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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란 ㅣ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평점 :
인간은 신의 자리를 탐하며, 시간을 지배하고 영원한 삶을 누리는 데 성공한다. 이름하야 <신금속 인간>은 최소한의 살점 조각을 제외하고 몸의 대부분을 금속으로 교체한 신인류이다. 이들 중 금속 교체율이 매우 높은 소수의 엘리트들은 성채의 주인이 되어 날마다 전쟁을 벌인다. 오로지 파괴와 전쟁을 일삼는 것이 목표이며, 휴전 중에는 쾌락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다음에 벌어질 전쟁 계획을 세운다.
이들이 살고 있는 모데란의 하늘은 증기 방어막으로 둘러쌓여 달마다 색이 바뀌고, 오염된 토양은 잿빛의 플라스틱으로 뒤덮여 있다. 새들마저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며, 향기 인간이 온갖 인공적인 향들을 만들어내고, 때가 되면 플라스틱 땅의 구멍에선 온갖 나무와 꽃들이 튀어나온다. 모데란의 사계절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나이의 목표와 사나이의 관점을 가진 사나이의 나라"
모데란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문구가 있을까? 몇십년 전에 쓰인 고전 소설이란 점을 감안할때도 정말 남성적인 소설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신금속 애인" 또한 마찬가지이다.(여기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는 그냥 넘어가고..)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과장되어 있고, 과격하고, 이상하다. 성채의 주인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전쟁을 벌이며, 전쟁을 잘 수행하고 증오를 효과적으로 드러냈을 때 상을 받는다.
작가는 이런 과장과 선전을 장황한 문체로 서술함으로써 모데란의 기이함을 드러내고, 인간의 무모함을 비판한다. 성채의 주인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전쟁을 벌이는 모습들은 현재 시대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쓸모 없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신금속 인류가 신이 자신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상상하며 자화자찬 하는 장면에선, 끊임없이 지구를 개발하고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자 하는 인간들에 대한 조소도 느껴진다. 살점 조각, 다른 말로 말하면 인간성이 없을 수록 칭송을 받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점점 인간성이 말살되는 작금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이 1960년대에 쓰여진 걸 생각한다면, 아마도 냉전시대에 대한 환멸이나 물질만능주의 등이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싶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고 폭력이 만연한 것을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도 모데란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플라스틱과 무쇠와 콘크리트가 땅을 뒤엎고, 인류는 전쟁과 쾌락에 몰두하고, 증오를 최고의 감정으로 치는 이 모데란의 세계가 말이다.
이성과 증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데란에서 이 책의 주요한 서술자는 가끔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곤 한다. 신금속 인간과 병기인간을 가르는 주요한 지점은, 학살을 자행하는 순간에도 감정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증오의 감정만을 가질 수 있겠는가. 10번 성채는 신금속 애인이 떠나간 뒤 상실감에 전쟁을 내팽겨치기도 하고, 한 때 함께했지만 다른 길을 간 동료를 만나자 회한에 빠지기도 한다. 갑자기 해바라기를 심겠다며 1에이커의 흙을 구해오란 명령은 여전히 그에게 인간성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런 부분들은 모데란의 비인간성과 대조되어 더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면 읽기 쉬운 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하얀 마녀의 계곡이나 천진난만하게 교체를 기다리는 어린 딸과 아들, 올데란(olderan) 등 작가가 창조해 낸 세계관이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초반의 진입장벽만 넘긴다면 그래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확실히 요즘 나오는 SF 소설과는 너무 다르고, 이 과장되고 시적인 문체에 어쩐지 스며든 것 같다.
*출판사 현대문학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모데란은 사나이의 목표와 사나이의 관점을 가진 사나이의 나라였다. 전원을 켜고 끌 수 없는 살점 조각을 매단 여성형 강철의 존재와 영원한 삶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하게 확인되자, 우리는 그들을 모두 몰아냈다. 그토록 단순한 일이었다. 우리는 낡은 신금속 잔소리쟁이 계집 재배치 위원회를 발족했다. 우리는 그 여자들을 준비해놓은 땅으로, 벽으로 둘러싸인 하얀 마녀의 계곡으로 이주시켰다.(p.138)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고, 거친 눈으로 망치를 휘둘러 우리의 기반이될 지구를 굴종시키면서도, 그런 방식은 원하지 않았다. 신께 맹세코, 우리는 인간으로서 온갓 노력과 교활함을 발휘하여 신을 속박할 것이다. 신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이렇게 울부짓는 모습을 볼 것이다. '내 자식들이 나를 초월했구나!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자식들이 신의 모든 능력을 자신의 손으로 옮겨버렸구나. 그 존재의 영원함과 시간을 뛰어넘는 힘까지도! 내 과업은 이로써
끝났도다.'(p.173)
🔖"진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양인으로서, 전쟁이 가늠자이며 파괴가 업적이고 그에 따라 포상이 내려지는 시대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임무에 소홀한 이유를 해명할 생각이 있소? 아니면.... 참회라든가?"(p.222)
🔖인간이란 많은 면에서 끔찍하고 비열하며 부도덕한 존재다. 그러나 인정하자, 인간도 분명 한 가지 미덕은 품고 있으니. 인간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끔찍하고, 부패하고, 비열하고, 진정으로 사악한 자신을 최후의 순간까지 유지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 온
전한 악성이 보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뢰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은 신의 성질을 가진다.(p.241)
🔖아, 그래, 언제든 차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건 당연한 듯 하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수지맞는 일이 아닐 테니까.(p.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