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랑 - 역사의 하늘에 뜬 별
이원준.김준철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민족의 역사 발전을 족히 수십 년은 후퇴시켰을 뿐 아니라 우리 국민 개개인에게 말로 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내어준 사건. 12.12 군사 반란. 육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만이 폭력이 아닐진데 분명 우리는 12.12 군사반란의 수괴자들을 통해 느닷없이 뒷통수를 한 대씩 얻어 맞은 격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그 상처를 싸매고 아물기를 기다리면서 내 머리에 느닺없이 소위 퍽치기를 행한 그 자들이 정당한 심판 받는 것을 보기 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군사 반란 수괴들에겐 형식적인 법정에서의 말뿐인 단죄만 이루어 졌을 뿐 그들은 오늘도 같은 하늘아래 자신들의 천수를 누리며 이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향유하며 지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내 머리의 상처와 통증보다도 더 큰 고통을 가슴으로 받아내고 있는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이럴진대, 그 추악한 역사의 한 정점에서 온 몸으로 반역의 더러운 물길을 거스르다가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난 이와 그들의 가족이 겪었을 그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언어라는 불완전 매개체로 적어 낼 수가 있을까....

 

반란 수괴들에 맞서고 또한 자신의 상관을 지키려다 그들의 총탄에 의해 숨져간 김오랑 중령.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오늘날 그리 많지 않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한 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에 의해 이 사회의 주된 구성원이 물갈이 된 이 시점에 참 군인 김오랑 중령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서평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이 출간 된 것은 비록 늦은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김 오랑은 1944년 경남 김해에서 출생하여 4,19와 5,16의 역사적 격동기를 지켜보는 가운데 가정 사정과 나름 그러한 역사적 사건등을 통해 형성된 의식에 따라 육군 사관학교 25기로 입교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참된 군인의 길이 무엇인가를 배웠고 이후 졸업 후 정식으로 군에 입문한 후에는 전방에서의 초급 장교 시절을 거쳐 베트남전에도 파병되어 다녀 오고, 이후 3사관 학교 교관, 학군단 교관등을 거쳐 특전사 중대장의 경험을 쌓게 된다. 이때 그의 아내 백영옥의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지게 되자 그는 진해 육군대학 졸업후 아내의 치료및 간병을 위해 일반 군인들은 꺼리던 특전사를 자청하게 되고, 이때 김 오랑 중령은 정병주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의 역할을 수행하던 가운데 운명의 1979년 12월 12일, 진압군측의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러 온 반란군들과 맞서 싸우다 현장에서 순국하게 되는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라면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러 왔다가 김 오랑 중령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 박종규 중령은 바로 그의 육사 선배로 평상시 김오랑 중령과는 개인적으로도 또한 가족들끼리도 막역히 지내던 사이였지만 운명은 이 둘의 사이를 그 어떤 비극 문학보다도 더욱 가혹하게 몰아가게된 것이다.

 

그의 시신은 한동안 방치 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현충원에 안장 되었지만, 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그의 아내 백영옥은 완전히 두 눈을 실명하게 되고, 이후 남편의 명예 회복과 12.12 군사반란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던 그녀는 의문의 추락사로 44세의 젊은 나이에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던 그의 남편 곁으로 가게 된다.

 

국회에서 한 때 김오랑 무공훈장 추서및 기념 동상을 세우고자 하는 논의가 있었으나 아직도 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반란 수괴들의 비협조로 유야무야되어 버리고 오직 김오랑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라는 일념하에 김오랑 기념회를 조직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이렇게 책으로나마 김오랑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일 반란 수괴들의 그 추악한 행동에 맞선 이가 하나도 없이 모두들 자기 살길만 찾았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좌절하고 우리 민족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단념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 오랑 중령이 있기에 먼저는 우리 군대가, 그리고 또한 우리 민족의 도덕심과 정의감에 대한 한 줄기 소망의 빛을 볼 수가 있는 것이리라. 그런면에서 우리는 김 오랑 중령에게 큰 빚을 진 것이 틀림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어려서부터 배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너무나 일방적인 죽은 도그마로 전락되어 버렸다. 그렇게 자신의 일생과 온 가족의 희생을 통해 모든 것을 바쳤던 조국은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는 왜곡하고 미련한 짓이었다고 비웃으며 그들의 후손들은 오늘도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보며 어느 누가 내 자신을, 내 가족을 희생시키며 조국을 위해 살아가겠노라고 마음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나마 이제 역사의 복원이라는 이름 아래 재조명되고 있는 많은 독립투사와 선조들이 있지만 어쩌면 아직도 현재 진행형중인 12.12 반란사건의 희생자이자 참 군인의 표상을 걸어간 김오랑의 복권은 요원하기만 하다. 어쩌면 김 오랑의 복권은 우리 민족의 도덕성과 정의감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싶다.

 

현충원에 가면 꼭 그의 묘비 아래 한 송이 꽃을 놓아두리라. 그리하여 그토록 사랑했던 그의 눈먼 아내와, 아들의 죽음도 모른 채 이년을 병석에 있다가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아리워서 차마 눈을 감지 못했을 김오랑 중령의 혼이 편히 쉴 수 있기를, 그리고 이제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의 박수와 눈물 속에 편안히 잠드시기를 기원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