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는 수사관이 많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던 피셔는 객관적으로 볼 때 제시카가 꽤 미인이며 외견상으로는 자신의 아내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피부색이 같고, 광대뼈가 도드라졌으며, 눈은 연갈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어떤 감정이 드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약간 흥미가 생겼을 뿐이었다. 이 여자도 자신과 아내처럼 군인 출신인지 궁금했다. 그녀에게는 군인의 표정이 있었다.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도 궁금했다. 피셔의 이런 궁금증은 누군가의 부고 기사를 읽을 때와 똑같았다. 지금 그는 죽은 여자를 보는 셈이었다. 그가 이 일을 수락한 순간, 제시카는 죽은 목숨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경제적으로든 다른 면으로든 그의 가족의 삶은 더 안정되었다. 그게 세상의 이치였고 늘 그래왔다. - P197
사진 속 그녀의 이목구비를 머릿속에 새기며 피셔는 그녀의 죽음과 자기 가족이 누릴 안전 사이의 방정식을 좀더 생각했다. 그가 의뢰를 수락할 때마다 거치는 의식의 일부였다. 이 방정식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비록 인간은 간혹 잊기도 하지만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세상은 잔인하고 냉혹하다. 이 사실 역시 미국인들은 간혹 잊는다. 모두에게 돌아갈 몫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내가 갖든가 아니면 남들이 갖든가 둘 중 하나다. 이는 내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사 이래 늘 그런 뜻이었다. 이 세상에 가족을 보호할 수단이 돈만 있는 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는 하다. 피셔는 그렇다고 확신했다. -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