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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랜프 3
사이먼 케이 지음 / 샘터사 / 2025년 3월
평점 :
지하철에서 이 책 읽다가 옆자리 고등학생들이 하는 대화를 들었다.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면 인간은 그냥 펫 되는 거 아냐?”
그 말을 듣고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억을 주입당한 복제 인간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자각하는 그 장면.
그리고 끝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겠다.”
묘하게 오래 남는다. 멋있는 말은 아니다.
그냥, 인간이라는 말이 좀 낯설게 들리는 순간.
홀란프 3는 외계 전쟁 후 폐허가 된 지구를 배경으로, 신성한 유전자 보존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세계에서 기억, 윤리, 진화의 문제를 던지는 이야기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게 SF 장르소설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기억이 데이터로 다뤄지고, 윤리는 알고리즘에 의해 재조립되는 세계.
신체는 복원 가능하지만 정체성은 언제나 불안정하게 떠다니고, 선택이라는 행위조차 이미 설계된 것일 수 있다는 감각.
한 인물은 “너는 누구냐”는 질문 앞에 오래 머문다.
화려한 장치 없이도 이야기는 그 순간에 집중한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침묵의 서사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꽤 성숙하다.
중반부, 기억이 재활성화되는 장면은
그렉 이건이나 테드 창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질문은 단순하다.
‘이 기억은 내 것인가.’ 그렇지만 그 질문이 던져지는 방식이 낯설다.
무언가 감정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차가운 진공처럼 남는다.
반복되는 말이 하나 있다.
“인간은 자기 뜻대로 계획하고, 신은 자기 뜻대로 실행한다.”
이게 어떤 아이러니인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는 신의 거대함, 누구에게는 인간의 무력함. 아니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다 읽고 나면, 무언가 정리되는 기분보단 오히려 몇 가지 질문이 더 남는다.
기억은 기술로 저장할 수 있는가.
윤리는 진화하는가.
신성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게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인지조차 확신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 책은 그걸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