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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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로 지내온 40대 남성 '셰바이천'이 이 숯을 피워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그런데 그의 옷장에서 토막난 시신들이 담긴 수십개의 유리병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단순한 자살사건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으로 변모한다.

옷장에서 발견된 시신은 최소 두구. 경찰은 처음에는 셰바이천이 피해자들을 살해 후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그의 절친한 친구인 칸즈위안이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이며, 살해된 시신이 칸즈위안의 소설에 나온 사건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더해 셰바이천은 20년동안 밖을 나오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사건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는데...!

어쩌다 보니 찬호께이의 모든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서 <13.67>보단 쪼오끔 못하지만 <망내인>,<기억나지 않음, 형사>보다 나의 취향이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 터너인 동시에 정통 범죄 추리소설이라 경찰이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또한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뒤통수를 치는 반전도 매우매우 일품이다.(이 정돈 스포가 아니겠지..?) 특히 나란 사람은 작가가 보여주는 단서나 트릭을 전혀 주워먹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초집중하여 책을 읽었다.

메인 스토리 외에 셰바이천의 일기로 보이는 <망자의 고백>이나 <제목 미정의 소설>은 누가 정말 범인인지 추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커녕 혼란만 가중시킨다. 막상 책을 다 읽고 보면 작가가 이 부분을 통해 힌트를 주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전혀 받아먹지 못...했다. 어쨌거나 매 챕터가 끝날때마다 나오는 이 번외편들이 책의 흥미를 더 북돋우고 뒷부분을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앞부분으로 돌아가 번외편을 읽는 다면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주된 소재는 "고독함"이다. 책의 배경은 코로나 이후의 사회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방 안으로 숨어든 은둔족이나 렌털 애인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제목이 "고독한" 용의자인 것은 소설 속에 나오는 주요한 인물들이 전부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고층 건물과 삐까뻔쩍한 가게들이 즐비한 홍콩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이런 분위기들은 20년간 방에만 살았던 셰바이천이나 사회 어두운 곳에 내몰린 어린 여성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더욱 도드라진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사회현상을 반영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추천해주고픈 소설이다. 범죄의 동기나 트릭이 너무 억지스럽지도 않고, 사회적인 배경이나 상황을 생각한다면 정말 벌어질법한 일이다. 찬호께이 소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홍콩 특유의 분위기가 정말 잘 드러난다. 홍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정통범죄 추리소설이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의 사건 흐름이나 추리과정, 반전에 대해 정말 너무너무 얘기하고 싶은데! 스포가 될까봐 말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 하지만 정말 책의 소개나 줄거리만 보고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마지막 반전에서 정말 놀라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돕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모두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인간은 태생적으로 강자가 되길 바라는 종족이며, 약자를 착취함으 로써 쾌감을 얻는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궁극적이고 원시적인 의의일 것이다.(p.166)

*출판사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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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체면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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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완전하다고 말하지만, 법을 다루는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법 또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법의 체면>과 <완전범죄>을 통해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두 편이 가장 재밌고 인상깊었다. 작가님이 판사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회의감과 안타까움이 보이기도 했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판사들한테 멱살잡힐"글인데, 판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단편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인간의 욕망을 다룬 단편이나, "낙인"을 찍고 한 사람을 매도하는 사회 분위기 등 현실에 만연한 문제를 다루는 단편들도 흥미로웠다. 추리소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장르 스펙트럼이 꽤 넓어 놀랐다. 그치만 역시 최고는 법정소설.. 법조인의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특한 시각이 일품이라 작가님의 다른 추리소설을 보고 싶어졌다.

📖<법의 체면>
  장물 혐의로 2심까지 유죄판결을 받은 노인이 억울함을 풀고자 연정에게 찾아온다. 연정은 상고기각으로 끝날걸 알면서도 노인의 간절함에 상고를 한다. 무언가 찜찜한 사건이지만 노인의 억울함을 풀 길은 없다. 그러나 연정은 이 사건 뒤에 더 큰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곧 깨닫는다.

🔖한 입으로 두말할  수 없다. 그것은 법의 체면이다. 그리고 그것은 법의 이치보다 더 중요하다.(p.57)

📖<당신의 천국>
  국회의원 최명환에게 한쪽 눈과 다리를 잃고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여성이 찾아온다. 그녀는 대뜸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너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결국에는 '막장드라마'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작가였던 것이다.
  여자의 고백은 흡입력이 있어 나도 모르게 집중하데 된다. 대체 누구를 죽였으며 어쩌다 이런 처지에 처하게 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사실 최명환을 찾아온 이유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살짝 개연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한 사람을 낙인 찍어 매도하는 현재 사회의 분위기와 시청률을 위해 그 어떤 자극도 마다하지 않는 방송세태에 대해선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고요? 설마요. 선생님이 그 힘을 쥐기 전에는 자유를 달라고 부르짖지 않았던가요?(p.115)

📖완전범죄
  마사지숍 사장인 석지연은 자기 직원 방미래를 과실치사로 죽게 하여 재판을 받고 있다. 의사 출신의 검사인 '나'는 석지연이 고의로 방미래를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그녀를 기소한다. 과연 석지연은 고의로 피해자를 살해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과실치사였을까?

  AI가 판결을 내리면 더 정확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아마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법에는 감정이 없지만, 판결에는 감정이나 개개인의 판단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단편이었다. 재판의 흐름도 흥미로웠고 마지막 반전까지 짜임새가 아주 탄탄했던 편이다

🔖어느 누구도 범죄라고 알아챌 수조차 없는 살인. 이보다 더 완전할 수 없는 완전범죄다.(p.195)

📖<애니>
  잠자는 동안 원하던 인생과 꿈을 체험할 수 있는 기계 프레디. 동한은 박사 금사원이 만든 프레디를 통해 성공적인 CEO로서 산 60년의 인생을 체험하게 된다. 그 다음으로 이상형의 여자와 연애를 하는 꿈을 체험하게 해달라고 하는데 자꾸 꿈이 어그러진다.

📖<행복한 남자>
  평범하고 자신감도 부족한 남성이 소개팅에서 만난 예쁜 여자와 행복한 연애를 시작한다.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연애는 점점 그 끝이 보인다. 남성의 심리묘사에 중점을 둔 소설이라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잘 공감하진 못할 것 같다. 원래 소설은 경험해보지 못한 걸 체험하는 거라지만, 그러기엔 심리묘사가 그렇게까지 뛰어나진 않다는 점이 아쉽다.

📖<컨트롤 엑스>
  한 과학자가 물체를 원자단위로 분해하여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 마약 밀수 혐의로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한 강태수는 박사의 꼬임에 넘어가 이 전송기의 인체실험 대상이 되는데...
  읽는 내내 영화 <프레스티지>가 생각이 났다. 영화의 반전 트릭과 소설 결말도 굉장히 비슷하다. 소재가 흥미로웠고, 결말 이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출판사 황금가지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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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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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의 우연과 순간,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이 엮이고 엮여서 삶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곤 한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톺아보듯이, 우리는 책을 읽으며 바움가트너의 과거와 현재를 둘러보게 된다. 240여쪽의 결코 길지 않은 얘기 속에는 넉넉치 못했던 가정환경과 부모, 그리고 바움가트너의 팔다리와 같았던 아내 애나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때론 애나가 남기고 간 글 속에서, 햇빛이 내려쬐는 뒷마당에서 불현듯 바움가트너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시간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꼬리를 물듯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마치 출근길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주하듯이, 그렇게 우리는 바움가트너의 얘기를 듣게 된다.

이렇게 산발적으로 전개 되는 이야기들 속에서 인상깊게 느껴지는 주제가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상실"과 "연결"이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화자인 바움가트너가 인생의 과반을 함께 했던 아내 애나를 잃는 데서 느끼는 "상실"이 있다. 그는 하루 만에 겪은 일련의 사고들과 한 밤중에 받은 전화를 통해,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모순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과 그로 인한 고통에서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고자 노력했으나, 결국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했다고 말한다. 아내가 죽은 뒤 10년이 지나서야 상실 그 자체를 삶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애나는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단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바움가트너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죽었어도, 여전히 산 자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진부한 말을 어쩜 이렇게 세련되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감탄이 나온다. 우리가 떠나 보낸 자들을 생각하고 추억할 때, 그들 또한 여전히 무에서 유로 존재하게 된다.

이 작품이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걸 생각할 때, 몇 십년의 인생을 살아온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아직 가슴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상실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얼마나 우아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슬픔과 상실을 토로하는지 생각해 본다.

두 번째로 인상깊은 부분은 "연결"이다. 이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산자와 죽은 자의 연결로 드러나기도 하고, 서로 맺는 관계와 도움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하나같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음을 말한다. 바움가트너는 <운전대의 신비>라는 책을 마무리 하던 와중에 베브의 편지를 받아 애나의 시집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을 삶의 새로운 장으로 맞아들인다. 이는 또 우연히 만난 검침원이었던 에드가 바움가트너의 정원을 수리하는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바움가트너의 수많은 생각의 꼬리가 연결되듯이, 그가 만난 인연과 순간들이 모여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게 된다.

역자는 이 책이 바움가트너라는 나무의 가지를 계속해서 따라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굉장히 여러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한 사건의 종결은 또 다른 사건의 시작으로 이어져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기대하게 된다.

바움가트너란 가상의 인물의 인생 마지막 챕터를 읽고 있음에도, 폴 오스터의 마지막 얘기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삶을 살면서 겪었던 상실과 그것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 과정, 그리고 그 동안 스쳐지나갔던 순간들이 현재 어떻게 작용했는 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 번 읽는 것보다 인생의 다양한 때에 읽는 것이 좋은 책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읽게 되면 또 다른 감상이 나오지 않을까?

*출판사 열린책들(@openbooks21 )로부터 가제본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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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란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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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의 자리를 탐하며, 시간을 지배하고 영원한 삶을 누리는 데 성공한다. 이름하야 <신금속 인간>은 최소한의 살점 조각을 제외하고 몸의 대부분을 금속으로 교체한 신인류이다. 이들 중 금속 교체율이 매우 높은 소수의 엘리트들은 성채의 주인이 되어 날마다 전쟁을 벌인다. 오로지 파괴와 전쟁을 일삼는 것이 목표이며, 휴전 중에는 쾌락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다음에 벌어질 전쟁 계획을 세운다.

  이들이 살고 있는 모데란의 하늘은 증기 방어막으로 둘러쌓여 달마다 색이 바뀌고, 오염된 토양은 잿빛의 플라스틱으로 뒤덮여 있다. 새들마저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향기 인간이 온갖 인공적인 향들을 만들어내고, 때가 되면 플라스틱 땅의 구멍에선 온갖 나무와 꽃들이 튀어나온다. 모데란의 사계절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나이의 목표와 사나이의 관점을 가진 사나이의 나라"
모데란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문구가 있을까? 몇십년 전에 쓰인 고전 소설이란 점을 감안할때도 정말 남성적인 소설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신금속 애인" 또한 마찬가지이다.(여기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는 그냥 넘어가고..)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과장되어 있고, 과격하고, 이상하다. 성채의 주인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전쟁을 벌이며, 전쟁을 잘 수행하고 증오를 효과적으로 드러냈을 때 상을 받는다.

작가는 이런 과장과 선전을 장황한 문체로 서술함으로써 모데란의 기이함을 드러내고, 인간의 무모함을 비판한다. 성채의 주인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전쟁을 벌이는 모습들은 현재 시대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쓸모 없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신금속 인류가 신이 자신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상상하며 자화자찬 하는 장면에선, 끊임없이 지구를 개발하고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자 하는 인간들에 대한 조소도 느껴진다. 살점 조각, 다른 말로 말하면 인간성이 없을 수록 칭송을 받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점점 인간성이 말살되는 작금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이 1960년대에 쓰여진 걸 생각한다면, 아마도 냉전시대에 대한 환멸이나 물질만능주의 등이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싶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고 폭력이 만연한 것을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도 모데란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플라스틱과 무쇠와 콘크리트가 땅을 뒤엎고, 인류는 전쟁과 쾌락에 몰두하고, 증오를 최고의 감정으로 치는 이 모데란의 세계가 말이다.

  이성과 증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데란에서 이 책의 주요한 서술자는 가끔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곤 한다. 신금속 인간과 병기인간을 가르는 주요한 지점은, 학살을 자행하는 순간에도 감정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증오의 감정만을 가질 수 있겠는가. 10번 성채는 신금속 애인이 떠나간 뒤 상실감에 전쟁을 내팽겨치기도 하고, 한 때 함께했지만 다른 길을 간 동료를 만나자 회한에 빠지기도 한다. 갑자기 해바라기를 심겠다며 1에이커의 흙을 구해오란 명령은 여전히 그에게 인간성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런 부분들은 모데란의 비인간성과 대조되어 더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면 읽기 쉬운 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하얀 마녀의 계곡이나 천진난만하게 교체를 기다리는 어린 딸과 아들, 올데란(olderan) 등 작가가 창조해 낸 세계관이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초반의 진입장벽만 넘긴다면 그래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확실히 요즘 나오는 SF 소설과는 너무 다르고, 이 과장되고 시적인 문체에 어쩐지 스며든 것 같다.

*출판사 현대문학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모데란은 사나이의 목표와 사나이의 관점을 가진 사나이의 나라였다. 전원을 켜고 끌 수 없는 살점 조각을 매단 여성형 강철의 존재와 영원한 삶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하게 확인되자, 우리는 그들을 모두 몰아냈다. 그토록 단순한 일이었다. 우리는 낡은 신금속 잔소리쟁이 계집 재배치 위원회를 발족했다. 우리는 그 여자들을 준비해놓은 땅으로, 벽으로 둘러싸인 하얀 마녀의 계곡으로 이주시켰다.(p.138)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고, 거친 눈으로 망치를 휘둘러 우리의 기반이될 지구를 굴종시키면서도, 그런 방식은 원하지 않았다. 신께 맹세코, 우리는 인간으로서 온갓 노력과 교활함을 발휘하여 신을 속박할 것이다. 신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이렇게 울부짓는 모습을 볼 것이다. '내 자식들이 나를 초월했구나!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자식들이 신의 모든 능력을 자신의 손으로 옮겨버렸구나. 그 존재의 영원함과 시간을 뛰어넘는 힘까지도! 내 과업은 이로써
끝났도다.'(p.173)

🔖"진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양인으로서, 전쟁이 가늠자이며 파괴가 업적이고 그에 따라 포상이 내려지는 시대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임무에 소홀한 이유를 해명할 생각이 있소? 아니면.... 참회라든가?"(p.222)

🔖인간이란 많은 면에서 끔찍하고 비열하며 부도덕한 존재다. 그러나 인정하자, 인간도 분명 한 가지 미덕은 품고 있으니. 인간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끔찍하고, 부패하고, 비열하고, 진정으로 사악한 자신을 최후의 순간까지 유지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 온
전한 악성이 보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뢰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은 신의 성질을 가진다.(p.241)

🔖아, 그래, 언제든 차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건 당연한 듯 하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수지맞는 일이 아닐 테니까.(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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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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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서평단활동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유쾌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이 듬뿍 담겨 있다. '저런 사람'도 이 세상에 많다는 걸 온 몸으로 세상에 외치고, 회피하기 보다 직접 부딪치려 한다. 친구들에게 스무살 때 마흔 넘은 농촌 총각에게 팔려 갈 뻔한 경험을 어떻게 농담처럼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런 경험들을 농담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작가님의 유쾌함이 부럽다.

전작에서 앞이 안보이는 데 어떻게 시각장애 친구들을 데리고 대만을 갈 결심을 했을까 생각했는데, 그의 여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위험하다는 필리핀 클라크를 포함해서, 두만강, 백두산, 베트남 등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만 가이드님처럼 착한 사람만 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필리핀에선 왠 양아치같은 가이드가 술을 엄청 먹고 일정을 빠꾸내질 않나, 베트남 하노이에선 계속해서 쇼핑을 강요하는 가이드도 나온다. 그래도 조승리 작가는 이 모든 경험들이 소중하다는 듯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베트남 나트랑에서 겪었던 따뜻한 차별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행 내내 비 케어풀이라 말하며, 버려야 했던 맥주를 몰래 챙겨와 챙겨주는 그 따뜻한 마음들이.

낯선 경험은 해외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그가 안마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 과거의 인연들까지 삶의 작고 일상적인 부분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인상 깊었던 점은, 작가 자신이 냉소적이고 때로는 비뚤어진 못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드러내는 점이다. 세상을 좋게만 보는 쇼핑도우미 분에게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사촌동생 가영과 친구 윤이의 에피소드에서는 자신의 비겁함을 솔직하게 얘기한다. 장애인들이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부시고, 그것에 자신의 성격이 일조했음에 기분은 더러웠지만 뿌듯함을 느낀다. 나는 때때로 삐져나오는 그 심술궃음과 냉소적인 유머들이 너무 좋다. 너무 바르기만한 얘기보다 이렇게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더 매력있달까.

모네 전시회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작가님은 장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덕분에 용기를 얻고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말한다. 아마 이 전시회를 준비한 사람들도 그런 사람을 중 하나였으리라. 장애를 이해하는 것은 아마 불가할 것이다. 그래도 장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한다.

수필집을 다 읽고 나니 눈 앞에 붉은 빛이 아른 거리는 듯 하다. 어스름하게 느껴지는 붉은 빛, 시끄러운 화약 소리, 그리고 논두렁을 쌩 하고 지나가던 빨간 폭스바겐의 잔상까지. 나는 작가님이 느끼고 묘사하던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또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탱고에 이어 플라멩코 춤을 배우는 도전에서 그의 용기를 배운다. 여전히 조승리 작가님이 말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다. 다음 수필집도 어서 만나보기를 기대한다. 작가님 글 많이 써주세요😉

🔖그날 밤 나는 친구들에게 스무 살 때 마흔 넘은 농촌 총각한테 팔려 갈 뻔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깔깔댔다. 진지한 내 친구들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p.33)
🔖낮선 공간에 혼자 남아 있을 소년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직은 도망칠 곳이 있으니 당신도 후회 없이 부딪쳐보라고. 오롯이 혼자인 일상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때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알게 될 거라고.(p.162)
🔖"우리에게 아직 문턱이 남아 있니?"(p.208)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부모의 보호가 사라져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고,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 삶이 그 증명이다.(p.214)

🔖당신들이 말하는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써야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거야. 그게 내가 정한 나의 사명이야.(p.224)

🔖창 밖에는 보이지 않는 불꽃이 평평 연속해 터졌다. 나는 야속한 하늘에다 대고 엄마처럼 울화를 쏟아냈다.
"불꽃 따위 안 보여도 난 잘 먹고 잘 살 거다. 이 더러운 세상아!"
나는 내 행동이 우스워 그때처럼 낄낄낄 웃었다.(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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