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현무계획 - 맛 좀 아는 먹브로의 무계획 유랑기
MBN <전현무계획> 제작팀 지음 / 다온북스 / 2025년 9월
평점 :
책을 펼치자마자 훅 끼쳐오는 낯익은 화면의 냄새가 인상적이다. MBN 예능 '전현무계획'의 그 생생한 순간을 활자로 고스란히 옮겨낸 듯, 그들의 유쾌한 여정이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다. 방송을 가볍게 즐겨보던 시청자였던 내게 이 책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더 깊고 묵직한 울림을 안겨주었다. 방송에서는 웃음과 리액션으로 빠르게 장면이 전환되지만 책 속에는 여행지의 공기, 계절의 변화,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촘촘하게 담겨 있다. 이는 단순한 먹방이 아닌, 삶의 정수를 포착한 한 편의 로드 먹큐멘터리로서의 가치를 입증한다.
특히 계획 없는 게 계획이라는 이들의 여정 방식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늘 여행을 갈 때면 빽빽한 계획표를 짜놓고 오히려 그 일정에 쫓겨 쉬는 순간에도 마음이 불편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방식은 그 반대였다. 발길 닿는 대로, 현지인들의 솔직한 추천을 받는 대로 움직이며 그곳의 진짜 맛과 사연을 접하는 태도에서 묘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꼈다. 이는 우리의 삶 또한 완벽하게 설계하기보다, 때로는 우연과 인연에 몸을 맡기고 흐름대로 즐기는 유연함이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허름한 국밥집의 정성, 길 위의 밥상에 스미다
책을 읽는 동안 오래전 기억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혼자 살던 시절, 집 근처 시장 골목에서 우연히 들어갔던 허름한 국밥집이었다. 단출한 메뉴판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이 이거 오늘 잡은 고기라 맛있어라며 직접 챙겨주시던 따뜻한 손길과 진심 어린 정성이 지금껏 가슴에 남아 있다. 그날의 밥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내는 경험, 그리고 고단했던 나를 잠시 쉬게 해주는 따뜻한 위로이자 휴식 같은 순간이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현지 맛집들이 바로 그런 깊은 기억과 감정을 다시금 끄집어내 주었다. 화려함이나 SNS 성지 같은 유명세와는 거리가 멀지만, 진짜 삶의 맛과 사람 냄새가 응축된 곳들 말이다.
먹는다는 것, 결국은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
이 책은 단순히 맛있는 식당 정보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 지역의 역사, 고유한 풍경, 그리고 음식이 탄생하게 된 가슴 따뜻한 사연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그 과정을 통해 독자는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생존을 넘어 우리의 삶과 깊숙이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전라도 남도의 소박한 가족 밥상에서는 어머니의 온기를 떠올리고 울산 언양불고기를 읽을 때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야외에서 구워 먹던 추억의 시간이 겹쳐진다. 먹어야 살아간다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먹는다는 건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였다는 것을 새삼 절감한다. 음식을 매개로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나와 곁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을 덮고 나니 괜스레 마음이 잔잔한 감동으로 차오른다. 길 위에서 만난 소박하지만 진심 어린 밥상 하나가 내 하루를 든든하게 지탱해주고 그 밥상을 함께 나누는 곁의 사람과의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입니다. '전현무계획'은 결국 음식이라는 가장 친숙한 창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깊은 성찰의 책이다. 가장 진솔한 만남은 테이블 위에서 시작되기에, 나는 오늘,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함께 진한 밥 한 끼 하자고 말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