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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나인경 지음 / 허블 / 2025년 4월
평점 :
나인경 작가의 소설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허블 출판사 제공)은 기억과 존재,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예민하고 서늘한 시선으로 파고든다. 책장을 넘기며 나 역시 깊은 물속에 빠진 듯했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썩어들고 있다”는 문장 앞에서 몇 년 전 여름밤이 떠올랐다. 돌아갈 곳 없는 마음을 들고 걷다 멈춰 섰던 어느 작은 갤러리의 앞. 그림 속 무언가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췄던 그날의 막막함과 미세한 희망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소설 속 '기억 회기' 현상은 삶의 본질적 질문을 건넨다. 어떤 기억은 삶의 의미를 지탱하지만, 또 어떤 기억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뒤흔든다. 기억이란 결국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구성하는 것. “당신은 누구지?”라는 단순하지만 깊은 질문 앞에 서면, 우리는 자신을 지탱하는 기억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애쓴다. 나 역시 문득 멈춰 서 “이건 잘못됐어”라고 되뇌던 소설 속 주인공처럼 과거의 흔적을 곱씹었다.
이 책은 결국 살아있다는 것이 기억의 반복이며, 사랑은 그것을 견디게 하는 힘이라고 얘기한다. 나인경의 문장은 섬세한 파장처럼 내 마음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허블에서 제공받은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나는 잊고 있던 기억 속 나를 찾아냈다. "사랑과 기억에 관한 아름다운 진실"이 정말로 이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