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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ㅣ 미 비포 유 (다산책방)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평점 :
📚<미비포유>, 조조 모예스 #도서제공
🏷예정된 슬픔과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또 서로의 삶을 바꾸는 기적같은 일을 보면서 나 또한 슬프고 행복했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는 루이자의 실직 때문이다. 루이자는 6년간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자 전신마비 환자 윌의 보조 간병인이 된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겼던 윌은 불운한 사고로 인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이다. 입만 열면 독설에다 노골적으로 루이자를 싫어하는 윌의 태도에 루이자는 매일매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그러나 윌은 점점 요란한 색과 희안한 패션으로 무장한, 조금은 이상한 여자 루이자에게 빠지게 되고, 루이자 역시 유머스럽고 다정한 윌을 사랑하게 된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특히 로맨스 소설의 경우), 그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서로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관계성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변하게 될 때. 그래서 루이자가 윌을 만나 처음으로 자막 있는 영화를 보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클래식 콘서트에 가서 음악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학교에 등록하고 해외를 나가는 그런 과정들이 정말 너무 좋았다. 스토트폴드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갇혀서, 가족을 위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루이자는 윌을 만나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윌 역시 죽음만을 기다리던 나날에서 벗어나 산책도 하고, 해외로 여행을 가는 등 루이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하게 로맨스 소설로 치부될 수 없다. 읽기 쉬운 문체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존엄사와 생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무거운 주제도 담겨 있다. 윌은 사고 당하기 이전의 삶과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존엄사를 반대하는 부모님에게 6개월의 유예기간을 주었고, 루이자는 이 기간 동안 윌의 마음이 바뀌길 바라며 윌의 부모님에게 고용된 것이다. 아이러니한건 이 존엄사에 대한 결정이 사고 이후로 윌이 처음 내린 주체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정말 작은 일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윌의 처지가 마음이 아프다. 내가 가볍게 논할 문제도 아니고, 윌의 선택에 옳다 그르다란 얘기도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까란 고민이 문득 들었다. 루이자가 자신이 윌에게 있어 삶의 이유가 될 수 없는지 묻고 거절당하는 장면은 너무 마음이 아프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를사랑하지만 그게 삶을 이어갈 이유로 충분하지 않다는 걸 듣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윌의 상황도 정말 슬프다.
새드엔딩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새드엔딩이나 해피엔딩 그 어느 것으로도 명확하게 규정이 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들이 이 결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루이자가 윌의 상실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소설을 전개한다. 루이자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윌의 편지를 읽으며 울고 웃는 마지막 장면은, 앞으로 루이자가 펼칠 새로운 삶을 응원하게 만든다. 미비포유로 끝나지 않고, 애프터유와 스틸미까지 꼭 다 읽어봐야겠다. 마지막 책 <스틸미>는 루이자가 자신의 모습을 찾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윌이 남긴 씨앗이 어떤 모습으로 루이자를 꽃피우게 할지 궁금하다.
🔖어떻게 알아요? 아무것도 안 해보고. 아무 데도 안 가봤는데.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길이 없었는데?(p.246)
🔖인생은 한번밖에 못 살아요. 단 한 번의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사는 게 인간의 의무예요. (p.301)
🔖당신 덕분에...덕분에 내가 꿈꿔보지도 못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당신이 아무리 고약하게 굴어도. 당신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요. 당신은 자신이 초라하게 쭈그러들었다고 느낄지 몰라도, 난 세상 그 누구
보다 그런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p.499)
🔖나는 깨달았다. 그 없이 사는 삶이 너무나 무서웠다. '어쩌다가 당신은 내 인생을 망쳐버릴 권리를 갖게 됐어요?'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왜 나는 당신 일에 발언권이 전혀 없는 거냐구요?'(p.556)
🔖새로운 세상에서 조금은 편치 않은 느낌이 들지도 몰라요. 사람이 안전지대에서 갑자기 튕겨져 나오면 늘 기분이 이상해지거든요.
🔖 당신 안에는 굶주림이 있어요, 클라크. 두려움을 모르는 갈망이 있어요. 대다수 사람이 그렇듯, 당신도 그저 묻어두고 살았을 뿐이지요. 스스로를 밀어붙여요. 안주하지 말아요. 줄무늬 타이츠를 당당하게 입고 다녀요.
🔖 여전히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호사스러운지 모릅니다. 그 가능성을 당신에게 선사한 이가 바로 나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맺힌 뭔가가 조금 누그러졌어요.(p.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