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경제학>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불평등의 경제학
이정우 지음 / 후마니타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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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저자는 참여 정부시절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대통령 정책 특별 보좌관을 역임하며 각종 경제 및 사회적 개혁 과제들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재계의 성장우선론에 맞서 분배와 성장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동반성장론'을 펼치며, 참여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로도 꼽혀 왔습니다. 이 책에는 저자가 그동안 추진하였던 정책들에 대한 이론적 배경들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2가지를 제시합니다.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았습니다만, 그가 지금까지 밝혀온 지향점은 '네덜란드식 노사 관계'와 '북유럽식 사회 보장'입니다. 네덜란드식 노사 관계라 함은 회사가 노조의 경영 참여를 인정하는 한편, 노조는 임금 인상을 자제하여 회사의 사외 경제력은 유지하면서 노조의 취업 안정성을 높이자는 취지입니다. 그리고, 북유럽식 사회 보장은 고율의 세금으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여 국민 모두가 고르게 향상된 복지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불평등이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불평등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경제 주체들이 그네들이 소속된 공동체 내의 법적 테두리 내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었는데, 왜 이를 최대한 불평등하지 않게 분배가 되어야 하나요? 저자는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구성원들간의 건전한 연대와 그를 바탕으로 한 사회 통합을 이유로 꼽고 있습니다.

   
  "소득 불평등을 방치한다면 계층 간 소득 격차는 점차 심화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대다수 저소득층의 소외감을 가져옴은 물론 나아가서는 사회 구성원의 공동체적 연대 의식을 와해시킴으로써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 소득 불평등이 큰 나라일 수록 각종 범죄가 만연해 사회가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의 정도가 극심한 경우에는 사회 갈등으로 비화되어 경우에 따라서는 위기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도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히 짚어 내지 못합니다. 불평등은 저자가 말한 요인들 외에도 개인이 소속된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개인의 선택, 능력, 연령, 우연과 같은 요인들도 역시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원래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소득 불평등 뿐만 아니라 정치적 민주화, 부의 불평등, 계급 갈등, 교육 기회의 불평등, 문화의 문제, 국가의 역할 등 서로 연결된 측면들을 함께 분석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 방법이 되겠지만..."
 
   

   세상에 완전히 평등한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불평등한 나라인가요? 사람마다 체감하는 정도가 다르겠습니다만, 지표상으로 비교해봤을 때 우리나라가 그렇게 불평등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불평등 정도가 객관적 수치로는 심각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수치가 심각하지 않은데, 불평등에 대한 심각성을 나타내는 것은 정서적, 감정적으로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분배 상태에 대한 일부에서의 호의적인 평가나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통계 자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잔반적 평가는 오히려 한국의 소득 분배가 상당히 불평등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더욱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중략) 이와 같이 발표된 통계와 상반된 국민적 인식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것은 대단히 어렵고 미묘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필자의 견해로는 그런 국민적 인식은 통계 수치의 근거는 비록 없을 지 모르나, 반드시 그만한 현실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이 아닐까’'라는 문제 의식으로 접근한 연구의 결과가 막상 수치적으로는 예상과 달리 심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데 대해 저자는 객관적 수치보다는 국민적 인식을 거론하며 주관적, 감성적으로 접근합니다. 저서에서 수많은 도표와 그림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던 저자가 정작 가장 중요한 결론 부분에 이르러서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말로만 논리를 펼치는 모습은 당혹스럽습니다. 그 중 "우리는 자연히 동북 아시아 지역의 평등한 소득 분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은 선정적이기까지 합니다.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접근 방식은 기회의 평등에 의해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접근 방식이 있는가 하면, 진정한 평등의 초점을 결과의 평등, 특히 소득의 평등에 맞추고 기회의 평등 그 자체는 극단적인 불평등으로 간주하는 접근 방식이 있습니다. 저자는 후자의 입장입니다. 저자가 결과의 평등을 고려하지 않는 이들을 모조리 '보수파’인 양 단정짓고, 비판하는 대목은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독선적입니다.

   
  "한국의 보수파들이 기회의 평등은 좋으나 결과의 평등은 결코 추구해서는 안 되는 잘못된 목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근거없는 편건에 불과하다. 모든 선진국에서 기회의 평등을 추구함과 더불어 어느 정도는 결과의 평등에도 신경을 쓰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복지 국가의 본질이다."
 
   

   평자는 '기회의 평등' 뿐만 아니라 '결과의 평등'까지 바라는 저자의 주장이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만을 주장한다고 그 역시 틀렸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문제는 '평등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진정한 평등과 정의와 공정과 도덕을 실현했다고 하느냐'하는 점입니다. 기회의 평등이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해야 한다면 자본주의 사회 발달의 원동력인 ‘동기 부여’는 그 힘을 잃게 될 것이고,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퇴보로 이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한국의 분배 정책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에는 저자가 모범 답안으로 주장하는 ‘네덜란드식 노사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시나 첫 번째 언급되는 대목이 '노동 조합의 활성화와 경영 참여의 도입'입니다. 그리고, '임금 격차의 축소'도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실현 가능성입니다.

   저자는 노동 조합이 임금 불평등을 증가 혹은 감소시키는 요인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어느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노동 조합의 활성화는 노동자들 간의 임금 격차를 벌릴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저자가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네덜란드식 노사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동 조합 활성화’와 ‘임금 격차 축소’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회사 측의 엄청난 양보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사는 대기업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입니다.

   
  "만약 비조직 부문이 크고 조직 부문은 작은 경우에 비조직 부문에 비해 임금 수준은 높고 임금 분산도는 낮은 조직 부문에서의 임금 상승이 산업 내의 임금 불평등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만약 노동 시장 내에서 조합원들이 평균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다면 노동 조합이 조직 부문 내의 임금 불평등을 감소시키지만, 전체 경제의 임금 불평등을 오히려 증가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임금이 높고 규모는 작은 조직 부문과 임금이 낮고 규모는 큰 비조직 부문 간의 임금 불평등이 '증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조직 부문과 조직 부문 간의 임금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도 증가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보입니다. 우리나라 노조의 도덕 불감증은 사측의 부도덕성을 나무랄 처지가 못 될 뿐만 아니라, 임금 불평등의 원인을 오로지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회사의 일방적 책임 내지는 해당 기업 노조원들의 비전투성만 나무라겠지요.



   그 외 정책들에는 경제학자인 저자가 노사 관계를 단순히 불평등 측면에서만 바라보려 하는 시각이 담겨있습니다만, 효율성을 따지는 경영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할 말이 무척이나 많아 보입니다. 저자는 북유럽과 네덜란드의 귤을 한국 땅에 심고 싶어 합니다. 탱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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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용설명서 - 일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경제의 모든 것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4
짐 스탠포드 지음, 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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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책의 원저는 '모두를 위한 경제학(Economics for Everyone")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노동자를 위한 경제학'입니다. 좀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캐나다 노동자를 위한 경제학'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경제 현상들 하나 하나 살펴 이해를 높이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의 '경제적' 권리를 주장하여 더 나은 삶을 살자고 주장합니다. 그와 더불어 곁다리로 환경 문제와 제3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거의 모든 경제 활동 및 현상들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경제적 격차가 점점 커지는 자본주의의 구조를 비판하고, 자유로운 시장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 편에 서 있는 학자들을 비방하면서 정부의 개입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세계화에 대해서도 노동자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냅니다. 결론적으로 노동자는 강력한 연대 투쟁으로 자본가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이렇듯 자본주의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만, 저자 역시 자본주의 이외의 대안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향후에 시장 경제가 진화하면서 자본주의가 수정되어 보다 나은 사회가 될 것을 기대할 뿐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정부에 투자, 통화, 노동, 재정, 조세, 무역, 금융 시장 등 다양한 부문에서의 대안들을 제시합니다. 기업을 투자를 늘리고, 실업률을 낮추고, 노동자들은 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반면, 부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게 하고, 고부가가치의 산업에 투자하여 수출을 많이 하고, 하이테크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며 기술을 습득하고, 국가 경제 전체를 휘청이게 하는 금융 시장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약하면 돈을 많이 벌어 노동자들에게 사용하라는 것이지요.

   결론은 캐나다 노동자들의 경제적 만족 향상입니다. 그가 제시한 정책들은 모두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을 조금 달리 표현하자면, 저자의 자국 노동자인 캐나다 노동자에게 이득이 되면 좋은 것이고, 불리하면 나쁜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는 지구 상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꿈꾸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믿지 않는 저자의 시각에서 저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무역은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모든 국가는 보호 장벽을 높이 세우고, 최대한 자급 자족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저자는 너무나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듯 합니다.

   책장을 덮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 돈 많은 사람(A)이 한 명 있습니다.
여기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B)도 한 명 있습니다.
여기 부지런한 사람(C)도 한 명 있습니다.

B가 A에게 가서 돈이 될만한 쌈박한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A는 투자를 합니다. B는 C를 채용하여 많은 수익을 벌었습니다. 1년 동안 약 1억을 벌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A, B, c는 각각 얼마씩 나눠야 하나요?
 
   

    A, B, C 모두의 입장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비율을 구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목표가 아닐까요? 저자는 C에게 A에게 맞서 싸워서 얻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A에게 '노블라스 오블리주'를 바라는 게 어쩌면 더 효과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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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
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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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개 심리학자 시저 밀란(Cesar Millan)을 다룬 글에서 따왔습니다. 밀란은 아무리 흥분한 개도 손만 갖다 대면 쉽게 안정을 찾게 했습니다. 밀란은 개에게서 무엇을 보았고, 개는 밀란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인류학자 브라이언 해어(Brian Hare)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는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의 행동을 학습합니다. 브라이언 해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장류는 동족의 신호는 잘 활용하는 반면, 인간의 신호를 활용하는데는 서툽니다. 개는 사람에게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을 기울입니다. 개는 우리의 눈을 들여다보고 어디를 보는 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는 것 같습니다. 동공이 확대된 둥근 눈은 공격적인 상태를 의미하지요. 개는 우리의 얼굴이 이완되었는지, 팔은 어디를 향하는지 주의깊게 살핍니다. 개에게는 턱이나 입의 상태, 팔의 움직임이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시저 밀란은 이러한 개의 특성을 깊이 알았기 때문에 그토록 쉽게 개를 길들일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책에는 이러한 에피소드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1996년부터 뉴요커에 실었던 글 중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간의 충동과 관련해 가장 흥미롭고 색다른 이야기를 가려 뽑아 재구성한 앤솔로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평자는 이러한 ‘앤솔로지’들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 책에서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데 도움이 되는 글들이 많지가 않았기 때문인데,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봤다기 보다는 특정 인간 개개인의 경험을 재구성하여 분석했다는 생각입니다. 저자의 특기가 여러가지 사례를 자신의 시각에서 재구성하여 새로운 면을 조명하는 데 있습니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는 저자의 당초 의도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에피소드가 있어 소개합니다.

   
  "1993년 윔블던 여자테니스 결승 마지막 3세트에서 야나 노보트나는 4대1로 앞서 있었고, 마지막 게임을 40대 30으로 이기고 있었습니다. 이번 게임을 이기고 한 번만 더 이기면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었죠. 상대는 철녀 '나브라틸로바'의 시대를 종식시킨 테니스의 여왕 "스테피 그라프"였습니다. 그런데, 야나 노보트나는 그토록 유리한 상황에서 실수를 연발하여 경기의 주도권은 그라프에게로 넘어갔고, 결국 노보트나는 우승의 문턱에서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사람은 행동을 학습할 때 의식적으로 그 순서를 익힙니다. 이를 '명시적 학습'이라고 합니다. 명시적 학습이 반복되어 몸에 익으면 반응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나중에는 저절로 몸이 반응하는 '묵시적 학습' 단계에 이릅니다. 반복된 학습으로 인해 묵시적 학습 단계에 도달했다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명시적 학습 단계가 퇴화된 모습을 보이면 '위축이 되었다’고 봅니다. 위의 예를 든 야노 노보트나 역시 위축이 되었던 겁니다. 
 
저자는 스포츠에서 위축되는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위축은 스포츠 경기에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요소다. 챔피언이 되려면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나머지 부분에도 그처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부진한 결과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압박감 때문일 수 있다."   
   

   우리의 피겨 여왕 "퀸 연아'가 대단하다는 것을 이러한 에피소드에서 새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의도는 멀게 너무나도 엉뚱하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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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 - 분노와 콤플렉스를 리더십으로 승화시킨 정조
김용관 지음 / 오늘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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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윤05월 21일
아버지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둬 굶겨 죽입니다. 역사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죽인 이유를 자식의 어미가 아버지에게 '자식이 군사를 동원해 아버지를 위해하려 한다'고 고해 바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공통적으로는 사도세자의 정신병과 노론을 배척하고 소론 정권을 세우려는 것에 반기를 든 노론의 주도면밀한 음모로 인해 생긴 참화라고 합니다. 1762년 윤5월은 양력으로는 7월이었습니다.

   기구한 운명 속에서 자라난 정조는 평생을 반대 세력들과 힘겨루기를 하며 국가를 통치하였습니다. 저자는 정조가 죄인으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인 콤플렉스를 드러내어 오히려 이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화시킨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정조는 이러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고, 탕평책을 실시하였으며,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들과는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저자는 정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영조를 의도적으로 비하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만을 이용하는 것은 사실의 왜곡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영조도 자신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무수리 출신이었다는 컴플렉스를 평생 가지고 살아가지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컴플렉스를 긍정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였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영조도 꾸준히 탕평책을 실시하며 인재를 고르게 쓰고자 노력하였고, 백성들의 세금의 어려움을 도와주기 위해 균역법을 시행하였으며, 백성들의 사정을 들어보기 위해 궁밖으로 나가는 궁성도 50여차례나 하는 등 그의 치적도 작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기업을 꾸려나가는 최고 경영자들이 정조로부터 배워야 할 경영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정조의 리더십을 참고할 만합니다만,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부하직원과의 의사 소통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 정조가 신하들과 소통한 방법을 참고할만 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보입니다. 어쩌면, 정조의 리더십 전체에 대해 오늘날에도 효력이 있느냐는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는 편지를 통해 막후 정치를 펼칩니다. 저자도 이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자는 정조가 이렇게 행동하게된 배경에 대해 더 신경을 씁니다. 즉, 확실한 자신의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거대한 노론과 싸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현재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의 입장이 정조과는 달리 자신의 지지 세력이 든든하다면 정조의 리더십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흔히 정조와 세종을 비교합니다. 두 임금 모두 학식이 높고, 개혁을 하려는 의지가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다만, 세종의 시대와 정조의 시대가 달라 두 사람이 발휘하는 리더십이 다르다는 데 주목하게 됩니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하지만, 번번이 이를 막아서는 반대 세력을 어떻게 극복하여야 할까요? 회사의 최고 경영자도 국가의 최고 경영자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숙제입니다.

   두 위대한 임금을 비교한 성균관대 국가경영전략연구소 함규진 박사의 글을 빌어 리더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물론 함규진 박사의 글이 정답은 아닙니다.

   
  “세종은 불협화음과 마주쳤을 때 조직의 개방도를 높이고 여러 목소리를 함께 아우름으로써 화음을 이루려 했다. 반면 정조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오직 그의 목소리에만 공명하는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려 했다. 하지만 성과는 세종보다 처졌던 것 같다. 기존 체제가 공고하게 유지된 상황에서 정조 개인의 카리스마와 특권에 힘입은 신진세력들이 쉽게 힘을 내기란 어려웠다. 노골적인 측근정치는 불평과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초계문신 중 일부가 가졌던 ‘이념적 과격성’, 즉 서학(西學)을 익힌다는 사실이 정치 문제로 부각되면서 신진세력들은 기를 펴지 못했다. 
 
정조는 이런 상황에서 신하들의 문체가 경박하다, 도리에 어긋난다는 의 문제를 들춰내 기를 꺾었다. 또 숨가쁠 정도로 자리를 바꾸는 인사정책을 써서 신하들의 결집을 막으려 했다. 이조판서는 고작 2개월, 대사헌은 보름을 버틸까 말까 하는 정신 없는 인사이동이었다. 정조 자신만 말을 하고 조직의 다양한 목소리를 막아버리는 방법을 쓸수록, 보이지 않는 뒷자리에서의 공론은 더 크고 심각해졌다. 

개인적인 능력 면에서는 세종보다 오히려 앞섰던 정조는 재위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이루었으나, 그것은 대부분 정조 혼자 힘으로 이루다시피 한 것들이었다. 세종처럼 여러 사람의 재주와 생각을 모아 이뤄낸 것은 적었다. 그래서인지 세종에 비해 근본적으로 혁신적인 업적도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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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속에 감춰진 한국사회의 진실 - 진보의 시선으로 바라본 2010 한국사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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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맨 위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진보의 시선에서 바라본 2010 한국 사회’. 이 글에서 풍겨나오는 느낌으로 미루어 이 책은 현 정부에 대해 칭찬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어보입니다. 결점만 보겠다는 거지요. 책장을 넘기면 역시나 이러한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저자들은 현재 상황에서 현 정부가 펼치는 정책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4대강, 친시장적 경제 정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경제 추락을 막기위한 정부의 재정 정책에 대해서도 트집을 잡으며, 정체성이 없다고 비판합니다. 심지어 대학생 학자금 대출, 미소 금융, 보금자리 주택 등과 같은 친서민 정책 칭찬에 대해서도 ‘악어의 눈물에 가깝지만’이라는 토를 답니다.

   이 책은 시종일관 성장에 대해 ‘분배’를 실현하기 위한 관점을 견지합니다. 그래서, 가계 경제를 살리자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가계 부실의 원인을 과도한 부동산 가격, 높은 대출 금리 그리고, 자녀를 위한 교육비라고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계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게끔 고용을 안정화시키고, 자본 규제를 통해 금리를 낮추어야 하며, 가계 경제를 위한 경제 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청합니다.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자본 시장에 규제를 가해 외국의 투기 자본에 제동을 걸고, 금융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금리를 조정하는 정책적 해결은 약간의 조정을 하면 어느 정도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고용에 대한 해결책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퍽 과격합니다.

   이 책에서는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과 국가가 공동 부담할 것을 요청합니다. 두 주체가 사람을 채용할 때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되,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실현시키는 한편, 기존 근로자의 임금은 삭감하지 말아야 하고, 해고는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이죠. 노동자들의 꿈이 반영되어 있는 개혁안입니다.

   우리나라는 중공업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한 중공업 분야가 산업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노동력을 자동화 기계로 대체함으로써 고용 효과가 예전만 못합니다.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이 가능하게 되었죠.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 공통의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업 구조를 고용 효과가 적은 제조업 위주에서 고용 효과가 높은 서비스업 위주로 변형시켜야 합니다. 피터 드러커가 노동자들이 평생 학습하며 지식으로 무장한 지식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 조건 없이 아직 제조업에 기반한 산업 사회에서 고용을 늘리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고용과 관련하여 또 하나 지적할 것은 기존의 노동자의 임금 하락없이 추가로 노동자를 고용하자는 주장도 현실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009년 우리나라 30대 기업의 평균 영업 이익율은 6.94%입니다. 여기에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하면 이익율은 더 떨어지겠지요. “노동력 추가 고용 → 제조 비용 상승 → 영업 이익율 저하 → 투자 부진 → 경쟁력 약화”의 시나리오가 그려지는데 이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가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이를 기업에 떠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퓰리즘에 기반한 퍼주기식 재정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책이 현 경제 상황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만, ‘어떻게’라는 방법이 빠져있습니다. ‘무슨 돈으로 해결할 것이냐’는 재정 해결 방법 말입니다.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그리스의 금융 위기가 어떻게 발생했는 지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경제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북한 이야기가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우리나라 마이너들의 시각이라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를 기술한 부분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북한과 남한과의 경색이 누구의 책임이냐에 대해 남한의 잘못이라고 봅니다. 북한 문제가 경제와 상관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경제 문제보다는 아무래도 정치 문제로 보아야 하는데, 생뚱맞은 느낌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극좌의 시각에서 기술되었고 뒷골목에서 소주 한 잔에 돼지 껍데기 뒤집으며 정부를 비방하는 한탄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들의 지지도가 왜 저소득층에서 조차도 외면받는 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합니다. 지금 수준에서의 글들은 건전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막무가내식 불만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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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 2010-04-05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도 이책에 대해서는 칭찬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어보이네요.

성장과 분배는 별개의 문제이고
성장을 위해 인위적인 노력해야 하듯
분배를 위해서도 인위적인 노력해야 하는겁니다.
trickle down은 말잔치일 뿐이란건 이제는 대개 동의하는 걸로 아는데..

그리고, "극좌"의 개념이나 알고 쓰시는지.. 흠..

무플보단 리플하나 달린게 날라나 나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