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은 그의 책 ‘담론’에서 역사를 크게 구조사, 국면사, 사건사로 나누어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의 구분에 의하면 우리의 학교 역사는 대개 사건사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사 위주의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를 분절화 시킨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이 서로 엉킨 관계의 결과물이며, 그리고 그 사건 자체가 뒤 이을 또 다른 사건의 원인으로 기능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사건들의 원인을 단순화하고 결과로서의 현상만 가르치게 될 때 역사는 단순 암기 과목으로 전락하게 되며 이것이 어쩌면 많은 이들이 역사를 어려워하고 싫어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화이트 헤드로 기억하는데, 그는 역사 역시 하나의 서사체라고 말하였다. 즉 우리는 임진왜란 사건을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스토리 구조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스토리 구조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본성적 도구라고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할 때 그 역사는 보다 더 입체적으로 다가오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러시아 역사 다이제스트 100’은 형식적으로는 역사를 싫어하게 만드는 모든 요인을 완벽히 갖춘(?)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장구한 역사가운데 100가지를 뽑아 하나의 독립된 사건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법, 이러한 서술 방식의 역사서가 가지는 장점 또한 어찌 없겠는가? 무엇보다 이런 서술의 책은 미지의 세계를 열고 들어가는 길라잡이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전혀 모르는 분야를 공부할 때의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가벼운 책(만화도 좋다)을 살펴보면서 해당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을 습득한 후 본격적으로 보다 밀도 높은 책을 들고 공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런 연후에 다시 정리하는 측면에서 처음에 보았던 기초 요약본을 다시 살펴보면 처음 입구로 들어가려고 읽었던 책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사족이 너무 길었다. 이 책은 러시아 역사를 공부하는 데 그 문을 열어주는 안내서이자 러시아 역사를 공부한 이들이 자신들의 공부를 정리해 볼 수 있는 역할을 훌륭하게 담당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러시아는 말 그대로 동토의 땅이자 신비한 겨울 왕국이었다. 슬라브, 쨔르, 정교회, 키예프, 타타르, 시베리아, 로마노프, 표토르, 예카테리나, 러시아, 톨스토이, 도스트예프스키, 브나르도, 레닌, 공산주의, 스탈린, 소련, CIS, 고르바쵸프, 예친, 푸틴……. 러시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지만 이것들은 오직 점으로만 머문 채 선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었다.
들뢰즈는 점들이 접속하여 선을 이루고 나아가 면을 이루었을 때 그것을 가리켜 ‘배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배치가 만들어지는 것을 ‘영토화’라고 했는데, 잘못된 적용일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는 점들을 연결시켜 선과 면을 이루고 배치화되어 나에게 러시아 역사라는 또 하나의 영토를 점령하는 데 사용된 유용한 첨단 무기였다. 아직은 그 영토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그곳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 영토에 내 깃발을 꽂는데 큰 도움을 준 책이라 말할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의 공적이 된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런데 미디어에서는 이를 단지 정신 파탄자 푸틴의 무모한 불장난이란 관점에서 보도할 뿐 그에 대한 역사, 사회, 정치, 문화적인 심층적 접근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이 책이 이를 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표피적인 관점에서만 이번 전쟁을 보지 않게끔 이끌어 준다는 데서 지갑을 열고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