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혜철수뎐 - 세상의 마음을 얻는 인간경영
조광수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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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창 읽고 있던 중에 안철수 후보 사퇴라는 돌발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안철수와 문재인 두사람의 단일화 과정을 지켜 보면서 아무래도 문재인측으로 정리가 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전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다소 허탈하게 단일화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 생각은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동일했을 것이라 생각되고 그 누구보다 이 책 “근혜철수뎐”을 저술한 저자 조광수 역시 그 누구보다 더 큰 당혹감 속에서 이번 상황을 지켜 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인물에 대해서 글을 적는 것을 보통 평전이라 부르는데, 그 인물에 대해 그의 일생에 대한 여정과 더불어 그가 행했던 공과를 객관적으로 잘 기술하고 이에 대해 저자 나름대로의 적절한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그 평전은 오랫동안 수명을 유지하고 많은 독자들의 손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철만 되면 정치인 스스로 홍보용으로 출판하는 자서전류나 또는 비록 타인에 의해 기술 되었지만 일방적인 긍정적 평가 속에 씌여지는 급조된 책들은 그 호흡이 짧을 수 밖에 없다. 본인이 사비를 들여 찍어내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이상 서점에서 돈 주고 사서 보는 독자들은 정말 그의 열렬한 지지층이 아닌 이상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찌보면 그런 면에서 이 책 역시 태생적으로 이번 대통령 선거만 끝나면, 그래서 두 사람 중에 한 명이 대통령이 되든, 혹은 이 책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든 간에 이 책의 수명은 아마도 그 순간까지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 역시 처음 책을 손에 잡을 때 단순한 호기심에서 가볍게 읽어 보자는 생각이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저자에 대해서는 관심도 별로 없었다.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름도 처음 들어본 분이었고 어떤 학술적인 저술이 아니기에 저자가 쓴 글에 동의가 안되면 안되는 대로, 인정되는 부분은 또 되는대로 그냥 확인해 가면서 읽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중간 정도 읽고 나서는 책의 앞 날개에 있던 저자의 이력을 차분히 찾아서 읽어 보게 되었다. 책의 내용이 기대했던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국립대만대학에서 정치사상을 공부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다수의 책을 저술하였고 직접적인 현장 정치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또한 시민활동과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해 오시는 분이셨다. 이 책은 단순히 박근혜와 안철수라는 두사람의 정치 철학이나 공약등을 비교하는 어떤 정치 공학적인 책이 아니다. 비록 두 사람을 비교하고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다루는 내용이 표면에 드러나지만 실제로는 저자의 정치관이 오롯이 드러난 책이라고 본다. 어쩌면 박근혜 안철수는 저자 조광수의 아바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자는 총 4부에 걸쳐서 사람다움에 대하여, 지도자다움에 대하여, 정치다움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다움에 대하여 논지를 전개 한다. 각각의 주제에 대하여 저자는 박근혜와 안철수가 가지는 사람다움, 지도자다움의 강점과 장점을 이야기 하고 더불어 정치와 세상에 대한 정치가의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앞의 각각의 단어들이 아닌 바로 ‘다움’이라고 하는 단어인 것이다. “~답다”라는 것 자체는 이미 그 단어 자체에 가치 판단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단어이다. “~답다”라고 하는 것에 100% 동의가 이루어지는 절대 명제가 있을 수가 없다고 볼 때 결국 사람다움, 지도자다움이라는 주제 속에 두 사람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할 때는, 이미 저자가 설정한 사람다움, 정치가다움의 기준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이 책은 박근혜, 안철수 두 사람을 내세운 저자 조광수의 정치 철학에 관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가볍지 않다. 저자는 중국 전문가로서 논어를 바탕으로 각각의 “~다움”을 설명해 나간다. 마치 논어를 4개의 단어를 통해 강해하면서 그 실례를 박근혜 안철수 두 사람을 들어 설명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선거가 끝나더라도, 아니 그것과는 관계 없이 읽어도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울림이 있는 책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각각의 “~다움”에 동의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시간이 흘러 또 다른 누군가가 정치 일선에 등장하더라도 저자의 시각으로 그의 행태를 재단해 볼 수가 잇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류를 반영하는 책들은 보통 한번 읽고는 다시 들춰보지 않는 법인데, 그래서 책장을 정리 할 경우 제일 먼저 정리되는 부류들 중의 하나이지만 그 속에서 꿋꿋이 살아 남아 책장 속 한 귀퉁이를 차지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하며 기회 되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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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만났다
신동원 지음 / 참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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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서점의 한 쪽 귀퉁이에는 반드시 중국 관련 서적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생활, 문화 및 중국과 관련된 여행 가이드 류까지 나름대로 중국과 한자락 연결된 인연을 바탕으로 씌여진 책들은 이제 차이니즈 드림을 꿈꾸며 새로운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함께 그들의 주머니를 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름 중국에 대한 인연과 관심을 가지고 중국과 관련된 책들을 열심히 읽어보려 하는 편에 속한 나에게 있어서 이번에 만난 “나는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만났다”는 모처럼 편하게 읽어 본 중국 관련 책중의 하나다. 대개의 중국 관련 저술들이 지나치게 중국을 띄우거나 혹은 내려 보는 시선중의 어느 하나로 경도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비해 이 책은 저자가 8년간의 중국에서의 상사원으로서의 삶을 통해 경험한 일들을 재미있게 풀어 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지 저자의 신변 잡기적인 에피소드류의 가벼운 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는 나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중국인들의 행동 기저에 깔려 있는,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원인들을 자신의 시각 속에서 분석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총 6부에 걸쳐 먼저는 중국인들의 문화와 그들의 긍정적인 삶과 불편하고도 애잔한 삶의 모습을 따스한 필체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저자는 자신이 중국에서 직접 사업체를 영위하는 사람 답게 중국인들의 경제관과 중국인들만의 비즈니스 행태및 그 배경과 함께 한국인이 이런 중국속에서 어떻게 비즈니스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어드바이스 하고 있으며 또 한 장에 걸쳐서는 중국식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형 인재’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의 기본적인 시선은 따뜻하다. 책 중간 중간에 몇 번에 걸쳐 소개되곤 하거니와 저자는 자신의 성공적인 중국에서의 비즈니스 안착에 대하여 무엇보다 중국을 단순히 이용하고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정말 중국을 사랑하기를 강권하고 있다. 그러한 사랑의 마음은 반드시 전달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이루어 질 때 비록 사회 형태는 사회주의지만 그 어느 곳보다 더욱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중국에서 고밀도의 ‘관시’를 형성하여 비즈니스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정치적 수도인 북경과 경제적 수도인 상해의 문화적 경제적 비교를 재미있게 풀어내 주고 있으며 중국인들이 왜 그리도 철저하게 돈에 대해서는 악착 같은지, 그리고 타인에 대해 왜 그리도 무심한지 - 얼마 전 교통사고 당한 어린 아이가 죽어 가고 있는데도 모른 척하고 지나가던 사건의 예 -를 중국인들의 지난 역사 속에 새겨진 흔적들을 통해 그 답을 주고 있는 부분 등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하게 한다.

 

저자의 비즈니스 영역이 상해인지라 회사 일로 상해를 일년에 한 두 차례 다녀 오는 나에게 있어서, 상해에 대한 시시콜콜한 설명은 개인적으로는 더욱 읽는 재미를 더하게 해준 것 같았다.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로서의 중국, 정치적으로 후진타오 시대를 막 내리고 새로운 시진핑 시대를 열어가는 중국, 동북공정과 이웃 나라들과의 영토 분쟁을 벌이는 중국등의 숲으로 바라보는 중국이 아닌 개별 나무들 로서의 중국의 속살을 엿보는 재미를 분명히 던져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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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 10 그레이트 이펙트 2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김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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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기에는 우선 내 호흡이 너무도 짧았다.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에 대한 이야기는 가끔씩 귀동냥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드디어 망구엘의 책을 손에 한번 쥐어 보는구나 라는 기대속에 책을 맞이하였지만 아직 내가 넘기에는 좀 버거웠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저자의 다른 책 “밤의 도서관”에 대한 호평을 들은 적이 있었던 차에 이번 책 때문에 혹시나 다른 책들도 손에 잡혀지지 않을는지 걱정도 되는 바이고...

 

이 책은 호메로스의 책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인류 문명에 끼친 그 영향을 다 방면에서 추적해나간 기록물이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서양 세계의 저작물들 중에서 이 두 책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운 것이 없음을 저자는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통찰을 통해서 하나씩 독자들에게 밝혀준다. 심지어는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헬레니즘 사조와 함께 서양 문명의 또 하나의 거대한 정신 문명의 축인 헤브라이즘 역시 이 호메로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어려서부터 그토록 재미있게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신밧드의 모험조차도 “오디세이아”의 아랍판 변형물이란 사실 앞에는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저자는 먼저 1장에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개괄적인 줄거리를 소개한다. 그리고 2장부터는 이 두 책의 저자라고 알려진 호머메스가 실제로는 실존하지 않은 작가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작가 호메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알파벳이란 문자가 있기 전에 이 두개의 이야기는 수많은 조각들로 파편화 된 에피소드 형식으로 입에서 입으로 시대를 거쳐 내려오는 과정 속에 점점 하나로 모아지게 되었고 이후 전문적 음유시인들에 의해 집대성되기 시작해서 B.C 8세기경에 지금과 같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체계로 편집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저자 망구엘은 주장한다. 이때 저자 호메로스는 바로 이렇게 전문적 이야기꾼인 장님 음유시인을 통칭하는 보통 명사일 수도, 아니면 그 음유시인 중의 한 명의 고유명사 일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이 책들이 어느 한 천재적 작가에 의한 독창물이 아니란 점은 분명한 사실이란 점임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호메로스가 심지어는 여성이었을 수도 있다라는 주장을 펼친 새뮤얼 버틀러의 주장을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들이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의 필수 교양과목 이었으며 이는 먼저는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철학자들에 의해 부정되면서도 또한 그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도 사용되는 등 그 존재가치가 증명되다가 이후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어 광범위하게 읽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저자는 이 두 이야기가 기독교 진영과 이슬람 진영 내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소화되는지 예의 그 탁월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밝히고는 이후 단테에 의해서 어떻게 그의 작품 “신곡”에서 차용되는지를 또한 이야기 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두 책이 이 후 니체와 괴테등에 의해서도 어떻게 그들의 작품 내에서 살아나는지를 밝히고 있으며 이렇게 수십 세기를 내려 오는 과정 속에 당시 세계의 두 언어였던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어떻게 번역되고 저술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외에도 저자는 시가(詩歌)로서, 관념으로서, 상징으로서, 그리고 역사로서 호메로스의 역할과 기능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여러 이야기들 중 재미있는 이야기중의 하나로만 트로이의 목마와 오디세이아의 모험을 들어왔지만 이 두 작품이 이 정도로 서양의 정신세계 속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었다. 심지어는 그 내용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법과 스타일에서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즉, 일인칭 화법, 특정한 것부터 일반적인 것으로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관점을 전환시키는 것이라든가, 사건의 한 가운데로 곧바로 들어가서 시작하는 방식등의 작문 기법(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기법들이지만) 덕에 인물과 플롯을 만들어내고 독자에게 감정과 확신을 심어주는 이러한 복잡한 방법들이 소설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로 확립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카잔차키스가 지적 세례를 받은 인물로 호메로스와 니체를 꼽은 것을 보았다. 지금도 수많은 작가의 스승이 되어 독자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호메로스와 그의 두 작품들을 망구엘의 설명을 따라가며 두 고지를 정복해 보고자 하였지만 모두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본인의 호흡이 너무 짧음을 절실히 느낀다. 하지만 반드시 언젠가는 올라야 할 두 산이기에 다소 시간이 흘러 본인의 내공이 더욱 쌓이고 호흡이 길어지면 다시 한번 정독을 하면서 이번에 놓친 부분들을 재음미 해보는 기쁨을 누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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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랑 - 역사의 하늘에 뜬 별
이원준.김준철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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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역사 발전을 족히 수십 년은 후퇴시켰을 뿐 아니라 우리 국민 개개인에게 말로 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내어준 사건. 12.12 군사 반란. 육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만이 폭력이 아닐진데 분명 우리는 12.12 군사반란의 수괴자들을 통해 느닷없이 뒷통수를 한 대씩 얻어 맞은 격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그 상처를 싸매고 아물기를 기다리면서 내 머리에 느닺없이 소위 퍽치기를 행한 그 자들이 정당한 심판 받는 것을 보기 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군사 반란 수괴들에겐 형식적인 법정에서의 말뿐인 단죄만 이루어 졌을 뿐 그들은 오늘도 같은 하늘아래 자신들의 천수를 누리며 이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향유하며 지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내 머리의 상처와 통증보다도 더 큰 고통을 가슴으로 받아내고 있는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이럴진대, 그 추악한 역사의 한 정점에서 온 몸으로 반역의 더러운 물길을 거스르다가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난 이와 그들의 가족이 겪었을 그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언어라는 불완전 매개체로 적어 낼 수가 있을까....

 

반란 수괴들에 맞서고 또한 자신의 상관을 지키려다 그들의 총탄에 의해 숨져간 김오랑 중령.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오늘날 그리 많지 않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한 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에 의해 이 사회의 주된 구성원이 물갈이 된 이 시점에 참 군인 김오랑 중령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서평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이 출간 된 것은 비록 늦은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김 오랑은 1944년 경남 김해에서 출생하여 4,19와 5,16의 역사적 격동기를 지켜보는 가운데 가정 사정과 나름 그러한 역사적 사건등을 통해 형성된 의식에 따라 육군 사관학교 25기로 입교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참된 군인의 길이 무엇인가를 배웠고 이후 졸업 후 정식으로 군에 입문한 후에는 전방에서의 초급 장교 시절을 거쳐 베트남전에도 파병되어 다녀 오고, 이후 3사관 학교 교관, 학군단 교관등을 거쳐 특전사 중대장의 경험을 쌓게 된다. 이때 그의 아내 백영옥의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지게 되자 그는 진해 육군대학 졸업후 아내의 치료및 간병을 위해 일반 군인들은 꺼리던 특전사를 자청하게 되고, 이때 김 오랑 중령은 정병주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의 역할을 수행하던 가운데 운명의 1979년 12월 12일, 진압군측의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러 온 반란군들과 맞서 싸우다 현장에서 순국하게 되는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라면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러 왔다가 김 오랑 중령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 박종규 중령은 바로 그의 육사 선배로 평상시 김오랑 중령과는 개인적으로도 또한 가족들끼리도 막역히 지내던 사이였지만 운명은 이 둘의 사이를 그 어떤 비극 문학보다도 더욱 가혹하게 몰아가게된 것이다.

 

그의 시신은 한동안 방치 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현충원에 안장 되었지만, 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그의 아내 백영옥은 완전히 두 눈을 실명하게 되고, 이후 남편의 명예 회복과 12.12 군사반란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던 그녀는 의문의 추락사로 44세의 젊은 나이에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던 그의 남편 곁으로 가게 된다.

 

국회에서 한 때 김오랑 무공훈장 추서및 기념 동상을 세우고자 하는 논의가 있었으나 아직도 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반란 수괴들의 비협조로 유야무야되어 버리고 오직 김오랑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라는 일념하에 김오랑 기념회를 조직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이렇게 책으로나마 김오랑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일 반란 수괴들의 그 추악한 행동에 맞선 이가 하나도 없이 모두들 자기 살길만 찾았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좌절하고 우리 민족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단념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 오랑 중령이 있기에 먼저는 우리 군대가, 그리고 또한 우리 민족의 도덕심과 정의감에 대한 한 줄기 소망의 빛을 볼 수가 있는 것이리라. 그런면에서 우리는 김 오랑 중령에게 큰 빚을 진 것이 틀림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어려서부터 배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너무나 일방적인 죽은 도그마로 전락되어 버렸다. 그렇게 자신의 일생과 온 가족의 희생을 통해 모든 것을 바쳤던 조국은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는 왜곡하고 미련한 짓이었다고 비웃으며 그들의 후손들은 오늘도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보며 어느 누가 내 자신을, 내 가족을 희생시키며 조국을 위해 살아가겠노라고 마음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나마 이제 역사의 복원이라는 이름 아래 재조명되고 있는 많은 독립투사와 선조들이 있지만 어쩌면 아직도 현재 진행형중인 12.12 반란사건의 희생자이자 참 군인의 표상을 걸어간 김오랑의 복권은 요원하기만 하다. 어쩌면 김 오랑의 복권은 우리 민족의 도덕성과 정의감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싶다.

 

현충원에 가면 꼭 그의 묘비 아래 한 송이 꽃을 놓아두리라. 그리하여 그토록 사랑했던 그의 눈먼 아내와, 아들의 죽음도 모른 채 이년을 병석에 있다가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아리워서 차마 눈을 감지 못했을 김오랑 중령의 혼이 편히 쉴 수 있기를, 그리고 이제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의 박수와 눈물 속에 편안히 잠드시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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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 박웅현·최재천에서 홍정욱·차인표까지 나다운 삶을 선택한 열두 남자의 유쾌한 인생 밀담
조우석 지음 / 중앙M&B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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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내다보면 바로 앞 건물 같은 층의 창문에서는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화초로 살짝 가리어진 창문 너머 벽장 가득히 채운 책장에 빼곡이 꽂혀 있는 책들. 그리고 그 앞 넓직한 책상에 앉아 밤새워 공부를 하는 것인지 글을 쓰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간은 연로한 남자분의 희미한 등이 참 안정되어 보인다. 매일 밤을 스탠드 불빛과 함께 지새우는 그 시공간은 그 분에게 있어서는 소우주이리라.

 

나름 책을 좀 읽는다는 남자에게 있어서 서재는 분명 로망이다. 결혼 준비 하면서 혼수 준비를 하는 와이프에게 슬쩍 책상이야기를 했다가 와이프에게 원망 들은 기억이 새롭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사슴이 맹수를 피해 동굴 속에 쳐박히듯 오롯이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책들에 둘러 쌓여 가장 편안한 자세로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주위로 쌓여가는 평온함과 아늑함. 하지만 남자에게 있어서의 그 안식은 어쩌면 하루 종일 남편과 아빠를 기다렸을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고통일지도 모르겠지.

 

이 책은 저널리스트 겸 문화평론가 조우석이 [여성중앙]에 매월 연재하던 글을 모아 세상에 내어 놓은 책이다. 여성지와 서재... 어딘가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라고 한다면 여성지와 및 여성지를 읽는 여성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이야기하려나? 하지만 확실히 글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쉽게 쓰여졌다. 그렇다고 글의 내용이 없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전적으로 저자의 필력에 힘입은 바가 큰 것 같고 또한 이 책에서 소개하는 12명이 인터뷰이는 그 어느 한 명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홍정욱 전 국회의원을 새롭게 발견한 점이 신선했고 강석진 서울대 수학과 교수의 투박한 인상과 함께 축구 사랑에 대한 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홍정욱씨가 국회의원 처음 나오면서 그가 쓴 7막 7장이란 책이 서점에 깔릴 때 그 책 표지에 커다랗게 찍혀 있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돈 많고 잘생기고 거기에 학력까지 빵빵하고 30대의 언론사 사장을 거쳐 이제 권력까지 손에 쥐는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그가 이제 책까지 출판하여 자신의 또 다른 부분까지 채우려고 한다는 분명 질시어린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국회의원으로 있던 내내 나는 그의 의정활동에 단 한 번도 따스한 시선을 보낸 적이 없었고 가끔 그가 언론에 비출 때마다 단지 여당의 얼굴마담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무시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던 그가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하고 이어 인문학 출판을 위한 올재를 설립해서 고전들을 출판하는 것을 보면서 억울(?)하지만 단순히 그가 부모 잘만난 억수로 재수 좋은 사나이가 아닌 정말 멋있는 사람이란 것에 동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얼마 전 읽었던 명지대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에 나오는 인터뷰 형식의 글과 비슷하다. 각자의 인터뷰 말미에 각자가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 것마저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글 읽는 재미는 [남자의 물건]이 좀 더 나은 것 같지만, 서재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해 이야기 하는 점에서는 이 책이 훨씬 흥미롭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성공한 사람 위주로 소개된 것 같아 마음이 은근 불편하기도 하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의 넓은 저택과 그 안의 서재는 우리네 같은 소시민들의 서재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초라한 그것마저도 한숨지게 만든다. 이들의 책장같이 화려하고 튼튼한 원목 책꽂이가 아닌, MDF로 만들어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책 무게로 주저 앉아 뒷판은 덜렁거리고 못은 삐죽히 새어 나온 그런 책장이라도 그 위에 놓인 몇 권의 책만으로 행복해하는 우리의 조그마한 즐거움마저도 빼앗아 가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참 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남자가 서재에서 할 수 있는 딴짓은 과연 무엇일까? 아니 나는 어떤 딴짓을 했엇을까? 아내와 아이들 몰래 야릇한 화보를 본 적이 있지만 넓게 보면 그것도 무언가를 읽은 행위였으니 딴짓은 아닌 것 같고. 아, 이런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 같다. 이들이 말하는 딴짓이 무엇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나네. 다시 한번 읽어야만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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