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빛이 우리를 비추면
사라 피어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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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빛이우리를비추면 #사라피어스


서늘한 긴장감을 품은 책이 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이 서늘해지는 듯, 한겨울 밤 차가운 유리창에 맨손을 댄 느낌이다. 사라 피어스의 소설 유리빛이 우리를 비추면(원제: The Sanatorium)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봤을 때, 알프스의 눈 덮인 고산지대에 위치한 유리 건축물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책을 집어 들자마자 손끝에 닿은 매끈한 표지 질감 그 자체가 차가운 얼음덩어리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묘한 불안감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설산과 유리의 결합은 아름다우면서도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소설은 스위스 알프스의 고립된 호텔로 안내한다. 주인공 엘린은 이 기묘한 호텔에서 벌어지는 불길한 사건의 한가운데로 끌려들어간다. 얼음과 유리로 둘러싸인 듯 투명하면서도 폐쇄적인 공간은 점점 사람의 숨통을 조여오는 느낌을 준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수영장, 물속에서 빛나는 인체, 수영하는 인물의 묘사는 현실감을 더해 상상을 자극했다. 마치 내가 그 얼음 같은 수영장 옆에서 사건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특히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마스크라는 단어가 자아내는 이미지가 강렬했다.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내 얼굴에도 보이지 않는 마스크가 씌워진 듯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 내가 친구들과 떠났던 겨울 산장 여행의 기억이 이 장면과 묘하게 겹쳤다. 즐거웠던 여행이었지만, 눈보라 속 고립감이 주는 공포를 잠시나마 맛보았던 기억. 그 짧은 경험이 엘린의 절박한 공포와 맞물리면서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소설 속 인물들은 신뢰와 의심, 진실과 거짓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아이작이라는 인물이 누군가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인공의 의심은 머릿속에서도 서서히 자라난다. 내 안에서도 그들에 대한 의심과 연민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


후반부로 갈수록, 책은 공포와 미스터리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든다. 아름답고 투명한 유리 건물 속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사건의 대비는 더욱 소름 끼친다. 평온한 설원의 이미지가 갑자기 날카로운 유리조각으로 돌변하는 순간, 나는 무서워서 숨죽이며 읽었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문득 텔레비젼에서 나온 샹들리에가 눈에 들어왔고, 순간 움찔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 속 샹들리에 아래 떨어진 핏방울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에.


올해 들어 가장 짜릿하면서도 기이한 소설이었다.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매혹적인 유리빛 공포 속으로 빠져보길 추천한다. 너무 늦은 밤 혼자 있을 때는 조심하고. 나처럼 너무 깊이 빠져 읽다가, 현실과 소설 속 경계를 잃고 등골 서늘한 경험을 할지도 모르니까.


이 책은 그렇게 내 마음의 한 켠에 투명한 얼음 조각처럼 자리 잡았다. 한여름에도, 생각만 하면 여전히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는 듯한 그런 존재로.


"때론 가장 투명한 것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오늘밤,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 서 있는 당신의 뒤를 한번쯤 돌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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