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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새롭게 업데이트한 뉴 에디션 ㅣ 스타 라이브러리 클래식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민우영 옮김 / 스타북스 / 2025년 9월
평점 :
<노인과 바다> 다시 읽기: 고등학교 흑역사를 소환한, 짠내 폭발 인생 책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다들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텐데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학창 시절의 흑역사가 떠올라 혼자 웃었다.
고등학교 때였나? 국어 선생님이 이 책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는데 마는 그저 주인공 산티아고의 이름이 생소하고 재미있기만 했다. 그리고 몰래 책 표지에 노인+바다=물고기라는 방정식을 써놨다가 친구한테 들켜서 엄청 놀림을 당했다. 그때는 이 단순한 노인과 바다가 어떤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저 물고기 잡는 할아버지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이 책은 나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어느 비 오는 날 오후였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뚝뚝 떨어지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책을 펼쳤다. 책을 넘기고 쿠바의 강렬한 햇살과 바다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헤밍웨이의 문장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고 담백하다. 그런데 그 단순한 문장들이 모여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내는 느낌같다. 마치 산티아고가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거대한 청새치를 만나는 그 과정처럼 말이다.
책의 전반부는 고독과 인내의 연속이다. 산티아고는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혼자 싸운다. 그는 청새치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면서도 그를 하나의 적으로 보지 않고 존경심을 갖는다. 나는 이 물고기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뭉클했다. 이 감정은 낚시꾼의 승리욕을 넘어선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와 동경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는 청새치에게 너를 죽이는 것은 나쁘지 않아. 그게 나의 일이니까. 하지만 너는 훌륭하고 고결한 놈이야.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사에서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청새치를 잡았을 때, 산티아고는 거대한 승리를 맛본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상어들이 나타나 청새치를 뜯어먹기 시작하면서 그의 승리는 조금씩 부서져 내린다. 그는 필사적으로 싸우지만 결국 남은 것은 뼈와 꼬리뿐이었다. 어쩌면 이 부분이 '노인과 바다'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지 않나?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기 위해 온 힘을 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겪게 된다. 모든 것을 잃은 채 돌아온 산티아고의 모습은 비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에게서 어떤 숭고함을 느꼈다. 그는 비록 청새치를 잃었지만 그와의 사투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정신적인 승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승리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는 용기와 인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책을 덮는 순간, 빗소리는 멈추고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책에서 나온 바다처럼 삶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겠지만 산티아고처럼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간다면 언젠가 나만의 거대한 청새치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이 책은 나에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한 조각이 되었다.
고독한 싸움 속에서, 빛나는 용기를 찾아낸 노인의 이야기.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