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지음, 위효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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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유년기에 대한 작별인사와 같은 책. 인생은 상실과 쓰라림의 연속이고,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미술에 대한 해석과 교양지식도 풍부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문학임을 느낄 수 있는건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책에 수록된 그림과 해석은 두고두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소장의사 만프로🤭!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열 살의 어린 아이 모나와 할아버지 '하비'가 매주 수요일마다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미술관을 방문하여 단 한 점의 그림만을 감상하는 이야기이다. 모나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깜깜해지는 일을 겪고,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워한다. 하비는 모나가 시력을 잃기 전에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나의 엄마 카미유 에게는 아동정신의학자를 만나러 간다고 거짓말하고, 매주 파리의 아름다운 미술관들을 방문한다.

고전주의, 인상파, 초현실 주의를 비롯해서 회화, 조각, 설치미술이 이르기까지. 하비가 모나에게 보여주는 미술은 정말 다양하다. 책 뒷장에는 실제 작품 사진이 있어서 우리는 모나와 함께 그림을 감상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흔히들 알고 있고 유명한 그림 외에도, 작가의 덜 유명한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네는 수련 연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엔 <생라자르역>이 수록되어 있고, 클림트는 키스가 아닌 <나무 아래 피어난 장미나무>, 몬드리안은 선과 기하학 무늬가 없는 회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미술에 조예가 많이 없어서 덜 유명하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은 물론, 다소 덜 알려진 작품들도 있어서 좋았다!

여기까지 보면 그냥 미술책이 아닌가 싶지만, 하비와 모나는 우리에게 삶과 예술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가르쳐준다. 모나는 맨 처음 만난 보티첼리로부터 받는 법을 배우고, 드가의 작품으로부턴 자기 삶을 춤출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일상과 예술이 뒤섞인 뒤샹의 아름다운 혼돈에서 충격을 받고, 모호하고 어려운 현대미술에서도 작품의 의미를 읽어낸다. 52주 동안 모나는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은 물론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착실하게 배우거 성장해 나간다. 미술은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지만, 그 안에 담긴 모티프와 의미를 발견하고 삶에 대한 지혜로 연결시킬 때 더 빛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책 후반부에는 모나의 시력에 대한 비밀과 사랑하는 할머니 콜레트에 대해 모두가 감추는 사실이 밝혀진다. 에필로그까지 다 읽고 나면 하비와 모나의 52주간의 여정이 마무리가 된 것에 아쉬움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미술작품과 묵직한 메시지들, 그리고 어린 모나의 잔잔한 일상과 함께하여 읽는 내내 즐거웠다.

🏷파리를 방문한 것이 거의 10년이 다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이 책을 읽고 미술관을 방문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도 풍경화 설명은 지루하고 와닿지 않는 걸 보면 역시 나의 취향은 인상파와 현대미술..! 파리를 갔을 때도 오르셰 미술관이 정말 좋았었는데 이 책에 수록된 드가, 마네, 모네, 고흐의 그림이 너무 맘에 든다. 퐁피두 미술관은 처음 봤을 때 저게 미술관이야 싶었는데, 미술관의 모습만큼이나 안에 작품들도 흥미롭다. 그 시절에 정말 대충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니키 드 생팔의 <신부>는 꼭 다시 보고 싶다. 소장가치로는 정말 정말 충분한 책!

🔖흘러가는 시간을,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투쟁을, 이미 패배가 정해진 투쟁을 감히 해부하는 거란다.(p.108)

🔖삶은 불완전하기 마련이야. 하지만 거기에 살아가는 묘미가 있지.(p.255)
🔖알겠니, 이 작품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삶이 그저 살기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는 거야. 삶을 춤출 필요도 있어. 우리의 동작, 우리의 움직임, 우리의 행동이 세상만사의 일상적인 흐름, 관습과 제약에 따른 기계적이고도 끝없는 이어짐에서 가끔 벗어난다 해도 괜찮아. 조금 떨어져나가도 괜찮단다. 그게 자기 삶을 춤추기 위해서라면.(p.332)

🔖'물질적이고 추상적인 사물들 속에서도 혼을 체험'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칸딘스키의 말은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모든 것이 성스러울 수 있다는 뜻이야.
러시아 변방의 오지 시골에서 만들어진 보잘것없는 물건에서도, 한 줄기 빛에서도, 그저 한 마리 새의 노래에서도. 그러므로 각자가 품고 있는 내면의 불꽃을 일깨우기 위해 무슨사원 같은 곳에 갈 필요가 더이상 없는 거야. 불티는 도처에 있어.(p.422)

🔖끊임없이, 다시, 언제나, 자기 자신을 구성해야 한다는 거야.(p.478)

🔖성장은 상실이다. 살아간다는 것, 그건 삶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살아간다는 건 매초, 매분 삶에게 작별을 고할 줄 알게 되는 일이다.(p.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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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의 사랑 거장의 클래식 6
딩옌 지음, 오지영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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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의 사랑>, 딩옌 #도서제공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이거나 티베트의 불교 신자들이다. 작가 딩옌이 이슬람교를 믿는 중국의 소수 민족 둥샹족 출신으로, 티베트와 인접한 지역 출신이기 때문이다.

처음 수록된 단편인 <속세의 괴로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단편이 이렇다 할 사건이나 눈에 띄는 사고 없이 단조롭게 흘러간다. 주요 인물들은 모두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제 자리를 붙이지 못하고 먼발찍이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대부분 무심함에 지쳐 있고 쓸쓸해한다.

문장이 너무 서늘해서 그렇지 실상 엇갈리는 인물들이나, 서로를 향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갈무리해야 했던 얘기를 보면, 이 안에 비극도 있고 한도 있다. 단지 작가의 말에서 말한 것처럼, 딩옌 본인이 최대한 꾸밈 없고 기교 없는 문장을 목표하고 있기에 소설 전반에 무심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흐를 뿐이다.

기교나 꾸밈이 없이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좋아할 듯 하다. 감정을 다듬고 다듬어서 정말 서늘하고 차가운 문장으로 표현하는 점은 인상깊었지만.. 나에겐 몇몇 단편을 제외하곤 조금 심심하긴 했다. 개인적으론 <세 중국인의 삶>처럼, 절제된 문장으로 삶의 비극을 아주아주 밀도있게 표현하는 소설을 더 좋아한다. 이 책은 초반에 나온 두 편을 제외하곤, 호수에 잔물결이 이는 정도로만 감정을 표현하는 편이다. 특히 <늦둥이>는, 아이를 낳지 못한 여성이 남편에게 새로운 아내를 만들어주어 아이를 가지게 한 이야기인데,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던 것인지 잘 이해가 안되었다🤔 그럼에도 앞에 두 편이 마음에 들었기에 호로록 서평을 남겨본다.

📖<속세의 괴로움>
어릴적부터 절에서 자란 샤오줘는, 정식 비구니가 되기 위해서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아버지의 여동생인 쑤스화를 만나 아버지를 찾아보지만, 고모 역시 아버지를 못 본지 오래이다. 그때부터 샤오줘와 쑤스화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옛날 집이며 옛날에 알았던 사람들을 모두 찾아간다. 고요한 티베트 절의 풍경과 번잡한 속세의 모습이 어우러져 샤오줘의 고요한 마음속 호수에 물보라를 일으킨다. 날때부터 절에서 자라 그 어떤 고뇌도, 풍랑도 없었던 샤오줘는 아버지의 실종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어 그 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을 배운다. 이리저리 꼬인 매듭이 탁 하고 풀리는 순간, 인물들의 기구한 인연에 놀라고 허탈하여 나도 모르게 씁쓸해졌다.

🔖얽히고 설킨 인연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면 속세의 인연을 벗어날 수 있다. 마음에 아무 근심이 없으면 어디서든 초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고 자유와 여유를 얻을 수 있다. (p.98)

📖<설산의 사랑>
마씨 집안에서 운영하는 골동품 가게에 불이 나 점원 자시가 죽게 된다. 마씨 집안의 막내아들 마전은 집안에서 보상금을 마련하는 동안 죽은 남자의 할머니와 여동생 융춰가 있는 집에 '인질'로 들어간다. 마전도 융춰도 단 한번도 속마음을 드러낸 적이 없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조금씩 삐져나온다. 눈 내리는 설산과 라브랑 사원의 풍경이 침묵으로 둘러싸인 마전과 융취의 모습과 어우러져 애틋함,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픔을 자아낸다. 융춰의 결혼식 날 마전이 선물을 전하고, 융춰를 뒤에 남겨 두고 오는 순간에도 전하지 못할 말들은 넘실거리다가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온 대지가 흰 눈으로 뒤덮여 모든 풍경이 흐릿하게 뭉그러지듯이.

🔖마치 모욕과 공포를 뒤섞고 고요함으로 끈적임을 더한 시커먼 소스 같은 것이 머리 위에서 흘러내려 그의 눈을 가리고 코를 뒤덮고 입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p.159)

🔖눈물 속에서 자신을 보았고 자신과 그녀의 관계를 보았다. 그것은 환상 속에 투영된 상상이었다. 실현할 길이 없었다. 그에게는 길이 없었고, 그녀에게더 길이 없었다.(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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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 이후의 중국
프랑크 디쾨터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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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 이후의 중국>, 프랑크 디쾨터 #도서제공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이후 시진핑 주석 집권 전 까지 중국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다. 간만에 뇌를 팡팡 돌리며 읽었다😵‍💫! 중국의 초고속 성장 뒤에 가려진 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책으로, 정치와 경제, 사회 다방면에서 어떻게 현재의 중국이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있다.
(독서하면서 유식해지는 기분.. 짜릿해...😎!)

🍀마오 이후의 독재자들
마오쩌둥 이후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사회주의는 더욱 강화되고 공고해졌다. 중국의 현대사 흐름은 파벌 싸움과 끝없는 권력다툼의 연장선이다.

🍀계획경제의 모순과 이름뿐인 <개혁과 개방>
중국 정부는 문화대혁명으로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앞다투어 해외 기술을 수입하고, 과도하게 공장을 건설하고, 너무나도 많은 투자 조합과 은행이 생겨난다. 말이 계획경제지, 실상 현장에 "계획"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국영 기업은 정부의 보조금만 빨아 먹는 존재일 뿐 회계 장부며 이익이며 모두 조작된 것에 가깝다. 이는 앞으로 중국이 착실하게 쌓아갈 구조적 모순이며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짓밟힌 민주주의의 불씨
후야오방의 사망을 시발점으로, 수십 만 명의 학생들과 농민, 시민들이 텐안먼 광장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며 뛰어나온다. 이 역사적인 흐름이 우리나라의 4.19혁명과 5.18 민주화 운동, 그리고 서울의 봄과 매우 유사하여 놀라웠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끝에 결국 민주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지만,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이름뿐인 민주주의 하에서 군부독재를 타도하는 것보다 아예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일까. 군인들은 총과 탱크로 무장한 채 죄없는 시민들을 죽이고 학살한다. 정부는 사망자를 200명으로 밝혔지만, 실질적으론 2700명에서 3400명 정도로 사망자를 추산하고 있다.

🍀사회주의 손에 들린 자본주의 도구
과연 정치적 자유가 없는 경제적 자유는 가능한 것인가?많은 국가들이 중국이 시장경제를 개방하면, 민주주의 또한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순진한 환상을 가졌다. 기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벌어들일 이익을 보고 모른척 한 것은 아닐까?

🍀세계화의 탈을 쓴 경제개혁
중국은 <큰 것이 아름답다> 라는 기치 아래, 수 많은 기업들의 인수 합병을 단행한다. 부실한 기업들을 정리하고 몇 개의 기업에 보조금 등을 몰아주어 한국의 재벌처럼 키우려는 계획이었다.
이와 더불어 장쩌민이 도입한 <세계화> 전략으로 인해 중국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중국의 형편없는 인권과 기술 복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중국이란 시장에 침을 흘리며 중국에 만연한 문제를 모른 척 한다.(미국 또한 마찬가지. 솔직히 미국이 홍콩이나 대만에 대해 침묵하고 모호한 외교 정책을 핀 덕에 중국은 거리낌없이 시장경제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종하고 내부를 규제함으로써, 대부분의 국가에 무역 적자를 안겨주었다.
이런 경이로운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중국이 벌어들인 돈은 국가의 배만 불려주었을 뿐이다.

🍀중국식 사회주의와 거침없는 폭주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후, 중국은 자본주의가 결국엔 망하고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이라 확신한다. <중국식 사회주의>만이 해답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이에 따라 인터넷을 더욱 더 철저하게 검열하고, 모든 유형의 활동가들을 탄압하기 시작하며 남중국해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영토 분쟁을 벌인다. 더 이상 미국은 이를 좌시할 수 없게 되었고, 서방세력은 항상 중국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중국의 오랜 믿음이 현실화된다.

🏷 저자의 말마따나 중국이란 나라는 제대로 통계를 내기도 어렵고, 그 실상을 파악하기가 정말 어려운 나라이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몇십년의 징역에 처해지고, 조그만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자택 감금을 당하는 것을 보면.. 옆에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멀게 느껴진다. 특히 텐안먼 사건이 1989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놀랐다. 2010년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도 그렇고, 내가 정말 이 나라 역사와 정치에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쉽지 않은 책이지만 세계 패권을 주름잡고 있는 옆나라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독서로 지식을 채우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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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빛이 우리를 비추면
사라 피어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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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빛이 우리를 비추면>, 사라 피어스 #도서제공

🏷눈사태로 고립된 호텔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 주인공 엘린은 남자친구 윌과 함께 동생 아이작의 약혼파티에 참석하고자 <르 소메> 호텔에 방문했다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그 와중에 호텔 수영장에서 직원 아델의 시신이 떠올라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아델이 방독마스크를 쓰고 손가락 몇 개가 잘린 참혹한 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동생 아이작의 약혼녀이자 엘린의 친구인 로라 또한 실종된다. 엘린은 강력계 형사를 휴직한 상태이지만 호텔 주인 루카스 카롱의 요청으로 초동 수사를 진행하기로 한다.

사람들이 고립된 호텔에서 죽어가는 걸 보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사알짝 생각나긴 했다. 살인자와 같이 고립되어 나도 언젠가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클리셰는 추리소설에서 항상 매력적인 소재다. 또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르 소메> 호텔은 무척 현대적이고 아름답다. 호텔 전면 유리창으로 비치는 눈은 오싹하고 환상적으로 느껴진다. 또 과거 요양원이었던 시절의 물건들을 유리상자로 진열해둔 모습이 뒷표지에 있는데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을 준다.

이 아름답지만 오싹한 호텔 풍경에 주인공 엘린의 불안한 내면 묘사가 어우러져 소설 전반에 긴장감을 만든다. 엘린은 막내동생 샘의 죽음에 아이작이 연루되었을 거라 생각하고, 아이작과 로라 등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의심한다. 공황장애로 인해 강력계 형사를 휴직한 상태이니만큼, 엘린은 매사에 예민하고 날카롭다. <르 소메> 호텔에 도착했을 때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엘린의 두려움은 독자들로 하여금 덩달아 긴장하게 만든다.

도파민이 싸악 도는 소설이라기 보다 어딘가 어긋나 끼익 소리를 내는 불협화음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스릴러 소설에 가깝다. 게다가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혼자 수사를 벌여야 하는 엘린은 자꾸만 헛발질을 하기 일쑤다. 나의 추측은 계속해서 틀리고, 주인공 엘린도 자꾸 어긋나고, 반전 아닌 반전이 계속된다. 이는 호텔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인물들 사이의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과거 요양원에서 발생했던 일들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요양원과 관련된 사건이라 추측했기 때문에 옳다구나 했는데 마지막에 또 다른 반전이 있었다...🫠

잘 짜인 트릭과 감정묘사 외에도 여성을 향한 폭력과 억압 등 무거운 주제 또한 담겨 있는 소설이다. 여기에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와 전개방식도 소설을 흥미롭게 만드는데 한몫 보태고 있다. 매일매일 불바다가 펼쳐지고 있는데, 하얗게 눈이 쌓이는 소설 속 풍경과 밀실 안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본다면 조금 더위가 가실지도🤭?


🔖샘이 죽은 이후 뭔가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매번 결승선을 향해 달리지만 결승선은 항상 발이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린다.(p.316)

🔖긴장을 풀고, 경계를 완전히 늦출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는 편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이 가장 달콤하니까.
행복과 공포 사이의 그 자그마한 틈새가.(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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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자서전
마리-헐린 버티노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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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자서전>, 마리-헐린 버티노 #도서제공

🏷유머러스하지만 슬프고, 외롭지만 다정한 소설이다. 외계인 아디나가 인간으로 태어나 별처럼 스러질 때까지를 다룬 이야기로,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 삶의 의미, 부모와 친구, 그리고 사랑까지. 이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타워즈>가 탄생한 해, '귀뚜라미 쌀' 행성 출신의 외계인 아디나 조르노가 지구에서 태어난다. 아디나의 임무는 인간의 모습을 고향별의 상관들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그녀는 엄마가 주운 팩스기계로 보고서를 보낸다.

어린 아디나가 보내는 보고서는 처음엔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비추어낸다. 가령 기회는 파이와 같아서, 인간은 한정된 조각만 가질 수 있다는 것. 불평불만이 많은 인간은 원하는 걸 전부 얻지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외면하고 불편해하는 진실들이 아디나의 보고서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편 소설을 읽다보면 아디나의 외로움이 점점 나에게도 스며드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이 어느 곳에서도 속하지 못한 외로운 존재라고 느낀다. 아디나가 느끼는 외로움은 단순히 친구나 연인이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내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데서 오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다. 나는 이 순간만큼은 아디나가 정말 인간 같다고 느꼈다. 아디나는 점점 보고서에서 인간을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 칭하기 시작한다.

외계인으로서 인간들을 관찰했던 아디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평범한 인간을 닮아간다. 후반부에 그려지는 가슴 아픈 이별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다. 아디나 또한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이 슬프다. 처음엔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봤지만, 아디나는 점차 그 영화 속 배우가 되어간다. 나는 아디나의 눈물에 같이 슬퍼하고, 그녀의 아픔에 공감했다. 누군가의 평처럼 외로움을 이렇게 따스하게 그려낼 수 있는 소설은 없을 것이다.

아디나의 유머가 느껴지는 묘사도 좋았고, 외로움을 드러낸 문장들은 내 마음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발췌하고 싶은 문장들도 너무 너무 많았지만 몇 개만 적어본다.(그러나 이것도 너무 많은....) 기발한 형식과 다정한 소설을 보고 싶다면 아디나와 함께하세요!

🔖저에게는 발음 교정 수업과 시력 교정 렌즈가 필요해요. 그리고 아마 치아 교정기도 필요할 거예요. 나는 비싼 외계인이에요.
답변: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평범한 게 뭔가요?
그건 네가 알려줘야지.(p.56)

🔖처음으로 그녀는 지구상의 누구도 심지어는 그 너머의 존재들조차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p.160)

🔖아디나는 이렇게 누군가의 현관이 열리는 듯한 순간들이 주는 비밀스러움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런 순간들-어른들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며 스스로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유일한 순간들-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이 순간들은 마치 그들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아 묘한 위안이 되었다. 괜찮아, 아디나. 우리는 살아 있고, 너와 함께 여기에서 이 세상을 걷고 있어.(p.214)

🔖은총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다정함이예요. 정당한 이유 없이 주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비참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비참한 존재는 인간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죠. 또한 인간은 결함 있는 존재리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해요.(p.332)

🔖누군가가 죽을 때, 그 사람이 에그롤을 먹는 방식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p.378)

🔖인간의 삶은 빠르게 흘러요. 하지만 인생은 짧지 않아요. 우리가 어떤 중요한 날들을 마치 어제 일처럼 느끼는 이유는 실제로 그렇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아직 젊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터무니없이 빠르게 늙어가요. 우리는 모두 어른 역할을 맡기 위해 고용된 일곱 살짜리 배우들이에요.(p.393)

🔖인간이라는 단어 자체가 결함을 의미하죠. 만약 내 임무가 인간이 되는 것, 그러니까 실패하는 것였다면, 난 성공한 것 같아요.(p.437)

🔖언어는 경험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요. 내가 가장 깊이 사랑했던 것들과 가장 깊이 슬퍼했던 것들은 말로은 표현되지 않았고 결코 팩스로 보낼 수도 없었어요.(p.437)

#외계인자서전#마리헐린버티노#SF소설#장편소설#눈물보장#감동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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