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다산책방)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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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비포유>, 조조 모예스 #도서제공

🏷예정된 슬픔과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또 서로의 삶을 바꾸는 기적같은 일을 보면서 나 또한 슬프고 행복했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는 루이자의 실직 때문이다. 루이자는 6년간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자 전신마비 환자 윌의 보조 간병인이 된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겼던 윌은 불운한 사고로 인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이다. 입만 열면 독설에다 노골적으로 루이자를 싫어하는 윌의 태도에 루이자는 매일매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그러나 윌은 점점 요란한 색과 희안한 패션으로 무장한, 조금은 이상한 여자 루이자에게 빠지게 되고, 루이자 역시 유머스럽고 다정한 윌을 사랑하게 된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특히 로맨스 소설의 경우), 그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서로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관계성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변하게 될 때. 그래서 루이자가 윌을 만나 처음으로 자막 있는 영화를 보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클래식 콘서트에 가서 음악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학교에 등록하고 해외를 나가는 그런 과정들이 정말 너무 좋았다. 스토트폴드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갇혀서, 가족을 위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루이자는 윌을 만나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윌 역시 죽음만을 기다리던 나날에서 벗어나 산책도 하고, 해외로 여행을 가는 등 루이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하게 로맨스 소설로 치부될 수 없다. 읽기 쉬운 문체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존엄사와 생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무거운 주제도 담겨 있다. 윌은 사고 당하기 이전의 삶과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존엄사를 반대하는 부모님에게 6개월의 유예기간을 주었고, 루이자는 이 기간 동안 윌의 마음이 바뀌길 바라며 윌의 부모님에게 고용된 것이다. 아이러니한건 이 존엄사에 대한 결정이 사고 이후로 윌이 처음 내린 주체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정말 작은 일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윌의 처지가 마음이 아프다. 내가 가볍게 논할 문제도 아니고, 윌의 선택에 옳다 그르다란 얘기도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까란 고민이 문득 들었다. 루이자가 자신이 윌에게 있어 삶의 이유가 될 수 없는지 묻고 거절당하는 장면은 너무 마음이 아프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를사랑하지만 그게 삶을 이어갈 이유로 충분하지 않다는 걸 듣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윌의 상황도 정말 슬프다.

새드엔딩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새드엔딩이나 해피엔딩 그 어느 것으로도 명확하게 규정이 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들이 이 결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루이자가 윌의 상실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소설을 전개한다. 루이자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윌의 편지를 읽으며 울고 웃는 마지막 장면은, 앞으로 루이자가 펼칠 새로운 삶을 응원하게 만든다. 미비포유로 끝나지 않고, 애프터유와 스틸미까지 꼭 다 읽어봐야겠다. 마지막 책 <스틸미>는 루이자가 자신의 모습을 찾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윌이 남긴 씨앗이 어떤 모습으로 루이자를 꽃피우게 할지 궁금하다.

🔖어떻게 알아요? 아무것도 안 해보고. 아무 데도 안 가봤는데.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길이 없었는데?(p.246)

🔖인생은 한번밖에 못 살아요. 단 한 번의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사는 게 인간의 의무예요. (p.301)

🔖당신 덕분에...덕분에 내가 꿈꿔보지도 못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당신이 아무리 고약하게 굴어도. 당신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요. 당신은 자신이 초라하게 쭈그러들었다고 느낄지 몰라도, 난 세상 그 누구
보다 그런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p.499)

🔖나는 깨달았다. 그 없이 사는 삶이 너무나 무서웠다. '어쩌다가 당신은 내 인생을 망쳐버릴 권리를 갖게 됐어요?'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왜 나는 당신 일에 발언권이 전혀 없는 거냐구요?'(p.556)

🔖새로운 세상에서 조금은 편치 않은 느낌이 들지도 몰라요. 사람이 안전지대에서 갑자기 튕겨져 나오면 늘 기분이 이상해지거든요.

🔖 당신 안에는 굶주림이 있어요, 클라크. 두려움을 모르는 갈망이 있어요. 대다수 사람이 그렇듯, 당신도 그저 묻어두고 살았을 뿐이지요. 스스로를 밀어붙여요. 안주하지 말아요. 줄무늬 타이츠를 당당하게 입고 다녀요.

🔖 여전히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호사스러운지 모릅니다. 그 가능성을 당신에게 선사한 이가 바로 나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맺힌 뭔가가 조금 누그러졌어요.(p.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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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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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흑사병이 창궐한 파리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혁명의 모습을 그려낸, 아주 "새빨간" 책이다. 왜 20세기의 문제작이었는지 너무나 잘 알겠고, 정보라 작가님이 왜 이 책을 소개 하고 싶었는지도 이해한다. 단순히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 분쟁을 그리는 것을 떠나, 유토피아란 무엇이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작가 브루노 야시엔스키가 보여주는 유토피아는 책의 말미에나 아주 짧게 등장할 뿐인데, 자본주의를 엄격하게 비판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강하게 나타낸 것에 비해서는 사뭇 다른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세상의 절반이 싫어하더라도 걸작이다>란 한줄평이 정말 이해가 된다.

이 모든 일은 피에르라는 한 청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동차 공장에서 해고당하고, 석달째 집세를 내지 못해 살던 곳에서도 쫓겨난다. 그렇게 노숙자처럼 길거리를 헤매던 중에 어린시절 알던 친구 르네를 만나 운 좋게 수압관리탑에 일자리를 얻는다. 하지만 피에르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분노하고 증오에 가득차 르네가 일하는 연구소의 세균을 훔쳐 수압관리탑에 살포한다. 그렇게 파리에 흑사병이 창궐하고 파리의 몰락이 시작된다.

프랑스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 파리를 봉쇄하게 되고 그 결과 파리안에서 여러 개의 공화국과 정치구역이 생겨난다.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은 황인종 공화국이며, 이후 프롤레타리아들을 위시한 소비에트 공화국, 왕정주의를 부르짖는 카믈로 뒤 루아, 유대인 자치구역, 영미연합령이 뒤이어 만들어진다.

피에르 외에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은 황인종 공화국을 세운 중국인 판창퀘이와 영미연합령에 속하는 미스터 데이비드 링슬레이, 소비에트 공화국의 솔로민 장군이다. 특히 중국의 빈민이었던 판창퀘이가 서양 그리스도교의 지원을 받아 학교에 가고 공산주의 사상에 물드는 얘기가 인상깊었다. 여기에는 서양 열강과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던 중국 역사가 그려져 있다. 판창퀘이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프롤레타리아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노력한 사람으로, 야시엔스키가 그려낸 인물 중 가장 영웅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사람 같다.

이 외에 자본주의를 맹렬히 비판하고, 공산주의의 가치를 우위에 두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 바로 미스터 링슬레이의 케이스이다.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파리를 빠져나갈 수 있게 해주는 대신, 미국에 이 유대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자본주의의 화신과도 같았던 미수터 링슬레이는 처음엔 이 제안을 거절했다가, 결국엔 갑판에 오르고 이 배를 포격할 것을 전보로 주문한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다 죽었던 조카 아치의 신념이 있었다. 미스터 링슬레이는 죽음 앞에서 자기도 모르는 새 조카 아치의 이상주의를 가이드처럼 받아들인다.

나는 이제까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야시엔스키는 이 두가지 이념을 경제보다는 삶의 의미를 해석하는 도구로 쓰는 듯 하다. 미스터 링슬레이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고독의 무게를 느낀다. 자본주의가 그에게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제서야 자신의 삶의 의미를 돌아보지만 역시 남는 것이 없다. 하지만 조카 아치나 솔로민 장군의 동싱 세르게이 솔로민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수백명과 함께 연대하고 의지하는 데에서 삶의 목표를 찾는다. 그 둘은 죽었어도 하나의 불꽃으로 남아 미스터 링슬레이의 가슴에, 그리고 다른 동지들의 가슴에 남는다.

여기까지 보면 자본주의는 악에 가까운 이념이고, 모든 답은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인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야시엔스키는 책의 말미에서 원시사회에 가까운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고, 손을 흔들며 미소를 띄는 그런 곳. 소련으로 귀화하여 활동했던 작가의 양력을 생각한다면 조금 의외의 결말이기도 하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새로운 이념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간만에 머리를 너무 써서 읽었던 책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딱딱한 책 같지만 실상은 한 문장에 많은 비유와 은유가 들어가 있어서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었다. 거의 한 문단이 한 문장인 경우도 있어서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정보라 작가님 덕분에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정보라 작가님이 쓴 서평을 볼 수 있는데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를 쓰게 된 계기나 작가의 양력, 이념 등 이 책을 더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질서에 대한 공동의 의지로 연대하는 몇백명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모인 세상 모든 제곱킬로미터 넓이의 땅에서 조카는 또다시 살아 있는, 생명을 주는 불꽃이 되어 타올랐다.(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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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끝
정해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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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끝>,정해연 #도서제공

🔖"엄마라면 그럴 수 없다. 자식을 살인자의 아들로 만들 수는 없어. 그런데도 자기가 죽였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 이야."
"자식을 지켜야 할 때. 자식이 살인자일 때."

🏷작가님의 말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처한 상황과 성격 모두 다르지만, 아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점이 동일하다. <홍학의 자리>처럼 반전이 있긴 한데 그만큼 충격적이진 않다. 반전보다는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각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집중해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스릴러의 대가인 정해연 작가님이 쓴 소설답게 치밀한 심리묘사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줄거리를 스포에 걸리지 않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캠핑을 간 단란한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이 된다. 인우는 낮에 못잡은 다슬기를 잡으러 밤에 나갔다가 물에 빠지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그런데 깨어보니 아버지가 간밤에 자살했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 펼쳐진다.

시간이 흘러 형사가 된 인우는 야밤에 화재가 난 아파트로 출동하여 지하실에 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시체가 발견된 동은 샤인코스메틱이란 회사가 전체로 임대하여 사용하는 곳이다. 모든 사람을 탐문수사 해봐야 하지만 인우는 302호, 샤인코스메틱 재선 지점장이 못내 이상하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이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샤인코스메틱의 대표 박희숙은 최대 규모의 수출 계약을 앞두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아들 진화의 전화를 받는다. 방문판매원부터 시작해 키워낸 회사는 몇년 안이면 대기업의 반열에 들 수 있다. 눈앞이 아찔해져 오지만 회사보다 중요한건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 수 없다는 '그' 모성이다.

인우는 아버지의 미심쩍은 자살로 인해 어머니를 살인자로 의심하고, 박희숙은 아들의 살인을 수습하고자 한다. 두 모자의 모습이 대비됨과 동시에 박희숙이 형사 인우에게서 아들의 살인을 감출 수 있을지 마음 졸이며 봤다.왜 그런진 나도 모르겠다. 아들놈이 정신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반, 어머니인 진화가 불쌍하다는 생각 반으로 그랬나보다..

사실 어머니 박희숙은 아들 진화를 키울 때부터 조금씩 엉키는 매듭을 모른 척 했을지도 모른다. 소설의 제목인 매듭의 끝이 정말 절묘하게 지은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박희숙은 마침내 이 엉킨 매듭을 풀기엔 정말 먼 길을 왔단 걸 깨닫는다. 이제는 매듭을 잘라내지 않으면 절대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우의 어머니도 어떻게 보면 마찬가지이다. 인우와 어머니의 매듭은 한번 꼬인 뒤로는, 어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매듭을 풀기가 쉽지 않았다. 두 모자의 매듭이 어떻게 풀릴지는 책을 끝까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다 읽고 느낀건 무자식이 상팔자다😇!!

🔖"지금까지처럼 가만히 있어. 갑자기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나대지 마. 내 뒤에 어린애처럼 숨어있어. 넌 그러면 된거야." (p.187)

⭐️출판사 현대문학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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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편지
설라리 젠틸 지음, 최주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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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편지>,설라리 젠틸 #도서제공

  피묻은 편지로 꾸며진 표지를 열어 보면, 인기 작가 해나 타이곤에게 리오라는 남자가 보내는 팬 레터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내 배경은 보스턴공공도서관으로 옮겨지는데, '나'는 테이블에 둘러 앉은 인물들을 살펴보며 이들로 소설을 쓸 구상을 한다.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한 '프로이트 걸' 마리골드, 하버드 로스쿨생인 '만화 주인공 턱' 윗,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잘생긴 남' 케인이다. 그런데 갑자기 도서관에 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며 테이블에 대화의 물꼬가 터지고, 이들은 눈깜짝할 새 친구가 된다.

  눈치를 챘겠지만 이 편의 화자인 '나'는 해나 타이곤이 아니라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 '프레디'이다. 이 책은 고전적인 액자식 구성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데, 큰 틀은 책 속의 책인 프레디 이야기와 이를 읽고 해나에게 조언을 보내는 리오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프레디도 이 안에서 케인, 윗, 마리골드로 구성된 소설을 쓰고 있는데, 책 속의 책 속의 책 쯤 된다고나 할까? 심지어 여기엔 리오가 등장한다. 작가 해나가 쓰는 소설, 그 소설 속 프레디가 쓰는 소설, 그리고 리오의 편지가 얽히고 설킨 이 구성이 참 재미있다!

  어쨌거나 미스터리 작가인 해나 답게 프레디와 케인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이 하나씩 죽어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리오가 보내는 편지 속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처음엔 해나의 호주식 영어단어를 미국인이 자주 쓰는 영어단어로 교정해주고, 소설의 배경인 보스턴에 대해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전해주던 리오는 점차 살인의 방식, 소설 속 플롯까지 지나치게 관여한다. 소설 속 살인자가 처음엔 필요에 의해 살인을 저질렀지만, 점점 그 행위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건 거의 뭐 내가 살인범이에요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책에 해나가 나와서 말하는 씬은 단 한번도 없지만 얼마나 소름끼쳤을까.

  사실 프레디나 케인을 중심으로 한 소설의 줄거리는 (재미는 있었지만) 엄청나게 흥미로운 건 아니었다. 프레디가 케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딱히 나에게 와닿지는 않았으니까. 또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가 자신이 쓴 소설 내용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가 있단 걸 알게 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클리셰에 가깝다. 그런데 이를 액자식 구성으로 비틀어서, 소설 바깥에 살인마가 존재한다는 클리셰를 붙이니 갑자기 이 책이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편지 형식으로 된 표지부터, "woman in the library" 라고 쓰인 가상의 소설 표지, 그리고 리오의 편지들이 이 책을 읽는 경험을 무척 재밌는 것으로 만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인 리오처럼 프레디와 케인 주위에 벌어지는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고 있지만, 동시에 <살인편지> 소설의 독자로서 리오라는 인물이 누구일지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심지어 케인은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까지 낸 작가이고 이는 해나의 소설에서 중요한 단서이기도 해서, 이 모든 것을 지어낸 설라리 젠틸이 얼마나 이 구성에 치밀하게 공을 들였는지 알겠다.(TMI로 범인 추리에는 또 실패하긴 함🥲 케인, 윗, 마리골드 중 누가 범인일지 추리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긴 해서 추천!)

🔖처음에는 필요해서 살인을 저질렀지만 이후에는 살인을 그냥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진화하는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분명 그렇게 된 거라 확신해요. 타인의 목숨을 빼앗아보면서 어떤 존재를 손에 쥐고 있다가 촛불 끄듯이 죽여버릴 때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전율을 경험하기 전에 자기가 살인을 즐긴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나를 투영해서 해본 얘기예요, 당연한 말이지만. (p.304)

#살인편지#설라리젠틸#위즈덤하우스#서평단

⭐️출판사 위즈덤하우스(@wisdomhouse_official )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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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킹 라오
바우히니 바라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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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킹 라오>,바우히니 바라 #도서제공

🏷이 책은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매우 흡사해서 SF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솔직히 근 10년 안에 이런 세계가 생겨난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지금의 국가나 정부 개념이 사라지고, 마스터 알고리즘 "알고"가 정책, 사법, 행정을 책임지는 세상, 하나로 통일된 초국가적 기구가 모든 세계를 통치하는 세계 말이다. 사실 가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산불이 잡히지 않는 찜통 지구 현상은 이미 지금도 벌어지는 일이다.

책의 주된 내용은 미래사회 얘기보단 킹 라오의 인생을 위주로 펼쳐진다. 한 인물의 평전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는 인도 카스트 계급의 최하위계급인 달리트로 태어나, 코코넛이라는 IT기업을 세워 결국 주주위원회의 위원장까지 된 인물이다. 하지만 킹이 만든 "하모니카"라는 신 기술은 64명을 죽게 만들었고, 그는 위원장에서 물러나 몰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킹 라오의 숨겨진 딸인 아테나의 입을 통해 서술된다. 킹의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테나는 뇌 속에 숨겨진 하모니카, "클라리넷"을 통해 킹의 모든 과거를 공유받을 수 있었다. 인도인이면서 스탠포드 대학을 나와 IT 전문가로 성장한 작가의 이력을 생각하면, 왜 킹 라오라는 인물의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지 이해는 되지만.. 이보다는 책에서 짧게 나오는 "주주세계"나 "클라리넷" 기술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주주 세계가 오기 전 국가간 빈부격차는 줄어들었지만, 국가 안에서의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가난한 자들끼리의 경쟁을 부추겨 민족주의, 국수주의를 더욱 강화한다. 지금 당신이 가난한 것은 이민자들이 당신의 일자리를 뺏기 때문이라고. 트럼프 정부가 외국인의 하버드 유학, 연수를 금지하려고 시도하는 것 또한 이런 일들의 연장선상이다. 요즘 일어나는 일들과 너무 흡사하고 정말 미래에 있을 법한 세계가 그려진다.

이후 미 정부는 국가의 공공사업을 여섯개의 민간기업에 할당한다. 이들은 "이사회"를 만들고, 10년이 채 되지 않아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가가 이 이사회에 정부의 역할을 양도한다. 이렇게 초국가적인 기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슬픈건 주주세계에서 시민의 삶은 기업의 이익과 연계되어 있어서 사회자본을 얻으려면 기업을 거스를 수 없다. 주주세계에 반기를 드는 사람에겐 사회자본 점수의 하락, 그리고 하층민의 삶이 있을 뿐이다.

"알고"는 모든 사람의 기호와 능력을 파악해 적절한 일자리를 주고, 의식주를 보장해 주는 것 같지만 이는 오히려 원래 부유층이던 사람을 더 부유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이런 미래사회의 모습이나 엑스들의 반란을 좀 더 깊이있게 다뤘다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사실 마지막까지 하모니카와 아테나를 도입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킹 라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기 위해 아테나라는 장치를 택한 것일 테지만.. 디스토피아나 아포칼립스를 좋아하는 나로선 이 부분이 적게 나오는 것이 조금 아쉽다. 그래도 작가의 통찰력에 놀랐고, 현실에 실존하는 인물을 빌린 듯한 캐릭터들과 있을 법한 미래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게 끝날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저 레이스 아래 여기서 살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사실은 증거가 필요 없다. 우리는 여기 있었다. 얼마나 큰 행운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는 끝없이 답을 요구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위해? 무엇을 위해? 무엇을 위해. 하지만 땅에서 자라기 시작한 나무는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꽃이 피어나 지치고 무거워지면 꽃을 떨구면 그만이다. 우리가 살면서 겪은 온갖 수고로움은 어쩔 거냐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p.539)

⭐️출판사 문학수첩(@moonhaksoochup )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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