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원리로 널리 알려진 인기 강사 차동엽 신부가 또 한 권의 책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그동안 차 동엽 신부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희망에 관한 메시지를 집대성해 엮은 희망의 귀환이 그것이다. 먼저 제목이 주는 의미를 분석해 보자면 귀환이라 함은 어디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뜻할진대, 그렇다면 희망이 잠시 우리를 떠나 있었다는 말일 터.

 

우리 영악한 독자들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3포를 넘어 이제 4포로 일컬어지는 현 세대의 절망을 치유하기 위한 메시지임을 눈치 채었으리라. 차 신부는 책 전체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오직 희망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희망이 지금까지 인류에게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어가면서, 이렇게 절망이 에코(echo)되어 울려대는 시대에 부디 우리에게 희망 그 이름 자체가 주는 힘에 기대어 세상을 정면으로 부딪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차 동엽 신부의 책은 일기가 쉽다. 술술 넘어가는데 시쳇말로 넘어가도 너무 잘 넘어간다. 그래서 이 책을 손에 드는 사람들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애를 먹어야 했다. 이 책이 쉽게 넘어간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읽어버릴 책이 아니었기에 말이다. 한 순간 휙하니 저 넘어 가버린 눈길을 다시 돌려 일부러 아이들이 국어책 읽듯 한 단어 한 문장 또박 또박 정독하면서 눌러 읽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는지...

 

이 책이 단지 한 책상물림의 한가로운 예화 모음을 바탕으로 한 경구 모음에 그쳤다면 그 울림이 그리 크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차 동엽 신부 본인이 바로 어린 시절은 가난에 의해서, 또 나이 들면서는 건강 문제로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 본인을 오늘의 모습으로 있게끔 한 그 원동력이 바로 희망이었기에 저자가 줄기차게 외치는 희망의 멧세지는 우리에게 공허한 외침이 아닌 육중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빨간 펜으로 마음에 부딪쳐 오는 곳곳에 밑줄을 그었고 간직하고픈 예화와 일화들도 별도로 표기를 해두었다. 그리고는 책 읽기를 마친 후에는 그 부분들을 다시 모니터에 하나하나 찾아가며 갈무리를 해 두었다. 그 과정 속에 이 책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복기 할 수가 있었고 이렇게 갈무리한 내용들은 시간이 흘러 나에게 다시 절망의 어두움이 드리울 때마다 꺼내어 마음을 다잡는 역할들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갈무리 한 것들 중 몇 개를 적어본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spero, spera)

 

바라만 보지 마세요, 관찰하세요 (Don’t just look, OBSERVE)

삼키지만 마세요, 맛보세요 (Don’t just swallow, TASTE)

잠들지만 마세요, 꿈꾸세요 (Don’t just sleep, DREAM)

생각만 하지 마세요, 느껴보세요 (Don’t just think, FEEL)

존재하지만 마세요, 살아가세요 (Don’t just exist, LIVE)

 

트렌드라는 말은 참 매력적이지만 야속한 단어다. 트렌드는 간사하며 자주 바뀌고, 심지어 지구의 자전축처럼 자꾸 바뀌지만 브랜드는 바뀌지 않는다

- 브렌드화하여 그것으로 세계를 뒤흔드는 트렌드가 되게하라

 

단테의 <신곡> 첫머리 지옥의 입구에 적혀 있는 글귀

일체의 희망을 버리라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기에 희망자체가 지니는 힘을 빌려서 힘을 내라는 것이다.

 

절망의 유혹은 무섭게 집요하다. 이것으로 안 되면 저것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고요를 흔들어댄다. 절망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전형적인 수법 가운데 하나가 속단이다.

 

어플루엔자(affluenza) : 풍요로움(affluent) + 독감(influenza)

풍요의 욕망을 전염시키는 독감. 소비지상주의가 탐욕병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과중한 업무와 빚, 근심과 걱정을 떠안게 하는 한마디로 만들어진 절망이다.

반면에 부추겨진 절망도 잇으니 그것이 바로 비교이다.

 

세르반테스가 미치광이 돈키호테를 통해 이 희망가를 부른 곳은 감옥이었고, 그때 그의 나이는 50줄을 넘겼을 때였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가난, 결투와 도피생활, 전쟁 중에 입은 상처로 불구가 된 한쪽 팔, 5년에 걸친 노예생활, 4번에 걸친 탈출 실패. 말년에는 비리 혐으로 인해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는 이렇게 희망이 동난 막장의 상황에서 이상향에 대한 낭만으로 가득 찬 소설 돈키호테를 썼다.

보발것없는 재산보다 훌륭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 훨씬 낫다. 재산보다는 희망을 욕심내자.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사람들에게 배를 만들게 하려면, 바다를 보여주라!

 

젊음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다. 젊은이는 불을 보지만, 나이든 사람은 그 불길 속에서 빛을 본다”- 빅토르 위고

 

멋지게 생겨서 조경수로 가져다 사용하는 소나무는 하나같이 비정상적으로 발육한 나무인 것이다. 악조건을 무뤂쓰고 생존하기 위하여 뒤틀리며 성장한 나무들인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골앗의 싸움 법칙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창조적 전략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이 절대적 약자였기 까닭이다.

 

위험(danger)에서 한 치 모자라는 것이 화(anger)이다.

 

흔히 꿈의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고들 말한다. 나는 이를 굳이 마다하지도 않지만 적극적으로 권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를 꿈의 계획 농법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이는 자신의 꿈에 농약도 주고 비료도 주고, 때 되면 인위적으로 전지도 하고 하면서 꿈의 결실을 보려는 접근법이다. 꿈이 이루어질 확률은 높아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농법으로는 꿈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부작용이 남기 마련이다. 주위 환경의 피해, 잔류농약, 그리고 건강의 이상등.

이런 이유로 나는 꿈의 유기 농법내지 태평 농법을 권한다. 꿈이라는 나무를 파종만 하고 생태의 이치에 맡기는 것이다. 오로지 생태적으로 경합하고 상생하면서 결실을 맺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설령 소출이 적다 하더라도 그 꿈의 결실은 주위 환경과 농부 그리고 이웃들에게 자연의 환상적인 풍미로 기쁨을 주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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