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구슬의 아름다운 점은 신앙심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서도 자신을 불가지론자라고 생각했다. 저 구슬이 말하듯이 우리가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는 사실은 다들 안다. 비록 그 사실은 늘 체감하지는 못할지라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육신의 아름다움은 찰나고, 뼈는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 P155

이번 사건에는 나름의 체계가 있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우연히 선택된 게 아니야. 그리고 프랭크가 제일 먼저 살해됐어. - P192

그는 아는 수사관이 많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던 피셔는 객관적으로 볼 때 제시카가 꽤 미인이며 외견상으로는 자신의 아내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피부색이 같고, 광대뼈가 도드라졌으며, 눈은 연갈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어떤 감정이 드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약간 흥미가 생겼을 뿐이었다. 이 여자도 자신과 아내처럼 군인 출신인지 궁금했다. 그녀에게는 군인의 표정이 있었다.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도 궁금했다. 피셔의 이런 궁금증은 누군가의 부고 기사를 읽을 때와 똑같았다. 지금 그는 죽은 여자를 보는 셈이었다. 그가 이 일을 수락한 순간, 제시카는 죽은 목숨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경제적으로든 다른 면으로든 그의 가족의 삶은 더 안정되었다. 그게 세상의 이치였고 늘 그래왔다. - P197

사진 속 그녀의 이목구비를 머릿속에 새기며 피셔는 그녀의 죽음과 자기 가족이 누릴 안전 사이의 방정식을 좀더 생각했다. 그가 의뢰를 수락할 때마다 거치는 의식의 일부였다. 이 방정식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비록 인간은 간혹 잊기도 하지만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세상은 잔인하고 냉혹하다. 이 사실 역시 미국인들은 간혹 잊는다. 모두에게 돌아갈 몫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내가 갖든가 아니면 남들이 갖든가 둘 중 하나다. 이는 내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사 이래 늘 그런 뜻이었다. 이 세상에 가족을 보호할 수단이 돈만 있는 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는 하다. 피셔는 그렇다고 확신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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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과 운명은 하나의 개념에 붙은 두 개의 이름이라고 윌리엄 뷜로 굴드는 썼지만, 으레 그랬듯이 그는 이 점에서도 보기 좋게 틀렸다. - P14

그의 비릿한 물고기들을 만나면서 나는 우리가-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영혼이 끝없는 부패와 재창조 과정 속에 있다고 믿게 되었으며, 이 책이 내 심장의 퇴비 더미 얘기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들뜬 펜으로도 그때의 황홀함, 그 경이로움에는 다가갈 수 없다. ‘물고기 책‘을 펼친 순간 그 강렬함에 압도되어 나머지 세계- 세계!-가 암흑으로 곤두박질하고, 낡은 책갈피에서 뿜어져나온 빛만이 놀란 두 눈으로 들어와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유일한 빛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 P14

어쩌면 일 없이 놀았기 때문에 더 기적에 민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특별히 보고자 하는 것이 없었기에 성모의 발현을 목격했던 포르투갈의 가난한 시골 소녀처럼, 나 또한 주변 세상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P14

어쩌면 우리는 기적을 본다든지 환상을 본다든지 하는, 우리 자신이 여태껏 알고 있는 바와는 다르게 더 큰 존재라는 걸 이해하는 능력을, 그 육감을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화는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역행해왔으며, 이미 우리는 애처롭고 멍청한 물고기인 건지도 모른다. - P15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삶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러분에게는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나는 진실을 소중히 여긴다. 하지만-죽고 나서야 윌리엄 뷜로 굴드의 끝없는 무익한 질문으로부터 벗어난 물고기들에게 그가 그 뒤로도 끈질기게 물었던 대로 물어보자면- 어디서 진실을 찾을 것인가? - P16

색의 경이가 그가 속한 세계의 참상을 상쇄해 주었을까? - P28

"역사는요, 해밋 씨, 눈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역사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짜에는 아무것도 없지요." - P31

"게다가 사료를 검토해보면, " 교수는 계속 말을 이었지만 그때쯤 나는 그가 ‘물고기 책‘을 혐오한다는 것을, 이야기가 아닌 사실 속에서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을, 그에게 역사란 현재에 대한 침울한 체념의 구실에 불과함을, 그런 머리 모양을 한 남자는 얄팍한 향수에 젖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경향은 삶이 자기 자신처럼 따분하다는 감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음을 알아차린 터였다. - P33

지금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물고기 책‘은 자기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중이었으며, 내게서 끝이 났으니만큼 역설적으로 다른 이들에게서 시작되고 있었다. - P39

그러나 몇 개월이 흐르자 나는 끔찍한 진실을 대면해야 했다.
한없이 경이롭고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끝없이 증식하며 펼쳐지는 ‘물고기 책‘은 사라졌다. 나는 근본적인 무엇을 잃었고 그 대신 기이한 전염병에, 지독한 짝사랑에 감염되었다. - P40

책을 만든다는 것은, 설령 그것이 지금 여러분이 읽는 이 형편없는 책처럼 불완전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책장 속에 살아 있는 이들을 향해 우리가 느껴야 할 적절한 감정은 사랑뿐임을 깨닫는 일과도 같다. 어쩌면 책을 읽고 쓰는 행위는 인간 존엄성에 남은 최후의 방어선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행위가, 이 가차없는 굴욕의 시대에 신마저 증발되어버리기 이전, 신이 우리에게 깨우쳐주었던 것을 다시금 일깨우기 때문이다-우리가 우리보다 더 큰 존재임을, 우리에게 영혼이 있음을, 그보다 더 큰 것도 있음을. - P42

홍 선생이 말한다. 한 권의 책이란 최초에는 삶을 이해하는 새로운길-독창적인 우주-일 수도 있지만, 머잖아 아첨꾼들의 과찬과 동시대인의 경멸을 받으며 두 편 중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 저술사의 각주로 전락한다고. 책의 운명은 가혹하며 책의 숙명은 부조리하다. 독자들에게 무시당하면 사멸하고, 후대의 승인을 받으면 영원히 곡해될 운명에 처하는 것이다. 또 그 저자들은 처음에는 신이 되고, 그다음에는 필연적으로, 그들이 빅토르 위고가 아니라면, 악마가 된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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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믿어. 너한테 중요한 게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중요치 않아. 그 나이 먹도록 그것도 모르다니." - P23

그에게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해나의 말은 일리가 있지 않을까? 그 말로 그의 삶에서 많은 부분이 설명될 것이다. - P23

그는 눈에 띄지 않게 주변 환경과 섞이면서 늘 목표물을 시야 주변에 두는 법을 정확히 알았다. - P38

바텐더는 왔다가 떠나기 마련이다. 아내도 그렇고 세월도 그렇다. - P48

현실 세계가 꿈속 세상과 섞이며 하나의 장소, 즉 그가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고 그 세상이 급속도로 종말을 맞이하는 듯했다. - P51

"나도 놀랐어요. 형사 일을 오래해왔는데 복잡해 보이는 살인사건일수록 대부분 알고 보면 단순했거든요." - P147

샘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잉글랜드에 자주 갔지만 거기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걸 알고있었다. 하지만 뉴잉글랜드에서는 일할 수 있었고, 메인주의 한 마을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삶이 자신의 숙명인 척하면서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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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진정으로 집이었고 그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던 간에 그들의 가정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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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렐 부인이 둘째 아들에게 느끼는 친밀함은 좀더 섬세하고 미묘한 것이었고 첫째 아들에 대해서처럼 열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 P175

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게 되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는 돈을 그러모아 가방에 넣고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왔다. 그는 이런 일들에서 저주받은 자의 고통을 겪었다. - P179

얘야, 누군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네가 애기같이 되는 거야. - P182

그리고 그녀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아들을 위로했다. 그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민감한 것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때때로 그의 눈에 담긴 분노는 그녀를 일깨우고 그녀의 잠자던 영혼이 깜짝 놀라 일순간 머리를 들어올리도록 만들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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