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 박웅현·최재천에서 홍정욱·차인표까지 나다운 삶을 선택한 열두 남자의 유쾌한 인생 밀담
조우석 지음 / 중앙M&B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간혹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내다보면 바로 앞 건물 같은 층의 창문에서는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화초로 살짝 가리어진 창문 너머 벽장 가득히 채운 책장에 빼곡이 꽂혀 있는 책들. 그리고 그 앞 넓직한 책상에 앉아 밤새워 공부를 하는 것인지 글을 쓰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간은 연로한 남자분의 희미한 등이 참 안정되어 보인다. 매일 밤을 스탠드 불빛과 함께 지새우는 그 시공간은 그 분에게 있어서는 소우주이리라.
나름 책을 좀 읽는다는 남자에게 있어서 서재는 분명 로망이다. 결혼 준비 하면서 혼수 준비를 하는 와이프에게 슬쩍 책상이야기를 했다가 와이프에게 원망 들은 기억이 새롭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사슴이 맹수를 피해 동굴 속에 쳐박히듯 오롯이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책들에 둘러 쌓여 가장 편안한 자세로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주위로 쌓여가는 평온함과 아늑함. 하지만 남자에게 있어서의 그 안식은 어쩌면 하루 종일 남편과 아빠를 기다렸을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고통일지도 모르겠지.
이 책은 저널리스트 겸 문화평론가 조우석이 [여성중앙]에 매월 연재하던 글을 모아 세상에 내어 놓은 책이다. 여성지와 서재... 어딘가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라고 한다면 여성지와 및 여성지를 읽는 여성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이야기하려나? 하지만 확실히 글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쉽게 쓰여졌다. 그렇다고 글의 내용이 없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전적으로 저자의 필력에 힘입은 바가 큰 것 같고 또한 이 책에서 소개하는 12명이 인터뷰이는 그 어느 한 명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홍정욱 전 국회의원을 새롭게 발견한 점이 신선했고 강석진 서울대 수학과 교수의 투박한 인상과 함께 축구 사랑에 대한 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홍정욱씨가 국회의원 처음 나오면서 그가 쓴 7막 7장이란 책이 서점에 깔릴 때 그 책 표지에 커다랗게 찍혀 있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돈 많고 잘생기고 거기에 학력까지 빵빵하고 30대의 언론사 사장을 거쳐 이제 권력까지 손에 쥐는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그가 이제 책까지 출판하여 자신의 또 다른 부분까지 채우려고 한다는 분명 질시어린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국회의원으로 있던 내내 나는 그의 의정활동에 단 한 번도 따스한 시선을 보낸 적이 없었고 가끔 그가 언론에 비출 때마다 단지 여당의 얼굴마담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무시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던 그가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하고 이어 인문학 출판을 위한 올재를 설립해서 고전들을 출판하는 것을 보면서 억울(?)하지만 단순히 그가 부모 잘만난 억수로 재수 좋은 사나이가 아닌 정말 멋있는 사람이란 것에 동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얼마 전 읽었던 명지대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에 나오는 인터뷰 형식의 글과 비슷하다. 각자의 인터뷰 말미에 각자가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 것마저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글 읽는 재미는 [남자의 물건]이 좀 더 나은 것 같지만, 서재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해 이야기 하는 점에서는 이 책이 훨씬 흥미롭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성공한 사람 위주로 소개된 것 같아 마음이 은근 불편하기도 하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의 넓은 저택과 그 안의 서재는 우리네 같은 소시민들의 서재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초라한 그것마저도 한숨지게 만든다. 이들의 책장같이 화려하고 튼튼한 원목 책꽂이가 아닌, MDF로 만들어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책 무게로 주저 앉아 뒷판은 덜렁거리고 못은 삐죽히 새어 나온 그런 책장이라도 그 위에 놓인 몇 권의 책만으로 행복해하는 우리의 조그마한 즐거움마저도 빼앗아 가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참 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남자가 서재에서 할 수 있는 딴짓은 과연 무엇일까? 아니 나는 어떤 딴짓을 했엇을까? 아내와 아이들 몰래 야릇한 화보를 본 적이 있지만 넓게 보면 그것도 무언가를 읽은 행위였으니 딴짓은 아닌 것 같고. 아, 이런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 같다. 이들이 말하는 딴짓이 무엇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나네. 다시 한번 읽어야만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