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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 그림자의 환영 3 : 조각난 하늘 ㅣ 전사들 6부 그림자의 환영 3
에린 헌터 외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5년 9월
평점 :
책 표지에 그려진 두 마리 고양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야 비로소 첫 장을 펼쳤다. 그들의 눈빛은 이상할 만큼 슬프고 단단했다. 세상의 무게를 다 알고 있는 존재처럼, 그러나 여전히 그 속에서 살아가려는 생명처럼.
이 책의 표면적인 줄거리는 숲속 부족 고양이들의 생존기이자 신념의 대립이다. 하지만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명백히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다. 서로 다른 진영과 사상, 상처와 오해가 얽혀 있는 세계 속에서, 고양이들은 그 나름의 윤리와 충성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충성의 방향이 엇갈릴 때, 그들은 싸우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이 믿었던 별빛마저 의심하게 된다.
별족(StarClan)의 존재는 흥미롭다. 그들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과 믿음이기도 하다. 별족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신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와 기억이 무너지는 일이다. 이 점에서 에린 헌터는 의외로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고양이들이 별빛을 올려다보며 조언을 구하는 장면은, 인간이 신이나 양심 혹은 과거의 기억에 말을 거는 장면과 닮았다.
울더하트의 내적 혼란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인간적이다. 그는 충성과 사랑, 의무와 자아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린다. 이 고양이는 단순히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 조각난 하늘 아래 서 있는 모든 존재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자기 안의 균열과 마주하게 된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한때 잃었던 별족. 즉, 믿음과 소속의 감각을 떠올렸다.
어릴 적 길고양이에게 우유를 주던 기억이 유독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 나는 보호자도, 구원자도 아니었지만, 잠시나마 그 생명에게 따뜻한 존재였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위로가 되었다. '조각난 하늘' 속의 고양이들은 바로 그 순간의 신뢰 위에 공동체를 세운다. 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어진 무리. 그리고 그 믿음이 흔들릴 때, 그들은 다시 별빛을 향해 묻는다. “나는 옳은 길을 걷고 있는가?”
이 책이 진정으로 빛나는 지점은, 싸움의 장면이 아니라 지켜내는 마음에 있다. 고양이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오해하고, 떠나지만, 그 모든 과정 끝에서도 여전히 서로를 품는다. 에린 헌터는 이 단단한 유대감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생존 속에서 간신히 지켜낸 인간(혹은 고양이)의 품격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가 별자리처럼 오래 남는다. 불완전하고, 깨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반짝이는 존재들로.
'조각난 하늘'은 쉽게 잊히지 않는 책이다. 별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은 존재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계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언젠가 우리도 그 고양이들처럼, 자신을 용서하고 새로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 것이다. 별빛이 아니라도 괜찮다. 그저 누군가의 발 밑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마음이면 충분하니까.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빛을 잊을 뿐.”
'전사들: 그림자의 환영 3 _ 조각난 하늘'을 읽고, 나의 밤에 새겨둔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