 듣는데,

그때마다 아무 이유 없이 옛날 일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게 그냥 감상적인 기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뇌가 자유롭게 산책하고 있던 거였다.

과학이 이런 감정의 순간을 이렇게 예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책의 끝에 가서는 좀 이상한 평온함이 찾아왔다.

뇌가 매일 수십억 개의 뉴런으로 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조금은 겸손해졌달까.

내가 나를 통제한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뇌가 나를 조용히 이끌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끔 멍하니 있다가도 이건 내 탓이 아니야, 뇌가 잠깐 쉬는 중이야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책을 덮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뇌는 매일 86억 개의 뉴런으로 합창을 벌인다는데,

내 뇌는 그중에서 자꾸 음정을 틀리는 테너 같다.

하지만 괜찮다. 완벽한 연주만이 음악은 아니니까.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금 삐걱거리고 불협화음이 있어야 그게 사람의 리듬인 것 같다.

'뇌의 하루'는 그런 나의 엉뚱한 리듬마저도 따뜻하게 이해해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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