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리 - 2024 공쿠르상 수상작
카멜 다우드 지음, 류재화 옮김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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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검은 10년’, 국가에서 법으로 언급을 금지한 내전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소설이다. 카멜 다우드는 잊혀지고 외면당한 역사적 아픔을 문학의 이름으로 재건한다.

알제리의 검은 내전은 이슬람 무장단체와 군부 쿠데타 세력의 대립으로 시작되었고, 무수히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2005년 화해법이 제정되면서, 이슬람 무장 세력들은 ‘요리사’로 둔갑되어 사면을 받고 내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책 속에서 이 내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성대를 잃어 말할 수 없는 주인공 ‘오브’이다. 오브는 바깥언어가 아닌 내면의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전쟁의 폭력과 상처, 곳곳에 산재한 흔적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녀는 하드 셰칼라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로 가족을 잃고, 목이 그어진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다. 이로 인해 오브는 얼굴 밑에 커다란 ‘미소’와 튜브를 지닌채 살아가게 된다.

소설은 오브가 뱃속에 품은 아이 ‘후리’에게 세상에 태어나선 안되는 이유를 말하며 시작된다. ‘후리’는 이슬람에서 천국에 간 남성들에게 주어지는 아름다운 처녀들을 뜻한다. 오브에 따르면 후리가 천국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들은 무수히 많다. 이 세계는 여자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있어서는 안되고, 목소리를 내서도 안되며, 팔을 드러내서도 안된다.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죄악시 되는 곳이자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이 시작되는 이 곳에, 과연 생명을 낳는 것이 옳은 일일까?

오브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하드 셰칼라 마을을 향해 나선다. 도중에 말을 절대 멈추지 않는, 알제리 내전의 목격자 아이사를 만나고, 억울하게 납치당하고 강간당했으나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함라의 이야기를 듣는다. 함라를 끌고간 진짜 테러리스트들은 ’요리사‘로 변장하여 모든 죄를 사면받았는데, 왜 여성들만이 고통받아야 하는지. 이 처참한 현실에 화가 난다. 가해자들은 받아주면서 왜 피해자들은 끌어안아주지 못하는 걸까.

알제리의 독립전쟁은 기념비가 세워지고 역사적 승리로 전해지지만, 알제리 내전은 사람들에게 ‘망각’을 강요한다. 오브는 내전의 살아 있는 증거이므로, 이는 오브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과 같다. 오브가 1999년 12월 31일의 학살을 기억하고 있어도, 그 전쟁의 존재를 알려주는 증거는 오브의 몸을 제외하곤 세상 어디에도 없다.

종교와 신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학살이 행해졌을까. 하드 셰칼라에서 벌어진 학살은 너무 끔찍하고 마음이 아파 다시 읽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신이 다섯살과 아홉살 난 아이를 잔혹하게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인지. 수염을 단 남자들은 온갖 이름을 빌려와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 행위를 정당화한다. 왜 항상 피해자는 여성과 연약한 아이들일 수 밖에 없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슬펐다.

피해자임에도 가해자가 된듯한 죄책감에 시달렸던 오브는 이 순례여행의 마지막에 가서야 언니의 사랑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죽은 척을 하라고 속삭였던 언니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그제서야 오브는 ‘진짜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나는 후리를 낳기로 한 오브의 마지막 결정이, 이 세상이 나아질거란 희망을 내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브는 그저 살아내기로 결심한 것 뿐이다.

이 책으로 인해 카멜 다우드에겐 국제 체포 영장이 내려졌다고 한다. 저 머나먼 공간과 시간의 사건을 데려와, 그 아픔에 같이 공감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보여준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종교와 국가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학살과 강요당한 침묵, 그리고 여성에 대한 얼토당토 않는 폭력들까지. 한 번은 꼭 읽어보아야 하는 책이다.

+23년 공쿠르 수상작인 <그녀를 지키다>도 정말 좋았었는데.. 앞으로 공쿠르 수상작은 무조건 읽어보리라 다짐😎

🔖”넌, 넌 한 권의 책이야." "진짜 책.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 무지한 자들만 모르는 알 파벳이야.“ (p.20)

🔖밖에선 난 벙어리야. 말하려면 몇 마디밖에 쓰지 않아. 하지만 이곳, 내 머리속에선, 너와 나 사이에선, 내 기억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단어들이 줄줄이 나와. 바깥 세상을 마주할 때 내 안의 언어는 정교함의 경이, 그 자체야. 그 안에서 저 옛날이야기가 꿈틀거리며 되살아나. 그 경이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거의 모든 것이 태양 없이도 빛날 거야. 단 네가 있는 곳은 제외하고. 맞아! 이 안의 언어는 내가 사랑을 할 때 빛나. 분노 속에, 웃음 속에 있을 때도. 특히 불면에 시달릴 때면 여름날 홍수처럼 이 언어는 부풀어 오르지.(p.20~21)

🔖 전쟁을 통틀어 살아남은 사 람이 단 한 사람이라면, 그 전쟁은 그 사람의 상상 속 일 이 된다. 그 상상이 전쟁이 벌어진 곳, 유일한 장소가 되는 거다.(p.141)

🔖나 역시 내 전쟁에 대한 목소리를 원한다는 것을. 십 년 동안의 살육 끝에도 우린 그 어떤 전리품도 얻을 수 없 었어.시신조차, 한마디 말조차.(p.145)

🔖예언자의 말씀대로 미소 하나로 우주를 환히 밝힐 수 있는 나의 아름다운 아이야. 내 안에는 오로지 너뿐이었다, 목적을 상기 시켜 주는 존재는. 그 목적은 내 입안에 있었다, 오래되어 씹어도 아무 맛도 안 나는 질문처럼. (p.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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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속의 비밀 1
댄 브라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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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의 신작. 2편도 진작 주문해둘걸. 다음 편이 너무 궁금한데 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비밀 속의 비밀> 파트 1에선 유럽 오컬트의 중심지라는 프라하를 배경으로, 알 수 없는 비밀 조직 Q와 고대 괴물 골렘이 나타나 주인공 로버트 랭던을 위협한다. 이 소용돌이의 중심지에는 랭던의 연인 캐서린 솔로몬이 있다. 노에틱 과학자인 캐서린은 인간의 뇌와 의식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누군가에겐 큰 위협으로 비추어진 듯 하다.

캐서린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뇌의 화학작용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인간이 기억하는 것들을 모두 합하면 왠만한 데이터센터로는 모자란데, 이게 작은 뇌 하나에 담겨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핸드폰을 통해 클라우드 센터에 담긴 데이터들에 접근하는 것처럼, 뇌 역시 라디오처럼 주파수를 맞추어 우주에 떠다니는 의식들을 수신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뇌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 뇌는 그저 성능이 아주 좋은 수신기일 뿐이다. 이 이론을 적용하면 유체 이탈, 서번트 현상, 초능력, 예지 등 많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설명된다.

물론 이게 왜 비밀 조직 Q에게 위협이 되는진 잘 모르겠다. 그 조직은 프라하 주재 미국 대사관도 마음대로 조종할 뿐더러 체코 국가정보원 '우지'도 마음대로 부린다. 캐서린를 프라하로 초대한 뇌 과학자 브리기타 게스네르 또한 그 조직의 일원이다. 이들은 캐서린의 책 원고를 받은 미국의 편집자 포크먼을 납치하여 원고를 없애려고 한다. 이들과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골렘' 또한 정체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1편은 이처럼 관련 인물을 소개하고, 사건의 전개 과정을 소개하는 도입부 역할을 착실히 해낸다. 온갖 전설과 오컬트, 종교, 예술이 모여 있는 프라하를 배경으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의식에 대한 비밀을 다루니 너무 재미있다. 여기에 더해 기호학자인 랭던이 중세 역사와 심볼들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다빈치 코드>나 <천사와 악마>를 읽을 때, 랭던이 유럽의 오래된 역사와 유적에 숨겨진 비밀 장소들을 파헤치는 것이 어찌나 흥미롭던지! 2편도 이런 장면들이 마구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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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바트 비룡소 클래식 60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헤르베르트 홀칭 그림,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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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정말정말 좋아했던 크라바트!!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해리포터, 드래곤 라자 등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 있었다. 크라바트 역시 아직도 기억이 새록새록한 책 중 하나인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어 정말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내 기억 속 크라바트는 음산하고, 어딘가 으스스하고 신비로운 마술로 가득 찬 세계였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먹을만큼 먹은 지금, 크라바트의 세계는 여전히 환상적이다. 하긴, 밤마다 까마귀로 변해서 마술을 익히는 세계가 어떻게 재미가 없겠어...!

이야기는 크라바트가 어느 날 꿈속에서 정체 모를 목소리의 부름을 듣고 슈바르츠콜름의 방앗간으로 떠나는 데서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 그곳은 평범한 방앗간이 아니라, '암흑의 학교'였고 방앗간 주인과 직공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크라바트는 견습 공 생활을 마친 뒤 매일밤마다 까마귀로 변해 주인으로부터 마술을 배운다.

마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라니! 해리포터처럼 꿈과 희망이 가득찬 학교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방앗간 직공들은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어 마음대로 방앗간을 떠날 수 없다. 그리고 주인은 대부라는 정체모를 사람에게 일년에 한명씩 생명을 바치기로 되어 있어, 직공들은 매해 겨울이 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방앗간에서의 1년은 3년과 같아서 우리의 주인공 크라바트는 무럭무럭 성장한다. 방앗간 주인은 크라바트에게 힘과 권력을 약속하며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려고 한다. 하지만 크라바트는 죽어간 동료들의 복수를 위해, 그리고 앞으로도 다른 동료의 목숨을 바치고 싶지 않아 그 제안을 거절한다. 주인을 이긴다고 해도 그 동안 배운 마술이 다 사라져 평범한 사람이 될텐데. 크라바트는 자유를 위해 자기 앞에 약속된 안락한 미래를 포기한다.

이제 주인은 크라바트을 없애려고 하는 가운데, 그를 위기에서 구한 것은 유로와 칸토르카이다. 유로는 칸토르카를 불러 그녀가 방앗간 주인에게 도전할 수 있도록 한다. 칸토르카는 눈을 가린 채 까마귀로 변한 직공들 사이에서 크라바트를 맞추어야만 한다. (어쩐지 이 장면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지막 장면과도 비슷하다. 찾아보니 미야자키 하야오가 실제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크라바트가 주인을 이길 수 있도록 도운 건 우정과 사랑의 힘이다. 톤다나 유로, 칸토르카가 없었더라면 크라바트는 주인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권선징악의 단순한 스토리 같지만 그렇지 않다. 크라바트는 견습공 시절 자신을 몰래 도와주었던 톤다를 본받아, 자신 또한 어린 견습공들을 돕는다. 외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약자를 도와줄 줄 아는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크라바트를 보면서, 독자들은 어떤 고난이 와도 결국엔 선이 승리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칸토르카가 준 반지를 끼면 힘이 강해지는 것 또한, 타인을 진정으로 위하는 사랑이 가장 강력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게 바로 청소년 소설만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게다가 품푸트 일화나, 황소로 변해 돈을 벌고 다시 사람으로 도망치는 일화라던지, 마술을 소재로 한 기상천외하고 재밌는 얘기들도 많다. 중학교 때 이 책에 푹 빠졌던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지금도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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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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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김홍 #도서제공

🏷바다에 갑자기 생겨난 말뚝들이 도시로,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온다. 과연 이 말뚝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 책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 들며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 나는 책을 넘기며 계속 "이게 뭐지? 이...게 뭐야?"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 장은 몸값도, 협박도 없는 황당한 납치를 당하고, 도시에 말뚝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장은 갑자기 말뚝과 함께 정부와 대기업의 주요인물로 우뚝 선다. 초반엔 적재적소에 쓰인 가벼운 유머와 으레 회사원들이라면 겪는 아니꼬운 경험들이 책장을 수월하게 넘길 수 있도록 해주었으나 이내 말뚝에 담긴 비밀과 눈물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가는 이 여정이 책을 다 덮은 뒤에도 여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말뚝들>의 주인공 장은 본부장에게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찍혀서 대출심사 담당임에도 불구하고 허구헌날 외근을 나가야 하는 처지이다. 그의 처지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로 목숨을 잃은 말뚝들과 다르지 않다. 말뚝들은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시랍화'된 것이다. 장이 주요인물이 된 까닭은, 1호 말뚝의 입에서 그의 명함이 나왔고 그 말뚝이 갑자기 사라져 장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뚝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은 현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실들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장을 협박하고 자진해서 계엄사령부에서 일한 진희 선배는 계엄이 종료된 뒤에도 회사 파벌을 잘 파고들어 실세가 된다. 계엄 전 미국으로 도망간 본부장도 마찬가지로 돌아와 중요한 요직을 꿰찬다. 장이 말뚝의 이름을 찾고 그 한을 풀어주었다 해도, 여전히 부조리는 존재한다. 이 가벼움과 무거움을 넘나드는 소설이 시사하는 바는 아주 날카롭다. 이런걸 두고 해학이라고 하던가? 불과 반년 전에 일어난 계엄이라는 소재를 시의적절하게 활용하고, 회사 내 정치질, 불합리한 사회현실, 현대에도 존재하는 계급 등 사회문제를 풍자한다.

처음엔 장이나 차대리가 주고받는 대화가 너무 가볍다 생각했는데, 소설을 다 읽고보니 정말 치밀한 구성이 아닌가 싶다. 납치사건은 뜬금없어 보이지만, 아마 이 불운한 사건이 없었더라면 장은 구태여 말뚝의 한을 풀어주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구석구석에 이런 장치들이 숨겨져 있어 개연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또 운전수 없이 운전하는 말리부 차량이라던가 말뚝에서 터져나오는 하얀 빛들이 이 소설 장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뜬금 없고 비현실적인데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나도 이 사회에선 개미 같은 존재고, '장' 말마따나 노비에 가깝지만🥲 눈앞에 펼쳐진 부조리들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에 있어 면죄부가 될 수 없단 걸 잘 안다. 어쩌면 장이 납치 당하고 나서 계속해서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지 라고 되뇌이는 건 '나' 역시 '말뚝들'과 다름 없음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그런 일이 너에겐 일어나선 안되냐고, 그냥 사고일 뿐이라고 데보라가 말하는 것도 인상 깊었다. 나에게 닥친 불행도, 뜻밖의 행운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삶에는 원래 엄청난 일이 계속 되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부터 봐요. 불행을 특별 대우해주면 불행이 잘난 척을 해요."(p.185)

🔖얼마나 간절해야 전과 다른 사람이 될까? 죽음으로 협박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변할 수 있을까? (p.250)

#말뚝들#김홍#한겨레출판#한겨레문학상#한겨레문학상30주년
#책서평#서평단#리뷰#책스타그램#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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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지음, 위효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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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유년기에 대한 작별인사와 같은 책. 인생은 상실과 쓰라림의 연속이고,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미술에 대한 해석과 교양지식도 풍부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문학임을 느낄 수 있는건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책에 수록된 그림과 해석은 두고두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소장의사 만프로🤭!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열 살의 어린 아이 모나와 할아버지 '하비'가 매주 수요일마다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미술관을 방문하여 단 한 점의 그림만을 감상하는 이야기이다. 모나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깜깜해지는 일을 겪고,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워한다. 하비는 모나가 시력을 잃기 전에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나의 엄마 카미유 에게는 아동정신의학자를 만나러 간다고 거짓말하고, 매주 파리의 아름다운 미술관들을 방문한다.

고전주의, 인상파, 초현실 주의를 비롯해서 회화, 조각, 설치미술이 이르기까지. 하비가 모나에게 보여주는 미술은 정말 다양하다. 책 뒷장에는 실제 작품 사진이 있어서 우리는 모나와 함께 그림을 감상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흔히들 알고 있고 유명한 그림 외에도, 작가의 덜 유명한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네는 수련 연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엔 <생라자르역>이 수록되어 있고, 클림트는 키스가 아닌 <나무 아래 피어난 장미나무>, 몬드리안은 선과 기하학 무늬가 없는 회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미술에 조예가 많이 없어서 덜 유명하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은 물론, 다소 덜 알려진 작품들도 있어서 좋았다!

여기까지 보면 그냥 미술책이 아닌가 싶지만, 하비와 모나는 우리에게 삶과 예술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가르쳐준다. 모나는 맨 처음 만난 보티첼리로부터 받는 법을 배우고, 드가의 작품으로부턴 자기 삶을 춤출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일상과 예술이 뒤섞인 뒤샹의 아름다운 혼돈에서 충격을 받고, 모호하고 어려운 현대미술에서도 작품의 의미를 읽어낸다. 52주 동안 모나는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은 물론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착실하게 배우거 성장해 나간다. 미술은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지만, 그 안에 담긴 모티프와 의미를 발견하고 삶에 대한 지혜로 연결시킬 때 더 빛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책 후반부에는 모나의 시력에 대한 비밀과 사랑하는 할머니 콜레트에 대해 모두가 감추는 사실이 밝혀진다. 에필로그까지 다 읽고 나면 하비와 모나의 52주간의 여정이 마무리가 된 것에 아쉬움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미술작품과 묵직한 메시지들, 그리고 어린 모나의 잔잔한 일상과 함께하여 읽는 내내 즐거웠다.

🏷파리를 방문한 것이 거의 10년이 다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이 책을 읽고 미술관을 방문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도 풍경화 설명은 지루하고 와닿지 않는 걸 보면 역시 나의 취향은 인상파와 현대미술..! 파리를 갔을 때도 오르셰 미술관이 정말 좋았었는데 이 책에 수록된 드가, 마네, 모네, 고흐의 그림이 너무 맘에 든다. 퐁피두 미술관은 처음 봤을 때 저게 미술관이야 싶었는데, 미술관의 모습만큼이나 안에 작품들도 흥미롭다. 그 시절에 정말 대충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니키 드 생팔의 <신부>는 꼭 다시 보고 싶다. 소장가치로는 정말 정말 충분한 책!

🔖흘러가는 시간을,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투쟁을, 이미 패배가 정해진 투쟁을 감히 해부하는 거란다.(p.108)

🔖삶은 불완전하기 마련이야. 하지만 거기에 살아가는 묘미가 있지.(p.255)
🔖알겠니, 이 작품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삶이 그저 살기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는 거야. 삶을 춤출 필요도 있어. 우리의 동작, 우리의 움직임, 우리의 행동이 세상만사의 일상적인 흐름, 관습과 제약에 따른 기계적이고도 끝없는 이어짐에서 가끔 벗어난다 해도 괜찮아. 조금 떨어져나가도 괜찮단다. 그게 자기 삶을 춤추기 위해서라면.(p.332)

🔖'물질적이고 추상적인 사물들 속에서도 혼을 체험'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칸딘스키의 말은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모든 것이 성스러울 수 있다는 뜻이야.
러시아 변방의 오지 시골에서 만들어진 보잘것없는 물건에서도, 한 줄기 빛에서도, 그저 한 마리 새의 노래에서도. 그러므로 각자가 품고 있는 내면의 불꽃을 일깨우기 위해 무슨사원 같은 곳에 갈 필요가 더이상 없는 거야. 불티는 도처에 있어.(p.422)

🔖끊임없이, 다시, 언제나, 자기 자신을 구성해야 한다는 거야.(p.478)

🔖성장은 상실이다. 살아간다는 것, 그건 삶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살아간다는 건 매초, 매분 삶에게 작별을 고할 줄 알게 되는 일이다.(p.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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