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홀리 : 무단이탈자의 묘지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2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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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홀리 : 무단이탈자의 묘지>, 닐 셔스터먼 #도서제공

🏷소설의 첫장을 읽은 순간,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날아갈지 궁금해졌다. 넷플릭스 드라마였다면 정말 밤새워 봤을지도 모른다! 1편에선 낯선 세계관을 소개하며, 희망의 불씨를 보여주었다면 2편은 세상이 더 퇴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게 바닥인줄 알았지? 아니야, 더 한 지옥이 있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박수를 치지 않은 박수도 레브로 인해, 세상은 언와인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열 일곱살의 언와인드를 금지하는 조치가 생겨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장기 해적과 암시장이라는 원치 않는 부산물을 탄생시킨다. 심지어는 언와인드가 아닌 아이들도 표적이 되어 거래된다. 세상이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을 때, 언와인드된 아이들의 뛰어난 능력만을 모아 새롭게 "리와인드"된 존재, 캠이 탄생한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이는 언와인드가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과 전혀 무관한 일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인 캠의 존재는 언와인드된 아이들이 인간이 아니라 장기에 지나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는 더 나은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한 믿음이자, 생명을 도구로만 보는 인간의 혐오스러움이다. 캠의 탄생장면, 그의 얼굴과 신체부위에 있는 솔기를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 솔직히 너무 경악스러웠다. 하지만 캠의 마음을 읽을수록 그 또한 그냥 이곳에 존재하게 되었을 뿐인 한 소년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역시 또 다른 피해자다.

<언홀리>는 무수히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어떤 식으로 취급하고 이용하는지 보여준다. "캠"은 언와인드 제도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레브"는 십일조들의 세뇌를 깨기 위해 우상화 되었으며, "리사"는 묘지의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가짜 공익광고에 나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했다.

참 잔인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작중 인물들은 끊임없이 고난을 이겨내고, 변화하고, 성장한다. 십일조로 살아가길 원했던 미라콜리나를 비롯해서 코너, 레브, 리사, 헤이든, 그리고 캠까지.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아이들에게 너무 마음이 쓰여서 단 한명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믿음이 4편까지 배신당하지 않기를 😭 (그치만 스타키는 아니다. 너어는....)

이 아이들이 내내 외쳤던 것은 자신들에게 자유의지가 있고,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캠은 무수히 많은 기억과 존재들 속에서 자신의 영혼은 어디있을지 고민한다. 리사에게 마음을 쓰던 것부터, 그에게 대수학이라는 능력을 준 "샘슨"에서 비롯된 것인데 과연 캠에게 영혼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내 답은 "그렇다"이다. 그가 리와인드 되어 만들어진 존재라 할지라도 "캠"이라는 자아가 존재함은 부정할 수 없다.

한편 <언홀리>에서 밝혀지는 중요한 사실은 하트랜드 전쟁과 언와인드 합의가 단순히 임신 중절을 둘러싼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실은 이중첩자였던 트레이스를 통해 코너는 능동적 시민 조직을 알게 된다. 그리고 2편 내내 이어지던 긴장감은 종장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폭발한다. 스타키가 황새 출신을 언와인드로부터 구하기위해 무단으로 행동하면서 사고를 치고 청소년 전담국은 묘지를 급습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제독이 남긴 유산을 지키고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코너는 레브의 도움으로 살아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선다. 리사는 능동적 시민의 프로그램을 따르길 거부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 의지대로 행동한다. 소설의 마지막은 평범하지만 특별한 웨이트리스의 도움으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떠나는 코너와 레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덕후는 또 가슴이 벅차오르고.. 서둘러 서평을 쓰고 3편을 읽기 위해 달려 나갑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애걸할 목소리조차 사라진다.
비명을 지를 정신도 사라진다.
바로 그 선명한 순간에.
<나는 존재한다>가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되던 순간에. (p.97)

🔖하지만 난 온갖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도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있어. 그때가되면, 우리가 이겼다는걸 알게 되겠지.(p.132)

🔖넌 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나한테 책임지라고 해? 난 그저 존재할 뿐이야.(p.397)

🔖우린 그냥 무단이탈자가 아니야! 우린 그냥 신체 부위가 아니야! 우린 온전한 인간이고, 역사는 이 시대를 부끄러워하며 돌아보게 될 거야!(p.571)

🔖세상에는 특별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어. 지금 너희는 내게 그런 특별하고 평범한 사람이 될 기회를 준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너희한테 고마워해야지.(p.587)

🔖그는 미라콜리나의 인생을 정의해 온 믿음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이며 그 사이에 있는 것은 그저 환상일 뿐이라는 믿음에. 회색이란 없다는 생각에.(p.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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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와인드 : 하비스트 캠프의 도망자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1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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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와인드1, 하비스트 캠프의 도망자>, 닐 셔스터먼 #도서제공

🏷인간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이렇게 재밌고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소설이 또 있을까. <수확자> 때도 그랬지만 삶과 죽음에 있어 정말 생각치도 못했던 충격적인 가정을 소설로 끌고 온다. 수확자에선 사람이 더이상 죽지 않아 지구가 포화된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죽음을 '수확'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여기선 임신 중절을 둘러싼 하트랜드 전쟁이 끝난 뒤 <생명법>이라는 끔찍한 법이 탄생한다. 임신 중절은 금지되는 대신, 부모는 13~18살의 자녀를 소급적으로 중절할 수 있다. 이를 "언와인드"라 하며, 신체의 모든 장기는 다른 사람에게 이식되어 사용된다.

언와인드의 사유는 무척 다양하다. 코너처럼 비행청소년으로 분류되어 언와인드 되기도 하고, 리사는 주립보호시설에서 특별함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언와인드 대상이 되었다. 레브는 부모가 신에게 바치는 <십일조>로, 평생을 언와인드 되기 위해 길러졌다.

생명파와 선택파가 모두 이 법에 만족했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끔찍하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얻은 아이를 누군가의 집 앞에 버리면, 그 집은 <황새 배달>된 아이를 키워야만 한다. 그렇게 키워진 아이들이 언와인드 되기 쉽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후반부에 나오는 언와인드 장면은,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지른 아이라도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이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덜 자랐다고 하지만, 삶을 선택할 권리는 부모가 아니라 그들에게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권속이나 물건이 아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언와인드들은 결국 어른들의 이기심과 사회 문제에 의해 희생된 아이들이다. 코너와 리사, 레브 모두 처음에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하지만, 이내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맞선다. 정신이니 영혼이니 하는 어려운 문제는 모르겠지만, 중요한건 그들이 살아있고 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어느 누구도 이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코너와 리사, 레브는 다른 의미로 언와인드들의 상징이 된다.

어떻게 보면 잔인하고 냉정한 책 속 세계를 견디게 해주었던 것은, 언와인드를 도와주는 숨은 어른들의 존재이다. 그들은 언와인드를 안전가옥에 숨겨 버려진 비행기의 묘지로 이송시킨다. 언와인드들은 그 곳에서 열여덟살까지만 버티면 성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코너와 리사가 만난 교사 해너, 소니아, 그리고 레브에게 살아가라고 말해주는 댄 목사님 모두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계속 곱씹게 되는 장면은 묘지로 가는 컨테이너 안에서 소년들이 나눴던 대화이다. 과연 몸의 모든 부분이 살아 있지만 다른 누군가의 안에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의 영혼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일까? 레브가 만난 '사이파이'는 자신이 이식받은 뇌 주인의 도벽을 이어받았고, 코너가 만난 트럭 운전사는 언와인드의 손기술을 기억해낸다. 보통 영혼은 뇌에 있고, 육체는 그것을 담는 그릇일 뿐이란 얘길 하지만 이 책에선 그렇지 않다. '나'라는 존재는 내 몸 구석구석에 담겨 있어서, 내 몸을 이식받은 사람들 몸 안에 '나'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게 된다.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이라는 심오한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언와인드, 하비스트 캠프, 박수도 등 닐 셔스터먼의 세계관은 낯설지만 손쉽게 빠져든다. 구구절절 세계관을 설명하지 않는 편인데도, 독자로 하여금 무리없이 세계관을 이해하게 만드는 능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다만, 상황이 좀 나아진다 싶었을 때 충격을 선사했던 전작을 생각하면 4권까지 전혀 예상 못한 전개가(특히 고난이..) 펼쳐질 것이라 예상된다. 그치만 어떤 이야기일지 너무 기대되잖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나만큼 오래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건.. 사람들이 완전히 선하지도 완전히 악하지도 않다는 거야 우리는 평생 어둠과 빛을 드나단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빛 속에 있어서 기쁘고. (p.168)

🔖"내가 언와인드 당하면, 내 눈은 사진사에게 갔으면 좋겠어."
"내 입술은 록스타에게 갈거야."
"이 두다리는 올림픽에 나갈거야."
"이 귀는 오케스트라 지휘자한테 갈 거야."
"내 배는 음식 평론가한테."
"내 이두근은 보더빌더에게."
"내 코는...아무한테도 안 가면 좋겠다."
비행기가 내려설 때, 그들은 모두 웃고 있다.(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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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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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도서제공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연애소설이 아니라 사랑하면서 겪는 정체모를 감정과 모순을 낱낱이 분석하는 심리 논문에 가깝다. "우정은 비겁의 한 형태이고, 사랑이라는 더 큰 책임과 도전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프루스트의 결론에 동의하는 여주인공 앨리스, 그녀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을 꿈꾼다. 앨리스에게 모든 걸 동의하진 않지만 꽤나 공감이 되는 감정들도 많았다. 사랑을 하게 되면 자기를 낮추거나, 단점을 끊임없이 돌아본다든가 하는 행동들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은 여러 철학이론을 가져와 사랑과 연애라는 모호한 덩어리를 잘개 쪼개고, 이름을 붙이고, 도식화하여 설명한다. 혹시 현재 애정전선이 힘든 사람이 있다면 자기계발서 말고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아마 눈에 씌인 콩깍지를 없애고, 원래의 자신을 좀 더 찾게 되지 않을까?

사실 책을 읽다보면 에릭에게 아무말도 못하는 앨리스가 너무 답답했다. 앨리스는 어느 파티에서 에릭을 만나는데, 그는 잘생긴데다 어른스럽고(나이가 일곱살이나 많은데 당연하겠지) 커리어적으로도 잘나가는 남자이다. 그녀는 외로운 런던생활에서 에릭과 연애를 하며 활력을 되찾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에릭이라는 사람을 자기가 '아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그는 감정을 꺼내어 보여주는데 약하고, 앨리스가 조금이라도 관계에 대해 진지한 얘길 할라치면 대화주제를 바꾼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에릭의 가장 큰 단점은, 상대방의 다양성이나 취향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내가 옳고, 당신이 이상한 취향을 가졌다고 치부하는 건 정말 최악이다.

🏷외모나 돈, 직장, 능력 등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는 것들 말고, 오로지 자신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앨리스의 감정은 공감이 된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봐주는 사람이라면, 사랑받기 위해 나를 꾸며낼 필요도 없고 상대방의 사랑이 식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이런 사랑은 너무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이다. 앨리스는 이런 열망과 이로 인해 비롯되는 자기비하에서 벗어나, 에릭과 자신의 관계를 고찰하고 돌아보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인상 깊었던 구절은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는 것이다. 앨리스는 필립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이 그의 앞에선 장난스럽고 재치있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에릭 앞에서 앨리스는 감정적이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여 남을 귀찮게 하는 사람일 뿐이다. 앨리스는 에릭이 자신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만든다는 걸 드.디.어 깨닫는다. 앨리스가 사랑이 식은 뒤에야 에릭이 노력을 더하게 된다는 것이 너무 뻔해서 놀랍지도 않다. 실상 우리의 모든 연애는 이렇게 시작하고 끝나기 때문에 이 책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던게 아닐까.

이 책은 소설보단 어디 논문이나 철학 에세이에 있을 법한 책이다. 어느 누가 연애를 이다지도 철학적이고 심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랑하면서 겪는 심리적인 갈등이나 모순을 기둥, 기찻길, 현수교 같은 독특한 소재들로 설명한다. 도표나 도식화된 그림이 많아 정말 신선했다. 사실 요즘 시대엔 앨리스처럼 사랑타령하는 여주인공은 그리 인기가 많지 않지만... 따분한 사랑타령하는 소설로 이 책을 치부하기엔 작가의 통찰력이 너무 아깝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연애하면서 자기 자신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p.171)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의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p.312)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싶은것, 말하고 싶어할 수 있는 것까지 것 타인이 결정한다는 증거다.(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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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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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도서제공

🏷뉴욕에선 카티야가 케이트가 되고, 이브가 이블린이 되는 데 아무런 대가가 들지 않는다. 화려한 맨해튼의 풍경과 부유한 상류층의 삶, 불빛이 꺼지지 않는 뉴욕의 밤을 배회하는 불안한 청춘들. 이 소설은 제목만큼이나 우아하고, 화려하며 눈을 뗄 수 없다. <순수의 시대>와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안 볼 수가 없는 책! 내 인생 책인🥹 <모스크바의 신사>에서도 그랬지만 흘러가버린 시대의 마지막, 혹은 화려하게 꽃 피우는 시대를 그릴 때 특히 빛나는 작가다.

<우아한 연인>은 대공황으로부터 10년이 지난 1930년대 후반 뉴욕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인 케이티에게 1938년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사람들을 만난 해이다. 먼저 하숙집에서 만난 이블린 로스. 그녀는 미국 중서부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할리우드 드림을 꿈꾸며 뉴욕으로 온 인물이다. 놀라울 정도의 미인이라고 소개되지만, 내가 볼때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도통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내놓는 대답들은 모두 재치있으며 대담하다.

케이티와 이브는 하숙집에서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새해 전날 밤 어느 재즈 바에서 '팅커'라는 부유하고 잘생긴 은행가를 만난다. 그는 케이티와 이브에게 뉴욕 사교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어진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인해 이브의 얼굴에 흉이 생기고, 팅커는 남은 일생 동안 그녀를 책임지기로 결정한다.

만약 이브가 다치지 않았다면 팅커와 케이티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이란 건 없지만 책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가정을 해보게 된다. 진부한 말이지만 순간의 선택은 이후 일어날 인물, 상황, 사건에 모두 영향을 끼친다. 우아한 연인은 그러한 선택과 우연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느꼈지만,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은 굉장히 우아하고, 세련되다. 이 책은 이브와 케이티가 뉴욕 사교계를 맛보고 그 화려함을 서술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뒤에 숨겨진 어두운 비밀이나 인물의 속물적인 부분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전혀 속물적이거나 허영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고, 그 인물의 매력을 떨어뜨리지도 않는다. 모든 비밀이 드러난 뒤에도 여전히 그 인물의 매력이 빛을 발한다는 점이 놀랍다.

모든 부를 타고 태어났지만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뛰어든 월러스 월콧, 누구보다 자유롭고 순수했던 디키 밴더와일, 그리고 그 어떤 선택과 행동에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앤 그랜딘까지.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모두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한 때 만났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지만 케이티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인물들이기도 하다.

케이티는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전시회에서 팅커 그레이의 사진을 발견한다. 중년의 끝자락에서 케이티는 과거를 뒤돌아 보게 되고, 우리 역시 1930년대의 뉴욕 맨해튼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케이티의 입을 통해 흘러나와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내가 느낀 케이티는 정말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들은 매우 담담하게 전개되지만, 그 안에 여러 감정과 사건들이 높은 밀도로 담겨 있어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다.

🔖하지만 내가 당신 나이라면, 캐리와 같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을 거예요. 제이크의 자
리를 차지하려고 애쓰겠죠.(p.180)

🔖타협을 모르고 목표를 추구하는 자세와 영원한 진리를 향한 탐구는 고귀한 이상을 지닌 젊은이들에게 확실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사람이 일상적인 것, 그러니까 현관 앞 계단에서 피우는 담배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먹는 생강 쿠키의 즐거움과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십중팔구 쓸데없는 위험 속에 몸을 담갔다고 보면 된다. 그때 아버지가 당신 인생의 결말을 앞두고 내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이 위험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반드시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아함이나 박학다식처럼 온갖 화려한 유혹들에 맞서서 소박한 즐거움을 지켜야 한다. (p.209)

🔖하지만 나는 아무리 우울할 때도 디킨스 소설을 읽다가 정거장을 지나칠 만큼 책에 몰입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210)

🔖우리 사이의 로맨틱한 상호작용은 진짜 게임이 아니라, 수정된 버전이었다. 두 친구가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도 보내고 조금 실전연습도 할 겸 해서 만들어낸 수정판.(p.299)

🔖어쩌면 이제 나도 완벽한 것들과 잠시 스쳤던 경험을 분해해서 보관함에 넣어둘 때가 된 것 같았다.(p.317)

🔖지금은 옆에 없는 옛 친구를 기분 좋게 돌아볼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건, 우연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
고의 선물이라고 봐도 좋으니까.(p.445)

🔖바람이 아무리 괴로워도 지금 이 자리에서 보는 맨해튼은 정말이지 현실 같지 않을 만큼 너무나 찬란하고, 밝은 악속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평생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실제로 그곳이 손에 닿지는 않을지라도.(p.500)

🔖하지만 나는 올바른 선택이란 원래 인생이 상실을 결정화시키는 수단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p.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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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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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도서제공

📙상해 치사로 2년을 복역하고 나온 '준이치'는 교도관 '난고'에게 사형수의 무죄를 같이 증명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준이치는 자신으로 인해 폭싹 주저앉은 집안의 사정을 생각하고 익명의 후원자가 제안했다는 거액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사형수 기하라 료는 사건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며, 남은 것은 공포의 계단을 오르던 기억 뿐이다. 준이치와 난고는 사건이 벌어진 위치에서 계단이 있을 만한 장소를 뒤지고 다닌다. 과연 그들은 사형수의 무죄를 밝힐 수 있을까.

🏷교도관 '난고'가 이 의뢰를 받아들인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두 번의 사형 집행 경험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 죄책감으로 인해 무고할 지도 모르는 사형수를 구원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제도가 폐지된 국가라 사형제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그 사형을 집행하는 이들의 고뇌에 대한 것은 더더욱. 이 책은 사형을 당하기 전 느끼는 공포나, 사형을 집행하는 이들의 고뇌가 절절하게 드러나 있어 우리 현실과 먼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5살,7살 어린 아이들을 강간하고 살해한 자는 죽어 마땅한가 라고 물어봤을때 머릿속으로는 그럴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그 사형을 집행하는 당사자가 되는 건 다른 문제다. 검사 입장에서도 내가 과연 진짜 범죄자에게 사형을 구형했는가 하는 의문이 항상 뒤따를 것이다.

또 사형을 집행하는 시기라던가, 사면의 기준이 너무 정치에 휘둘린다는 점도 문제이다. "죄지은 자는 죽어 마땅하다"라고 생각해도 그걸 입밖에 내는 건 다른 문제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형제도 폐지가 인도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책 속에 나오는 일본의 정치인들은 임기를 마치기 직전에나 사형 집행서에 도장을 찍게 된다. 이런 걸 보면 과연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범죄자의 사형을 바라는 피해자 유족들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사형제도 폐지는 너무 어려운 문제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던 부분은 바로 '개전의 정'이다. 이는 본인이 저지른 죄에 대해 얼마나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 가인데, 그 사람이 진심으로 참회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서야 인간의 내면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쯤 읽으면 참회 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가 싶다.

최근 프리다 맥파든의 책을 읽었던 터라 그만큼 박진감이 넘치는 책을 기대했는데, 이 책은 그와 반대로 후반부에 가서야 모든 것이 폭발하는 책이다.(사실 전개가 느린 책이 아니고 빠른 편인데, 내가 너무 도파민에 절여져 있는 듯..) 기억을 잃어버린 사형수의 무죄를 밝히는 것이라, 독자들도 준이치나 난고 만큼의 지식밖에 없다. 그래서 추리할 여지가 적고, 마지막에 가서야 모든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단 한장의 편지로 인해 내가 또 잘못 생각했구나 깨달았다😇..

왜 밀리언셀러인지 알 수 있던 소설. 그리고 정말 일본 추리 소설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자X의 헌신 때도 비슷하게 느꼈었는데, 잔잔하게 진행되다가 모든 것을 한순간에 터트리는 느낌이다. 다음엔 제노사이드도 읽어 봐야겠다.

#13계단#다카노가즈아키#황금가지#추리소설#일본소설
#서평단#책리뷰#책서평#책스타그램#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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