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
베튤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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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났지만, 마치 처음부터 나를 기다렸던 듯 다가온 산문집 한 권을 소개한다. 바로 베툴 작가의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라는 책이다. 투명하고 연약한 비눗방울이 담긴 책 표지를 본 순간, 왠지 모르게 내 마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때는 호주와 미국에서 생활을 했었는데, 그곳에서의 삶은 마치 언제든 터질 듯한 비눗방울 같았다. 저자 베툴은 터키 국적이지만 한국어로 글을 쓰고 연기를 하는, 흔하지 않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경계 위에서 존재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나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 호주에서 처음으로 생활할 때, 내게도 작은 경계가 존재했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현지 친구들을 바라보며,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았던 기억이 있다. 호주식 발음이 낯설어 어설프게 웃으며 말을 받아치던 순간들, 현지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이해하지 못한 농담에 소외감을 느끼던 밤들도 있었다. 또 미국에서는, 문화적 차이를 무심히 넘기려 해도 종종 어색한 순간들이 있었다. 베툴이 책에서 외국인으로서 관공서를 방문했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는 부분에서, 나 역시 미국에서 관공서 서류 작업을 할 때 겪었던 미묘한 긴장감과 막연한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 경험들이 책 속의 이야기와 교차되면서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러나 마냥 어둡고 무겁지 않다. 베툴은 자신의 삶을 차분하면서도 다정하게, 때론 유쾌하게 풀어낸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이야기하며 자기만의 공간과 경제적 안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언급할 때,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 책은, 타국에서든 고국에서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정과 존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나는 어느 한쪽에 속해버리는 순간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할까 봐 늘 두렵다는 저자의 고백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사실 나도 한때는 어느 한곳에 완전히 소속되지 못한다는 두려움으로 흔들렸던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베툴의 글을 읽고 난 후, 경계 위에 서 있는 삶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지금 어디선가 나만 경계 위에 서 있다고 느끼며 흔들리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이 따뜻한 위로가 되어 줄 거라 믿는다. 오늘 하루도, 우리 이렇게 여기 존재하고 있으니까. 정말로, 아주 사실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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