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윤도의 세계는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내 비밀의무게에 짓눌려 남들도 자신의 비밀을 짊어지고 살고 있을 거라는생각을 하지 못했다. 짐작도 하지 못할 만큼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 P125

때때로 절대 과거가 되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 P131

학교라는 사회가 야생이나 다름없으며 다층적인 권력관계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 삶이라는 게 한 발짝만 잘못 내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자각이 없다는 점. 순수의 시절에나 간직할 수 있는 맑은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 태리의 그런 투명함이 나는 언제나 불편했다. 그 맑은 얼굴에 보기 흉하게 구겨진 나의 내면이 자꾸만 비쳐 보이는 것 같아서.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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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가 말했어." 다마루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 고" - P36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거지. 만일 거기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이야기의 어딘가에서 발사될 필요가 있어. 체호프는 쓸데없는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어." - P36

아오마메는 탄환이 장전된 권총을 받아들고 그 무게가 불어난 것을 깨달았다. 아까처럼 가볍지는 않다. 거기에는 확실히 죽음의 기척이 있었다. - P84

인간에게 죽을 때라는 건 아주 중요한 거야. 어떻게 태어날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선택할 수 있어. - P87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는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영화와는 달라. 영화에서는 다들 깨끗하게 죽지. - P87

"돈은 필요 없어. 이 세상은 돈보다 오히려 서로 빚을 주고받는 걸로 돌아가거든. 나는 빚지는 건 싫으니까 가능한 한 빚 받을 데를 많이 만들어두지." - P89

"체호프는 뛰어난 작가지만 그의 방식만이 유일한 건 아니야. 당연한 얘기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총이 모두 다 불을 뿜는 건 아니야." - P91

자신이 지금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의식만으로도 세계가 조금 달라 보였다. 주변 풍경에 기묘한 낯선 색감이 더해졌다. - P92

모든 총이 다 불을 뿜는 건 아니야, 아오마메는 샤워를 하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총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야. 여긴 터진 틈과 부정합성과 안티클라이맥스로 가득한 현실세계야. - P92

이따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깜박 잊을 뻔하기도 했다. 이건 진짜 현실일까. 자신에게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면, 다른 어디에서 현실을 찾아야 할지 그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선은 이것을 유일한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어떻게든 이 현실을 살아낼 뿐이다. - P95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아오마메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 두려운 것은 현실이 나를 따돌리는 것이다. 현실이 나를 두고 가버리는 것이다. - P95

과거를 아무리 열심히, 면밀하게 다시 바꿔 쓴다 해도 현재 나 자신이 처한 상황의 큰 줄거리가 변하는 일은 없다. 시간이라는 건 인위적인 변경은 모조리 취소시켜버릴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가해진 수정에 다시금 새로운 수정을 덧칠하여 흐름을 원래대로 고쳐갈 게 틀림없다. 다소의 세세한 사실이 변경되는 일은 있다 해도, 결국 덴고라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덴고일 수밖에 없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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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인간관계에 뒤엉키는 일 없이, 규칙에 얽매이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않고, 혼자 자유롭게, 아주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웬만한 불편은 참아낼 용의도 있었다. - P535

미래도 언젠가는 현실이 돼. 그리고 그건 또 금세 과거가 되지. - P543

"올바른 역사를 박탈하는 것은 인격의 일부를 빼앗는 것과 똑같은 일이지. 그건 범죄야." - P544

"우리의 기억은 개인적인 기억과 집단의 기억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거야." 덴고는 말했다. "그 두 가지 기억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지. 그리고 역사라는 건 집단의 기억을 말하는 거야. 그것을 빼앗으면, 혹은 고쳐 쓰면 우리는 정당한 인격을 유지할수 없어." - P544

"저지른 쪽은 적당한 이론을 달아 행위를 합리화할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어. 보고 싶지 않은 것에서 눈을 돌릴 수도있지. 하지만 당한 쪽은 잊지 못해. 눈을 돌리지도 못해. 기억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대로 이어지지. 세계라는 건 말이지, 아오마메 씨, 하나의 기억과 그 반대편 기억의 끝없는 싸움이야." - P623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다는 게. 나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는 게." - P624

아오마메는 말했다. "티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와 같아.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나 감정은 오르락내리락해. 빛나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 자리 그대로야." - P626

"하지만 과거를 바꿔 쓰면 당연히 현재도 바뀌어. 현재라는 것은 과거가 모이고 쌓여서 이루어진 거니까." - P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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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물은 같아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건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을 거예요. 그 당시는 밤의 어둠이 훨씬 더 깊었을 테고, 달은 그만큼 더 환하고 크게 빛났겠지요.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때 사람들은 레코드나 테이프나 콤팩트디스크가 없었어요. 일상적으로 내가 듣고 싶을 때마다 음악을 이렇게 정리된 형태로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들에게 음악을 듣는다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었을 거예요." - P455

"앞일은 누구에게나 미지의 영역일세. 지도는 없어. 다음 모퉁이를 돌았을 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 모퉁이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어. 짐작도 못 하지." - P492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건 에리야.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것은 움직일 필요가 없어. 움직이는 건 그 주위의 모든 것이지." - P502

"목적지가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타고 달린다. 어느 지점까지는 같은 길이지만 그다음 일은 알 수 없다......" - P503

올바른 동기가 언제나 올바른 결과를 몰고 온다고 할 수는 없다. - P513

옛날부터 그 비슷한 사기행위는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어왔지요. 수법은 언제나 똑같아요. 그런데도 그런 비열한 사기는 시들 줄을 모릅니다.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이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에요. -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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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다 잃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관계도 있는 법이니까. - P82

그때, 그 눈물의 시간을 통해 무늬는 진심이라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떤 형체가 실은 매우 연약하다는 진리를 배웠다. - P85

사는 건 때때로 초콜릿처럼 달콤하지만 대부분 쓰고 힘들다. - P90

결핍은 인간을 쪼그라들게 했다. 특히나 생존과 직결된 문제는 사람을 더욱 방어적으로 만들기 마련이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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