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 추천! 스타 라이브러리 클래식
다자이 오사무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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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


나는 한때 너무 평범해서 고민이었다. 눈에 띄게 잘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그저 그런 삶. 모두가 비슷한 길을 걸을 때 나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나니, 나의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인간으로서의 자격 자체를 의심했던 한 남자의 고백록이자,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다.


책의 주인공 요조는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로 정의한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재미없는 농담에도 크게 웃고 속으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저 동조하며 살아간다. 이런 모습은 마치 사회생활을 하는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회의 시간에 이해가 안 돼도 고개를 끄덕이고 별로 재미없는 회식 자리에서도 척 웃으며 분위기를 맞추는 나. 어쩌면 나도 세상 사람들에게 인간 실격을 당할까 봐 두려워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특히 책 속의 한 장면은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요조가 평생 잊지 못할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검사 앞에서 정말인가? 라는 검사의 질문에 요조는 속으로 아니오라고 답하고 싶지만 겉으로는 거짓된 미소를 짓는다. 진짜라는 대답 대신 정말인가? 라고 되묻는 검사의 날카로운 말에 요조는 마치 지옥으로 굴러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장면을 읽는 순간, 대학 시절 발표 시간이 떠올랐다.


팀 프로젝트 발표를 앞두고 나는 밤샘 작업으로 겨우 자료를 완성했다. 하지만 발표 직전, 팀원이 갑자기 자료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늦은 상황이라 수정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불안감을 숨긴 채 발표를 시작했다. 교수님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한 학생이 이 부분은 오류 아닌가요?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요조처럼 부끄러움으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겨우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나는 속으로 아니오를 외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에게도, 팀원에게도, 그리고 교수님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 요조처럼 세상의 날카로운 시선에 움츠러들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실격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경험은 나를 성장시켰다. 나는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기로 했다. 솔직하게 내 의견을 말하고 틀린 부분은 인정하는 용기를 얻었다. 이 책은 나에게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세상의 잣대에 맞춰 살아가려 애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요조가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고 부르며 괴로워했던 것처럼, 나도 한때 나의 평범함과 솔직하지 못함에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안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일지라도 그 안에는 가장 진실하고 인간적인 내가 있다는 것을.


'인간 실격'은 세상과의 불화를 겪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고백록이다. 요조가 느꼈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스스로를 깎아내렸던 부끄러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한동안 먹먹함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책.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이 문장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울림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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