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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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파시즘, 격동으로 가득찬 시대 속에서 온 몸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던 조각가와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삶과 죽음에 이르는 긴 서사를 이렇게 아름답고 초연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아직도 오렌지나무에 찬연한 빛이 들이치는 풍경이 보이고, 어디선가 미모사 향이 풍겨오는 듯 하다.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비밀스러운 사크라 수도원에서 천재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가 곧 죽음을 맞이하는데서 시작한다. 이 수도원에는 아무도 볼 수 없게 지하에 봉인된 <피에타>가 있다. 왜 바티칸이 이 석상을 꽁꽁 감추어 두었는지 알려면 조각가 미모와 그의 우주적 쌍둥이인 비올라에 대해 알아야 한다.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미모라 불리는 주인공은 왜소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고난 뒤 그는 피에트라달바에 있는 치오 알베르토의 공방에 맡겨진다. 그 곳엔 오르시니 가문이 있었고, 그 가문에는 한 번 읽고 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막내딸 비올라가 있었다. 여성에게 주어지는 모든 억압을 떨쳐내고 하늘을 날고자 했던 비올라와 왜소증을 가지고 태어나 조각가가 되고자 했던 미모는, 서로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전쟁이 벌어지고, 파시즘이 이탈리아를 장악하고 다시 무너지기까지, 파란만장한 시대배경 속에서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낸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님이 영화감독이라더니, 책장을 넘길때마다 영화 속 장면들이 펼쳐지는 듯 하다. 사크라 수도원장 파드라 빈첸초가 비밀스럽게 피에타를 보러 내려가는 장면이나, 피렌체에서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을 마주한 순간, 미모가 조각한 아름다운 조각상들, 그리고 오렌지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오르시니 가문의 재배지 풍경이 그렇다. 비올라가 말해주는 바람의 이름이나 미모가 피렌체에서 술집을 배회할때 들은 노래들은 소설의 서정적이고 쓸쓸한 풍경을 더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미모와 비올라의 타오르는 듯한 영혼이다. 미모는 왜소증을 타고나 평생 조롱거리의 대상이었지만 조각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파첼리 주교가 주문한 석상에서도, 파시즘 정부의 주문에도 꼭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성을 넣어 석상을 조각한다. 반면에 비올라는 어떠한가? 그녀는 명망있고 부유한 귀족의 막내딸로 태어났으나, 너무나도 똑똑한 두뇌는 그녀에게 있어 독약이나 다름없었다. 비올라는 자신에게 미모도 고칠 수 없는 비정상성이 있으며, 그건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 시대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녀가 다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날아오르려고 할 때, 다시 또 가족들과 주변의 외압에 의해 막히는 순간이 안타까웠다.

두 인물의 출발점은 매우 다르다. 하지만 결국 미모는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이 될 정도로 조각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마지막 피에타를 제작할때까지 '미모 비탈리아니' 자신으로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비올라가 620여쪽이나 되는 이 길고 긴 소설에서, 언제 비올라 본인으로서 삶을 살아낼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슬프다. 비올라는 항상 비올라였으나,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내진 못했기 때문에..

언제나 그랬듯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그 정도로 감동과 여운이 엄청난 책이고, 맘에 든 문장들도 너무 많아서 포스트잇을 엄청 붙여두었다. 또 미모가 피에타에 대한 비밀을 풀어주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충격과 감동, 강렬함 그 자체이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경과 한 사람의 생애를 높은 밀도로 다룬 책을 보고 싶다면 강력하게 추천! (맘에 들었던 문장들은 댓글에 계속!)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상하다. 나는 불행하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내가 젊었고, 나의 하루하루가 아름다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낮의 아름다움이 밤의 예지에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나는 오늘에서야 헤아린다.(p.42)
🔖트라몬타나, 시로코, 리베치오, 포넨테, 미스트랄 나는 이 모든 바람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아, 코르누토, 코르누토! 우리에게 출발에 대해 말해 줘. 다 같이 노래한곡 뽑자고!
번개가 칠 때 그 빛에 드러나는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들을 꼭보기를. (p.619)

*출판사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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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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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엑스트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재니스에게서 반짝임을 발견했으리라 믿는다. 나 역시 처음에는 재니스처럼 방관자의 입장에서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갔지만 점점 더 재니스가 궁금해지고,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재니스 또한 남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에서 벗어나 점점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 나가며, 평범하고 따분해 보이는 삶 속에서도 반짝임과 비범함이 숨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에는 재니스가 청소 도우미를 하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가 나온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캐리루이즈, 똑똑한 개 데키우스도 좋지만,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역시 베일에 휩싸인 B부인! 왕년에 사람도 좀 죽여본(?) 스파이였던 B부인는 남편 아우구스티누스가 죽은 뒤 대학에 마련된 집에 혼자 살고 있다. 비록 그의 아들 "아니아니안돼"는 무례하고 멍청하고 너무 별로지만, 이 부인은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고 무척 매력적이다.

내가 이런 류의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점은, 어떤 사람과 만나 관계를 맺게 되면 그것이 서로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좋은 쪽으로! 재니스와 B 부인은 진정한 친구가 되었고, 재니스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괴로움을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녀가 용기를 내서 한심한 남편을 떨쳐 버리고, 서먹한 아들 사이먼과 다시 대화를 나누고, 또 동생 조이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나누는 장면에선 가슴이 벅차오른다. 재니스는 그렇게 남의 삶을 바라보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 그동안 미뤄두었던 대화를 시작하고, 돌보지 않았던 자신의 감정을 정리해 보기로 결심한다.

한편, 재니스가 유언을 만나서 대화할때 그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길 간절히 비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도 책 좀 보는 사람으로서🤭 매우 공감이 되었다. 재니스가 좋아한다는 허영의 시장도 언젠가 한번 읽어보고 싶다. 베키 샤프와 어밀리아가 당최 누구길래! 이 책에 인용된 도서들을 더 잘 알았다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마치 나른한 주말 오후, 거실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즐기는 평온한 일상 같은 책이었다. 평범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와 소박하고 따뜻한 이 분위기가 너무 좋다..! 영국 국민 소설이라더니 역시 대중픽은 다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다. <오베라는 남자>,<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처럼,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주는 소설이었다. 물론 인생을 살다보면 슬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고, 앞으로 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며, 결국은 극복해낼 거라는 암시를 주는 따뜻한 소설이다. 너무 평범한 인생인가 싶어 이따끔 우울해지거나, 인생사에 지친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픈 책!

📌잔잔한 위로가 필요할때, 인생이 촉큼 따분하게 느껴질 때 추천!

🔖이야기는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우리 삶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에게도 비범한 힘과 선의가 있으며 그로 인해 늘 희망이 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p.94)

🔖어쩌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갖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순간을 찾는 것일지 모른다(p.128)

🔖전 평범한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일을 하는 걸 좋아해요. 그들이 용감하고 재미있고 친절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요.(p.176)

#이야기를지키는여자 #샐리페이지 #책추천 #소설추천 #책 #소설
#영국국민소설 #영국소설 #소설신간 #영국 #인생소설 #힐링소설
#휴남동서점 #어서오세요휴남동서점입니다 #미드나잇라이브러리 #오베라는남자#다산북스

*출판사(@dasanbooks )의 도서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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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야마다 무네키 지음, 김진아 옮김 / 빈페이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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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년 지구는 거대 소행성 2019JA1의 충돌로 멸망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소행성의 궤도가 바뀌면서 전 인류는 살아남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지하에 거대한 피난소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운다.

실험에 참가하는 이들은 10년 동안 지하 3천미터 아래 건설된 도시에
거주해야 하지만 실험이 끝나면 막대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거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실험기간이 끝나도 지하도시에서
나가지 않으려 한다.

결국 지하도시 eUC3는 헤르메스로 이름이 바뀌고,
모든 인류가 헤르메스 거주자들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한 소년이 지상으로 올라온다.

무려 18년이 지난 뒤에야.
그 소년을 제외한 240명의 사람이 모두 죽은 채로..

사람의 믿음과 공포가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킬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왜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 허무맹랑한 소린데도 불구하고
무작정 믿게 되는 그런 얘기들 말이다.

사실 소행성 충돌 확률이란 것은 철저히 과학적인 데이터에 의한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 인류는 라이디치오 운동으로 소행성을 부르고,
쿠루나 운동으로 소행성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다.

절박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근거 없는 믿음을 갖게 되고,
숫자나 데이터를 그 믿음과 연결지어 억지로 인과관계를 만든다.

헤르메스에서 주민들이 봤던 환영이나, 생존자 소년 루키가 봤던
환영들도 흥미로웠지만 2019JA1 소행성이 다시 위기로 떠올랐을 때
인류가 취하는 행동들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소설 중반부까지는 지하도시 헤르메스의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언제 풀릴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고, 후반부에는 말도 안되는
사회현상들에 기함하며 책장을 넘겼다.

정말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할지,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취할 지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지구멸망이나 거대 소행성 등 SF 소재의 탈을 쓰고 있지만
위기에 처한 인간의 심리나 불안을 매우 설득력있게 묘사하고 있다.
지하도시 헤르메스에 얽힌 비밀이나 결말 이후 인류의 모습 등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

#헤르메스#야마다무네키#빈페이지#지구멸망#소행성충돌
#책스타그램#북스타그램#책리뷰#SF소설

*출판사 빈페이지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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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는 세계 - 브릿G 단편 프로젝트
이명희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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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탐정물, 공포, 설화, 민담 등 다양한 장르의 단편들을 읽어볼 수 있다. 그야말로 황금가지에서만 나올 수 있는 단편집이 아닐지. 평소 이런 장르소설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마치 뷔페에 온 것처럼 재밌고 흥미로운 것들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을 듯 하다.

📙<당신이 보는 세계>, 이명희
소설의 배경은 아이렌즈로 세상을 보고, 머릿 속에 심은 내장칩과 브레인 네트워크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미래사회이다. 어느 날 인터넷에 한 괴담이 퍼지는데, 똑같은 벽을 보면서도, 누구는 전단지를 보고, 누구는 전단지를 아예 못보는 현상이 일아난다. 그리고 점점 사람들이 실종되고, 어느 장소에 누구와 있었는지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데..

약 30여쪽의 짧은 소설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세지와 상상력은 매우 강렬하다. 내장칩에 담긴 알고리즘이나 '헤이트 이레이저' 기능은 지금 세계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터넷은 우리의 검색 기록을 분석하여 관련 링크를 띄워주고, 유투브 알고리즘은 유사한 영상과 숏츠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점점 편향적인 의견이 담긴 뉴스를 보고, 게시글을 보며 한쪽으로 점점 치우쳐 진다. 이 단편소설은 "당신이 보는 세계"가 나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래서 그 차이를 수용하고 받아들여야함을 다시 한번 역설한다.

🔖이제 서로가 보는 세상만큼은 같은 모습이리란 것을. 서로가 보는 세상이 다른 세상일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같은 세상을 보기 위해 노력하리란 것를.(p.36)

📙<탐정 김희영희>, 배예람
집 안에 틀어박혀 은둔자의 삶을 살던 김희영에게, 그녀가 그리던 만화주인공 "김영희"가 나타난다. 희영은 본인 집에서 반상회가 일어나는 것를 막고자 영희와 함께 아파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미스러운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귀엽고 따뜻한 소설이다. 아파트에선 고지서를 뒤죽박죽으로 섞어 놓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영희는 본인 집에 사람을 들여놓기 싫단 이유로 집 밖을 나서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어느 새 영희의 코치 없이도 사람들에게 할 말을 건네는 희영을 보니 왠지 장하다는 느낌이 든다!

📙<신규 기능이 추가된 트위터에 가입하세요>, 담장
일론 머스크가 인수하지 않아 망해버린 트위터에 어느 날 신규 기능이 추가된다. 주인공 이목탁은 자신이 올린 글에 동시다발적으로 답글을 단 파록소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파록소와 나누는 관심사와 유대감이 좋아 그 이질감을 애써 무시하고자 한다..

재밌는 발상에 섬찟한 결말로 끝난다. 덕질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같은 것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을터! 소설 속에선 많은 사람들이 이 기능에 중독되어 유료로 전환되어도 구독을 끊지 못한다. 나의 니즈를 정확히 알고, 싫어하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 나만의 베스트 프렌즈가 있는데 어떻게 끊을 수 있겠는가. 그 친구는 심지어 나를 기다리게 하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말만 해준다. 이미 챗gpt를 커스터마이징하여 대화상대로 삼는 사람들이 많은데, 머지 않은 미래에 AI 친구기능도 대놓고 등장할지도..?
(작가님도 문목하 작가님의 <유령해마>와 <돌이킬 수 없는>을 좋아하시나보다🤭)

🔖당신이 내게 느꼈던 모든 감정은 실재해요. 허상에서 비롯되었든 진실에서 비롯되었든 간에요.(p.142)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늑하게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존재를 원했다는 것을 나는 감히 부정하지 못했다.(p.142)

📙<눈의 셀키>, 이아람
물개에서 사람으로 변하는 정령과 마녀, 이를 탐했던 귀족의 이야기.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절벽과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는 소설이다. 왠지 모르게 눈의 여왕이 생각난다!

📙<명랑한 함진아비>, 정비정
알고보니 장르가 공포소설이었던 건에 관하여🫢...화자인 '나'는 은이와 싸운 뒤 집에 돌아가면서 '함진아비'를 마주치게 된다. 이는 '나'와 '은이'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는다. 제목은 명랑한 함진아비이지만, 전혀 명랑하지 않으며 섬뜩하기만 하다. 이후 '나'와 아버지가 맞이하게 될 운명 또한, 사필귀정이라 말하면 너무 냉소적인가?

📙<외자혈손전>, 리리브
무명은 첩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가 강제로 정해준 혼처에 시집을 가야만 한다. 혼례식 전날 금지된 숲에서 뱀을 만나고 마침내 어머니와 자신에게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홍길동전의 성별을 반전시킨 단편으로, 무명이 가부장제를 부수고 자유를 찾는 결말로 끝난다. 옛날 전래동화나 설화, 민담을 요즘 트렌드로 재해석한 느낌이었다.

📙<나의 첫 장례식>, 박꼼삐
'나'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누나의 발자취를 따라 섬으로 간다. '나'의 누나는 눈물이 흐르는 대신 몸속의 이온이 결정이 되어 나오는 증세가 있어서, 너무 많이 울거나 울고도 약을 먹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수 있다. 이 부분이 이 소설이 장르소설이 맞구나를 느낄 수 있었고, 얼마나 슬펐길래 죽을 정도로 울었나 싶기도 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한켠
아버지 "아쟁"의 복수를 하기 위해 현나라 왕이 되고, 고나라 공주들을 무찌르고 결국에는 고나라 왕이 되는 해금의 이야기. 성별을 반전시켜 그려내는 소설이란 것 외에는....

📙<세 번째 도약> 달리
김은조는 상위 차원의 존재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다른 차원으로 가는 관문을 제작하고자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서혜민, 윤사라와 함께 "로라"를 통해 관문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고, "두 번째 도약"을 이루어낸디. "첫 번째 도약"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연화고 개척반이 넘어간 차원에서는 이제 우리 세상으로 넘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판타지와 SF의 그 중간 어드메에 있는 것 같은 소설.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는 듯한 전개방식은 이 소설의 흐름과 잘 맞는다. 차원을 넘어가는 방법으로 "공유몽"을 택한 것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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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스페이스
칼리 월리스 지음, 유혜인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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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인공지능AI와 우주를 개척지로 삼은 거대기업, 그리고 한 행성에서 일어난 의문사까지. 사건과 비밀들, 의문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시원하게 터지는 소설을 보고 싶을때 추천!

우주선 '심포지엄'은 과학 탐구에 집중하는 연구 도시를 만들기 위해 타이탄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블랙헤일로라는 테러 조직이 탑승객으로 위장하여 우주선을 폭파시키고, 심포지엄에 탄 대부분의 과학자가 목숨을 잃는다. 인공지능 AI 전문가였던 '헤스터 말리'는 근처를 지나던 파르테노페 의료선에 의해 구조되지만 온 몸의 절반이 인공기관으로 대체된다. 그녀는 그 대가로 천문학적인 빚을 져야 했고, 지구로 돌아가지 못한 채 히기에이아에서 보안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하루하루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던 중, 타이탄 연구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했던 과학자 데이비드의 연락을 받는다. 그 역시 말리처럼 파르테노페에 삶을 저당잡혀 "니무에"에서 시스템관리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메세지가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말리는 데이비드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말리는 데이비드가 남긴 메세지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니무에로 향한다. 거기서 무엇을 알게 될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로..

거대 기업 "파르테노페"와 일찍 달로 진출해 권력을 가진 아렌동크 가문, 행성 개척에 반대하는 "블랙헤일로" 등 작가가 창조해낸 세계관이 무척 매력적인 소설이다. 주인공 말리가 만들어낸 꼬마, AI 뱅가드 또한 한번 만나 대화하고 싶을 정도이다. 뱅가드는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줘"란 말 한마디에 타이탄보다 앞서 있던 개척지 유로파 연구팀의 AI를 납작뭉개버리고, 자신의 우수함을 뽐낸다.

<데드 스페이스>에 나오는 AI들은 단순히 인간의 명력을 입력값으로 받아 결과값을 출력해내는 기계들이 아니다. 그래서 말리는 뱅가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걱정하고, 무슨 일을 할지몰라 머리를 싸맨다. 해저 탐사를 하라고 했지만 연구소 주변을 벗어나기 싫어했던 뱅가드, 크리스틴 허드에게만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던 뱅가드까지.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말리가 너무 안타까웠고, 감당하기 어려운 비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데이비드 또한 슬펐다.

이만큼 자유의지를 가진 AI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윌 스미스의 <아이,로봇> 처럼 인간을 공격하고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을까? <데드 스페이스>에서 주인공 말리는 인간이 폭력적인 과제를 주었기 때문에 AI가 폭력적으로 변한 것이라 말한다. 지구 연합이 개발한 무기들과 그로 인한 무수한 학살들은 기계들 때문이 아니다. 학살하라고 명령한 사람들 때문이지.

이 소설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대 모습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핍받 받는 화성인이나, 거대 권력과 자본을 움켜쥔 파르테노페와 다른 여러 가문들의 존재. 민간독립체나 기업이 사적 군대를 조직하는 것을 영구적으로 금지한 군측 조약이 핵무기금지조약만큼이나 터무니없다는 것 또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결말은 말리가 의도했던 대로, 그녀가 바랐던 모습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마지막에 가서는 왠지 모르게 통쾌하기까지 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중반부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많다. 데이비드의 알 수 없는 메세지와 의뭉스러운 '니무에'의 대원들, 그리고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아이올리아 사건 등 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었다. 마지막에 하나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얼마나 흥미롭던지 SF와 범죄소설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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