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대로 길이 되는 - IT 비전공자의 처절한 병원 시스템 구축 생존기
비수 지음 / 하움출판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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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주인공 태섭이가 밤 11시 40분 지하철 막차를 탄다는 대목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거 딱 내 젊은 시절 아닌가? 나라고 안 그랬겠나. 신입 때는 정말 밤샘이 밥 먹듯이 흔했습니다. 물론 저는 IT 쪽은 아니었지만, 회사에서 처음 프로젝트를 맡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태섭이의 처절함이 그대로 전해져 왔습니다. 제 기억에도 밤샘 끝에 동료들과 회사 앞에서 첫차를 기다리며 마시던 편의점 커피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땐 그게 젊음의 특권이자 훈장인 줄 알았죠.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말이예요.


태섭이가 비전공자 신분으로 병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은, 저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 보니, 한 분야에서만 20년 가까이 일해왔지만, 문득 내가 이걸 계속해야 하나?하는 고민이 들 때가 많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앞이 캄캄하고 겁부터 나더라구요. 태섭이가 겪는 낯선 지식에 대한 막막함, 계속되는 실수와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는 비단 IT 개발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인생 어느 시점에서든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는 우리네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한때 직장 상사와의 마찰로 심하게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딱 태섭이처럼,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버티고 나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들이 열리더군요. 이 책에서 "가는 대로 길이 되는"이라는 문구를 봤을 때, 뭉클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미리 길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발걸음을 내딛는 곳이 곧 길이 되는 거지. 나이 마흔이 넘어도, 여전히 우리는 삶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 위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라는 걸 이 책이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특히 책 중간중간에 삽입된 시들도 참 좋았습니다. "반달"이나 "그 사람" 같은 시들은 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지냈던 감성들을 건드렸습니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가끔은 이런 문장들이 마음을 위로하고, 잠시 쉬어가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 너무 앞만 보고 달릴 필요는 없지. 가끔은 주변도 좀 둘러보고, 쉬어가기도 하면서 가는 게 인생 아니겠나 하구요.


"IT 비전공자의 처절한 병원 시스템 구축 생존기"는 IT 분야 종사자가 아니어도, 심지어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40대의 눈으로 봐도, 이 책은 단순히 개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낯선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통해 삶이라는 거대한 미션을 수행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거나,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너무 힘들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 안에서 잊고 있던 용기와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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