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사이클러 ㅣ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5년 5월
평점 :
노란색 표지 위에 줄지어 선 헬멧을 쓴 사람들의 이미지와 낯선 느낌의 제목 RECYCLER는 조금 차갑고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읽기에 다소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막상 첫 페이지를 넘기자, 작가 이기원 님의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장들이 순식간에 나를 리사이클러의 세계로 이끌었다. 특히 "삶은 이용되고 죽음은 재활용된다"는 강렬한 문장은 소설 속 이야기라기보다는 차갑게 현실을 꿰뚫는 것 같아 몸이 오싹해졌다.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계급화된 미래 서울의 모습과, 인간이 재활용품처럼 처리되는 암울한 풍경은 충격적이면서도, 현실의 우리 사회를 조금은 과장되게 비틀어 보여주는 듯해 마음이 복잡했다.
소설의 주인공 동운과 디오는 특별히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들의 불안과 고뇌, 예측하기 어려운 선택들은 단지 소설 속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고 내 삶 속 질문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 삶과 죽음의 가치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선명하게 다가왔다.
어느 늦은 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봤다. 잠든 도시의 풍경은 마치 소설 속 뉴-솔 시티의 이미지처럼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저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각자의 삶을 반복적으로 소비하며 재활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이 책이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문턱에 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소름 끼치도록 생생했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다시금 돌아보게 해주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항 세력의 외침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인간 존엄성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하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리사이클러는 정말 오랜만에 강렬한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한동안 머릿속에서 다양한 질문과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다. 좋은 책을 만나는 기쁨을 다시 느끼게 해준 고마운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이 남긴 질문들은 아마도 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되풀이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