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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이 나에게 - 인생은 짧고 수영은 길다 ㅣ 나에게
김찬희 지음 / 몽스북 / 2025년 9월
평점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완벽보다 '지속'을 향한 물결, 내 삶을 닮은 에세이 『수영이 나에게』
오늘은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 책, 김찬희 작가님의 수영 에세이, '수영이 나에게'를 소개한다. 표지의 잔잔하면서도 깊은 물빛 컬러처럼, 이 책은 "인생은 짧고 수영은 길다"라는 부제 아래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라는 담백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수영 기술이나 노하우를 배운 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특히 책에 등장하는 수영하는 일상, 버티는 마음에 관한 기록이라는 문구는 마음을 깊숙이 건드렸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잘 해내려고 애쓰지만 사실 삶은 버텨내고 지속하는 힘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 꾸준함이 빚어낸 일상의 철학
작가님은 무려 11년 동안 수영을 해오면서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물 흐르듯 잔잔하게 들려준다. 새 수영 장비에 대한 헛된 기대, 강습반에서의 미묘한 심리전, 그리고 무엇보다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책 속에서 작가님은 수영을 쉬고 싶어 하는 마음과 싸우며 이렇게 말한다. 100가지라면, 수영을 쉬거나 그만둘 이유는 뽑아봐야 한 가지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재미없어지고 심드렁해졌다는 건 꽤 큰 타격을 안겼다. 이 구절을 읽는데, 나의 회사 생활 슬럼프가 그대로 겹쳐졌다.
나는 작년까지 15년 차 직장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재미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습관처럼 출근하고 있었다. 잘 하는 사람이 되려고 미친 듯이 달렸던 신입 때의 열정은 사라지고 그냥 꾸역꾸역 버티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우울했다. 수영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가 재미없음 단 한 가지인 것처럼 내 직장 생활이 힘든 이유도 큰 문제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동력 상실 때문이었던 거다. 거창한 위로 대신, 이 담백한 문장 앞에서 나는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삶이란 원래 지속의 문제구나 하고 큰 안심을 얻었다.
🌊 느려도 괜찮아, 구부러져도 괜찮아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자녀의 수영 강습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작가님의 아이가 남들과 다르게 평영 발로 자유형 팔 동작을 하자 코치가 당황스러워했다. 그때 아이가 아빠, 다를 뿐이지 틀린 건 아니에요. 느릴 뿐이지 못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한다.
나는 늘 네모반듯하게 살려고 애썼던 것 같다. 정해진 커리어 패스, 완벽함, 흐트러짐 없는 모습... 이 장면은 나에게 꼭 네모반듯할 필요는 없다. 구불구불하고 휘어진 골목길이 있어야 도시가 숨을 쉴 수 있다는 작가님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몇 년 전, 내가 프로젝트에서 실수했을 때 상사에게 꾸중을 들었던 날이 떠올랐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나는 내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 실패 때문에 한동안 무력감에 빠졌다. 하지만 아이의 다를 뿐이지 틀린 건 아니에요라는 말과 이어지는 구부러졌다고 쓸모없는 게 아니라는 작가님의 깨달음은 내 삶의 흉터에 따뜻한 연고처럼 발렸다. 자유형을 하다가 어깨가 아프면 평영으로 바꿔도 되고 정해진 자세를 고집하지 않아도 되는 수영처럼 내 삶도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유연한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수영이 나에게'는 수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분들에게도 버티는 삶의 미학을 전해주는 책이다. 물속에서 오직 숨쉬기만을 생각하며 물살을 가르는 행위처럼 우리의 삶도 결국은 욕심을 버리고 힘을 뺄 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느려도, 가끔 구부러져도 괜찮다. 우리 모두 각자의 속도로 계속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오늘 밤은 이 책을 덮고, 내일의 물살을 헤쳐나갈 작은 용기를 얻어본다.
수영이 주는 고요한 위로처럼, 당신의 오늘 하루도 잔잔하게 흘러가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