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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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도서제공

🏷뉴욕에선 카티야가 케이트가 되고, 이브가 이블린이 되는 데 아무런 대가가 들지 않는다. 화려한 맨해튼의 풍경과 부유한 상류층의 삶, 불빛이 꺼지지 않는 뉴욕의 밤을 배회하는 불안한 청춘들. 이 소설은 제목만큼이나 우아하고, 화려하며 눈을 뗄 수 없다. <순수의 시대>와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안 볼 수가 없는 책! 내 인생 책인🥹 <모스크바의 신사>에서도 그랬지만 흘러가버린 시대의 마지막, 혹은 화려하게 꽃 피우는 시대를 그릴 때 특히 빛나는 작가다.

<우아한 연인>은 대공황으로부터 10년이 지난 1930년대 후반 뉴욕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인 케이티에게 1938년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사람들을 만난 해이다. 먼저 하숙집에서 만난 이블린 로스. 그녀는 미국 중서부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할리우드 드림을 꿈꾸며 뉴욕으로 온 인물이다. 놀라울 정도의 미인이라고 소개되지만, 내가 볼때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도통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내놓는 대답들은 모두 재치있으며 대담하다.

케이티와 이브는 하숙집에서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새해 전날 밤 어느 재즈 바에서 '팅커'라는 부유하고 잘생긴 은행가를 만난다. 그는 케이티와 이브에게 뉴욕 사교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어진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인해 이브의 얼굴에 흉이 생기고, 팅커는 남은 일생 동안 그녀를 책임지기로 결정한다.

만약 이브가 다치지 않았다면 팅커와 케이티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이란 건 없지만 책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가정을 해보게 된다. 진부한 말이지만 순간의 선택은 이후 일어날 인물, 상황, 사건에 모두 영향을 끼친다. 우아한 연인은 그러한 선택과 우연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느꼈지만,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은 굉장히 우아하고, 세련되다. 이 책은 이브와 케이티가 뉴욕 사교계를 맛보고 그 화려함을 서술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뒤에 숨겨진 어두운 비밀이나 인물의 속물적인 부분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전혀 속물적이거나 허영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고, 그 인물의 매력을 떨어뜨리지도 않는다. 모든 비밀이 드러난 뒤에도 여전히 그 인물의 매력이 빛을 발한다는 점이 놀랍다.

모든 부를 타고 태어났지만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뛰어든 월러스 월콧, 누구보다 자유롭고 순수했던 디키 밴더와일, 그리고 그 어떤 선택과 행동에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앤 그랜딘까지.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모두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한 때 만났던,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지만 케이티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인물들이기도 하다.

케이티는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전시회에서 팅커 그레이의 사진을 발견한다. 중년의 끝자락에서 케이티는 과거를 뒤돌아 보게 되고, 우리 역시 1930년대의 뉴욕 맨해튼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케이티의 입을 통해 흘러나와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내가 느낀 케이티는 정말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들은 매우 담담하게 전개되지만, 그 안에 여러 감정과 사건들이 높은 밀도로 담겨 있어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다.

🔖하지만 내가 당신 나이라면, 캐리와 같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을 거예요. 제이크의 자
리를 차지하려고 애쓰겠죠.(p.180)

🔖타협을 모르고 목표를 추구하는 자세와 영원한 진리를 향한 탐구는 고귀한 이상을 지닌 젊은이들에게 확실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사람이 일상적인 것, 그러니까 현관 앞 계단에서 피우는 담배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먹는 생강 쿠키의 즐거움과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십중팔구 쓸데없는 위험 속에 몸을 담갔다고 보면 된다. 그때 아버지가 당신 인생의 결말을 앞두고 내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이 위험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반드시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아함이나 박학다식처럼 온갖 화려한 유혹들에 맞서서 소박한 즐거움을 지켜야 한다. (p.209)

🔖하지만 나는 아무리 우울할 때도 디킨스 소설을 읽다가 정거장을 지나칠 만큼 책에 몰입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210)

🔖우리 사이의 로맨틱한 상호작용은 진짜 게임이 아니라, 수정된 버전이었다. 두 친구가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도 보내고 조금 실전연습도 할 겸 해서 만들어낸 수정판.(p.299)

🔖어쩌면 이제 나도 완벽한 것들과 잠시 스쳤던 경험을 분해해서 보관함에 넣어둘 때가 된 것 같았다.(p.317)

🔖지금은 옆에 없는 옛 친구를 기분 좋게 돌아볼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건, 우연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
고의 선물이라고 봐도 좋으니까.(p.445)

🔖바람이 아무리 괴로워도 지금 이 자리에서 보는 맨해튼은 정말이지 현실 같지 않을 만큼 너무나 찬란하고, 밝은 악속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평생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실제로 그곳이 손에 닿지는 않을지라도.(p.500)

🔖하지만 나는 올바른 선택이란 원래 인생이 상실을 결정화시키는 수단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p.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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