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무라카미 류 지음 / 예문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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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라카미 류는 즐거운 사람이다. 정확히 말해서 즐기면서 사는 사람이다. 그의 소설은 한없이 퇴폐적이다. 사람들은 환각과도 같은 퇴폐를 꿈꾸길 원하며, 그의 소설들은 그것들을 채워준다. 69. 69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퇴폐를 원한다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무라카미 류는 69에서 대중코드를 많이 버무려 놓았다. 그래서 문체도 한없이 가볍다. 책 제목인 69는 물론 남녀의 체위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겐의 1969년을, 그 말썽 많고, 개구쟁이였으며, 호기심 많던 17세의 노스탤지아를 회고한다. 앞서 말한대로 이 책은 가볍고, 쉬우며, 너무 재밌다. 재미란 말을 이토록 강조하는 것은 흔하지만 한편으론 생경한 그 느낌을 오랜만에 접해 보아 그럴 것이다.

북고 3년에 재학중인 겐과 아마다는 친한 친구다. 겐은 단순히 여학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학교에 바리게이트를 치기도 하고(그 시절은 전공투 세대다.) 상상하지못할 페스티발을 열기도 한다. 이 시절 그들이 가지는 고민이나 신중해야할 미래에 대해선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류의 말을 밀자면 어느 시대건 권력의 앞잡이는 힘이 세다. 그들에게 반항 해봐야 얻어 맞는 건 도리어 우리이며, 따라서 크게 웃고 즐기므로 복수 할 수 있는 것이다. 겐은 학교 체제에 반항한다. 이에 학교는 약간의 충격을 받긴하지만 그뿐이다. 정학후 학교에 돌아온 겐은 전혀 바뀌지 않은 현실에 무디어져 간다. 그의 심정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부분은 페스티발때 이용할 닭을 구하러 갔을 때인데, 겐은 양계장의 병든 닭을 보고 닭이건 인간이건 조금이라도 거부의 자세를 보이면 격리시켜 버린다고 되뇌인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세보는 기지촌이 있는 곳으로 문화를 스트레이트로 받아들이는 곳이다. 해서 일본의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배경, 겐의 나이가 주는 혼돈은 69의 자세처럼 맞물려 엉겨 있다. 그 엉김을 류는 즐기고 있다. 그는 내가 아는 소설가중 미식가며, 바탕스럽고, 풍류기질이 다분한 사람중에 하나다. 그 화려한 생의 이면에도 그는 어두움을 감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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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고백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올김 / 동방미디어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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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름다움. 밝은 정오의 오포 소리를 들으며 자작나무는 사이좋은 누이처럼 기대어 흔들리는 2차 대전 전후.

이것은 가면의 고백에서 보여지는 배경이다. 이 소설은 아름답다는 말자체가 너무 통속적이어서 무지하게 들릴만큼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어릴적 우연히 보게된 귀도 레니의 성 세바스찬의 명화와 같은 것이며, 또래보다 성숙했던 오우미의 눈부신 체육 시범과 같은 것이며, 벤치에 반나 차림으로 땀에 절은 젊은이의 것과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살을 에이는 죽음과 소년의 미숙한 육체의 젖내와 거칠고 더러운 땀내는 유키오가 진실로 매혹당했던 아름다움인 것이다. 가면을 쓰고 자신을 꾸짖던 그는 그 혼돈의 꾸지람을 정리하기 위해 고백을 쓰는 것이 자신의 죽음의 완성임을 의식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써나가면서 생이 회복되가는 것을 느낀다.

사소설의 형태를 뒤집어 쓴 픽션이건, 사소설이건, 분명한 건 사소설이라 할지라도 유키오는 어디서 짜르고 붙이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연출자처럼 잘 조절하여 쓰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처음 드는 느낌은 진정으로 아름다움을 만져본 느낌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너무 생생해서 곧 잘 전이 되어 나를 떨리게 한다. 그 떨림이 완성되는 순간에 유키오는 고백을 마감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현혹시킨 붉게 그을린 반나차림의 청년에게 '악습'을 보내며....물론 그 옆에는 참고 연기를 계속하게 만들었던 소노코가 자리한다.

주위에선 전쟁의 한창에 오늘내일의 두려움을 떨지만 '나'는 끊임없는 죽음의 동경과 죽음을 피해가는 희한한 팔짜덕에 불안정한 배경처럼 불안한 성정체성에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을 힐난한다. 성 세바스찬도, 오우미도, 그 정체모를 남자도 진정한 자신이었다.

유키오는 놀라운 감성의 소유자다. 그 감정은 너무 여릿해서 미풍에도 흔들거리는 가녀린 줄과 같다. 그래서 그 고백을 듣고 있자면 이 연약한 유미주의자의 진실함을 누구보다 감미롭게 동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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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여자 - 2004 노벨문학상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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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여자의 주인공인 에리카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이 사랑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파괴일 뿐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 작가 엘프리데 엘리넥의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너무 매혹적이다. 매혹이란 단어를 쓰기엔 차가운 느낌이 강하다. 낯설고, 차갑고,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에 사람들은 매혹된다. 도도한 차가움이 바로 이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가 가진 매력이다.

*어머니와 에리카 : 이 소설의 뿌리, 아니 주요 모토로 자리하는 이 애증 관계는 에리카의 전 생의 지배를 좌우하고 있다. 서른 중반을 넘도록 어머니와 한 침대에서 생활하는 에리카, 그녀의 외피는 왕립 음악학교의 도도하고 매몰찬, 인간관계 부실한 교사이고, 내피는 어릴적부터 쌓여온 압박감을 신체에 마조히스틱하게 풀어내고-면도칼로 자신을 저미는 등, 포르노 핍쇼장에 가서 성적 분출구를 찾는다. 또한 어머니는 에리카는 자신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하며, 일찍 여윈 남편의 자리에 에리카를 끼워넣는다.

*에리카와 클레머 : 어머니와 에리카, 둘만의 바다는 따사롭고 풍요로운 햇살을 받으며 안정되게 흘러가는 바다다. 이 바다에 클레머라는 바위가 떨어진다.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충격적 요인은 바다 전체를 들썩이게 할 정도다. 클레머는 자신의 능력 배양으로 에리카에게 접근하는 전형적인 호탕아이다. (내 느낌상 그는 길먼의 허랜드에 나오는 테리형의 인간이다.)

*에리카와 에리카 : 스스로 사디스틱한 면모를 보이다 매저히스틱한 면모를 보인다. 자신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위의 다람쥐 마냥 지리하게 맴도는 에리카는 가장 불행한 여인이 아닐까?

엘리넥의 피아노 치는 여자는 대단한 소설이다. 이 사람의 다른 작품이 너무나도 읽고 싶은 힘을 가진 작가이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쿤데라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하네케가 올해 이 소설을 영화화했다. 영화 또한 매우 훌륭했다. 이 소설의 차가운 감정을 그대로 뽑아 살린 작품으로 주인공들의 역할들이 최고치로 인상적인 영화였다.

에리카라는 인물은 정말로 불쌍한 인물이다. 시퍼런 칼날같은 차가움이 그녀의 가슴에 찌릴때 그녀를 틀림없이 동정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동정 받기를 원치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런건 그녀에겐 불필요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나약하고 사랑이란 것을 알지 못한채 자신을 소모하는 그녀속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있자면 너무 비참해서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분명 나의 모습을 보았기에 가슴이 미어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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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의 나라
샬롯 퍼킨스 길먼 / 지호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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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먼을 처음 알게 된것은 누런 벽지라는 단편을 통해서 였다. 섬뜩한 자아 반영과 여성 현실을 1인칭 내면체로 서술한 이 소설은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었고,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길먼의 장편 -여자만의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여자만의 나라-는 페미니즘 유토피아 소설이라는 장르를 차용하고 있다. 미국 남자 3명 [그들은 친구인 동시에 정형화된 세 부류의 남자들이다]이 여자만의 나라, 허랜드에 들어간다. 그곳은 고도의 문명을 지닌 선진국이며, 천국과도 같은 곳으로 묘사된다. (모든 나무는 과실류이며, 여서들은 상냥한 사람들이고 지나치게 이성적이며 총명하다. 또한 처녀생식으로 아이를 낳아기른다. 모성은 숭배시되는 종교이다.)

이 소설은 벤의 관점으로 그러니까 이방인, 철저한 남성의 관점에서 보여진다. 비단 모든 사회가 다 그렇겠지만 남성화의 대표격으로 미국을 정해두고 그 반대편엔 허랜드가 존재한다. 벤의 눈에 비친 허랜드는 미국가 비교되는 것 자체가 오류인 월등한 우등 국가이다. 길먼을 자신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나라를 허랜드로 통해 제시한다.

여성 내면을 심미적으로 만들어 놓은 이 나라는 단 수녀의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이 나라 국민들은 성적으로 너무 무지하고, 성이란 단지 방종의 개념뿐인 그런 나라. 여성끼리 몇 백년을 생활해 왔으나 동성애란 것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나라. 순결도를 따지자면 소돔 반대편에 딱 이 나라가 있다. 물론 여기서 제시된 허랜드는 분명 옳다. 여성은 여자의 개념보다 인간으로 더 큰 개념을 가진다는 결론은 훌륭한 납득 요인이다. 그러나 성적으로 떨어져 있는 그들은 꼭 외계인들처럼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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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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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만큼 가십많은 작가가 또 있을까?-물론 생각해 보면 꽤 있다. 아무튼. 가십이 많다는 것은 그녀가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겠고, 바꿔말하면 대중적이란 말이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많이 쓰는데,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는 이런 그녀의 에세이집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녀의 이전 픽션들이 떠오른다. 솔직하게 속삭이는 그녀에게 적잖이 친근감이 생긴다. 이 에세이는 신체 부위를 비롯한 단어 마흔 네개를 소재로 하여 자신만의 사전을 일군 책이다. 그 사전은 작가 자신의 기억에서 오는 사적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차분하면서도 단숨에 읽히는 이 책을 덮는 순간 작가 유미리에게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참, 이 책엔 과감하고 재밌는 부분이 꽤 많다.

그 중 발랄한 사전의 몇 대목을 밝히자면
[둘]-어느 신흥 종교의 교주왈 두 사람의 관계는 연애, 세사람이면 불륜,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종교라고 한다.
[애완 동물 기르기]-처음에는 사랑으로 시작했다가 무관심해지고, 끝내는 역겨움으로 종말을 고하는 인간의 애정생활을 동물에게 추체험시키는 행위.
[이름]-두 자기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작가, 탈렌트, 사기꾼, 종교인등이다. 그리고 제일 한국인.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에서 유미리는 어렵고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담담하게 나열한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것을 예전에 감추려 했는지 반문하다. 어려운 시절을 건너온 용기는 그녀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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