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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는 세계 - 브릿G 단편 프로젝트
이명희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12월
평점 :
SF, 미스터리탐정물, 공포, 설화, 민담 등 다양한 장르의 단편들을 읽어볼 수 있다. 그야말로 황금가지에서만 나올 수 있는 단편집이 아닐지. 평소 이런 장르소설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마치 뷔페에 온 것처럼 재밌고 흥미로운 것들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을 듯 하다.
📙<당신이 보는 세계>, 이명희
소설의 배경은 아이렌즈로 세상을 보고, 머릿 속에 심은 내장칩과 브레인 네트워크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미래사회이다. 어느 날 인터넷에 한 괴담이 퍼지는데, 똑같은 벽을 보면서도, 누구는 전단지를 보고, 누구는 전단지를 아예 못보는 현상이 일아난다. 그리고 점점 사람들이 실종되고, 어느 장소에 누구와 있었는지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데..
약 30여쪽의 짧은 소설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세지와 상상력은 매우 강렬하다. 내장칩에 담긴 알고리즘이나 '헤이트 이레이저' 기능은 지금 세계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터넷은 우리의 검색 기록을 분석하여 관련 링크를 띄워주고, 유투브 알고리즘은 유사한 영상과 숏츠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점점 편향적인 의견이 담긴 뉴스를 보고, 게시글을 보며 한쪽으로 점점 치우쳐 진다. 이 단편소설은 "당신이 보는 세계"가 나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래서 그 차이를 수용하고 받아들여야함을 다시 한번 역설한다.
🔖이제 서로가 보는 세상만큼은 같은 모습이리란 것을. 서로가 보는 세상이 다른 세상일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같은 세상을 보기 위해 노력하리란 것를.(p.36)
📙<탐정 김희영희>, 배예람
집 안에 틀어박혀 은둔자의 삶을 살던 김희영에게, 그녀가 그리던 만화주인공 "김영희"가 나타난다. 희영은 본인 집에서 반상회가 일어나는 것를 막고자 영희와 함께 아파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미스러운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귀엽고 따뜻한 소설이다. 아파트에선 고지서를 뒤죽박죽으로 섞어 놓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영희는 본인 집에 사람을 들여놓기 싫단 이유로 집 밖을 나서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어느 새 영희의 코치 없이도 사람들에게 할 말을 건네는 희영을 보니 왠지 장하다는 느낌이 든다!
📙<신규 기능이 추가된 트위터에 가입하세요>, 담장
일론 머스크가 인수하지 않아 망해버린 트위터에 어느 날 신규 기능이 추가된다. 주인공 이목탁은 자신이 올린 글에 동시다발적으로 답글을 단 파록소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파록소와 나누는 관심사와 유대감이 좋아 그 이질감을 애써 무시하고자 한다..
재밌는 발상에 섬찟한 결말로 끝난다. 덕질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같은 것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을터! 소설 속에선 많은 사람들이 이 기능에 중독되어 유료로 전환되어도 구독을 끊지 못한다. 나의 니즈를 정확히 알고, 싫어하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 나만의 베스트 프렌즈가 있는데 어떻게 끊을 수 있겠는가. 그 친구는 심지어 나를 기다리게 하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말만 해준다. 이미 챗gpt를 커스터마이징하여 대화상대로 삼는 사람들이 많은데, 머지 않은 미래에 AI 친구기능도 대놓고 등장할지도..?
(작가님도 문목하 작가님의 <유령해마>와 <돌이킬 수 없는>을 좋아하시나보다🤭)
🔖당신이 내게 느꼈던 모든 감정은 실재해요. 허상에서 비롯되었든 진실에서 비롯되었든 간에요.(p.142)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늑하게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존재를 원했다는 것을 나는 감히 부정하지 못했다.(p.142)
📙<눈의 셀키>, 이아람
물개에서 사람으로 변하는 정령과 마녀, 이를 탐했던 귀족의 이야기.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절벽과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는 소설이다. 왠지 모르게 눈의 여왕이 생각난다!
📙<명랑한 함진아비>, 정비정
알고보니 장르가 공포소설이었던 건에 관하여🫢...화자인 '나'는 은이와 싸운 뒤 집에 돌아가면서 '함진아비'를 마주치게 된다. 이는 '나'와 '은이'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는다. 제목은 명랑한 함진아비이지만, 전혀 명랑하지 않으며 섬뜩하기만 하다. 이후 '나'와 아버지가 맞이하게 될 운명 또한, 사필귀정이라 말하면 너무 냉소적인가?
📙<외자혈손전>, 리리브
무명은 첩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가 강제로 정해준 혼처에 시집을 가야만 한다. 혼례식 전날 금지된 숲에서 뱀을 만나고 마침내 어머니와 자신에게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홍길동전의 성별을 반전시킨 단편으로, 무명이 가부장제를 부수고 자유를 찾는 결말로 끝난다. 옛날 전래동화나 설화, 민담을 요즘 트렌드로 재해석한 느낌이었다.
📙<나의 첫 장례식>, 박꼼삐
'나'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누나의 발자취를 따라 섬으로 간다. '나'의 누나는 눈물이 흐르는 대신 몸속의 이온이 결정이 되어 나오는 증세가 있어서, 너무 많이 울거나 울고도 약을 먹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수 있다. 이 부분이 이 소설이 장르소설이 맞구나를 느낄 수 있었고, 얼마나 슬펐길래 죽을 정도로 울었나 싶기도 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한켠
아버지 "아쟁"의 복수를 하기 위해 현나라 왕이 되고, 고나라 공주들을 무찌르고 결국에는 고나라 왕이 되는 해금의 이야기. 성별을 반전시켜 그려내는 소설이란 것 외에는....
📙<세 번째 도약> 달리
김은조는 상위 차원의 존재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다른 차원으로 가는 관문을 제작하고자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서혜민, 윤사라와 함께 "로라"를 통해 관문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고, "두 번째 도약"을 이루어낸디. "첫 번째 도약"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연화고 개척반이 넘어간 차원에서는 이제 우리 세상으로 넘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판타지와 SF의 그 중간 어드메에 있는 것 같은 소설.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는 듯한 전개방식은 이 소설의 흐름과 잘 맞는다. 차원을 넘어가는 방법으로 "공유몽"을 택한 것도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