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들, 흐르는 기억들이 얼마나 소중한가 깨닫는 순간은 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이다. - P277

그만큼 현실에서 소중한 것을 ‘상실’하는 마음은 상상으로 대처할 수 없는 거대한 결핍이 된다. 그 상실은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다. 쌍둥이 자매를 상실하든 대륙이 침몰하든 사라져가는 것들, 소멸해가는 것들은 모두 절실하고 소중하다. - P278

니체의 영원회귀는 인간의 역사는 목적을 향하여 직선으로 향한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인간의 역사는 직선이 아니며, 또한 원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인간의 삶, 지구의 생명은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규칙하게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다. 과거에 있던 사건들은 지금 일상과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 P286

일기란 과거의 역사와 오늘의 나날을 기억하는 일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일기를 쓰듯 같은 일의 반복이지만, 그 영원한 반복의 관계를 알고 오히려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의 나날을 지낼 수 있다는 암시를 이 소설은 독자에게 건넨다. - P288

우물은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잇는 경계에 있다. - P308

우물은 죽음의 공간이고, 초원은 삶의 공간이다. 초원 속에 우물이 있다는 것은 상실과 허무 혹은 죽음이 삶의 일부이며, 인간은 트라우마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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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악행을 저지른 자는 아무리 막으려 해도 그것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을 두려워하듯이, 남몰래 선행을 한 사람은 자신의 뜻과는 달리 그 일이 밝혀지리라는 사실을 생각해야만 하지요.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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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고 나면 현실에서 체험한 모든 ‘기억’을 잊고, 마음까지 없어진 채 영원한 평화의 마을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 - P215

융은 그림자를 정면으로 만나야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융의 견해에 따르면 그림자를 직시할 때 "자신의 그림자를 통찰하여 얻어지는 이익은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인식함에서 오는 겸손함"을 얻을 수 있다. 그림자를 직접 대하고 페르소나와 섀도가 일치할 때 인간은 비로소 성숙한다고 융은 본다. - P231

신용카드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물품 중 하나다. 모든 신용카드를 태우는 행위는 이 세상과 ‘관계’를 정리하는 의식이다. - P235

"너, 지금 어디야?" / 이 질문은 인간이 모든 순간에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이다. 성경에서 이 질문은 절대자가 인간에게 물은 최초의 질문이기도 하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장 9절)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고 인간이 숨자, 절대자가 인간에게 물은 최초의 질문이다. - P240

인간은 늘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삶의 자리를 물어야 한다. - P241

하루키 소설에서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 P241

현실에서 육체는 소멸해도 영혼은, 그 의식은 어딘가에서 영원히 살아남은 것이다. - P245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는 기독교의 부활이나 불교의 윤회와 다르다. 영원회귀는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의 사상인 동시에 ‘일회성의 연속‘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원성의 연속에 놓여 있다. 영원회귀를 긍정한다는 것은 반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세계의 원인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아니다. 주체는 영원회귀의 한 원인이 되고, 영원회귀의 결과다. 영원회귀는 ’소멸’과 ‘생성‘의 반복이다. - P246

‘나’라는 존재는 육체가 죽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삶이 동일하게 무한 반복된다면, 따분한 일상을 반가운 우연으로 받아들이고 즐겁고 진중하게 살아야 한다. 죽고 끝나는 삶이라면 그냥 가볍게 살아도 된다. 그러나 영원히 남는다면 ‘디오니소스적인 긍정’의 마음을 품고 모든 순간을,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로 살아야 한다. 무한한 즐거움, 무한한 책임이 영원회귀 사상의 알짬이다. 이것이야말로 허무를 극복하는 적극적 허무주의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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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테는 함께 살아갈 사람들의 성격은 아무리 빨리 알아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또한 그들에게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용서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 P74

한 인간이 베일을 벗고 본래의 매력을 드러내며, 새로운 환경에 자신의 개성을 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가 더욱 우아해지면서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고 느꼈다. - P75

무언가를 얻는 대신에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를 제대로 헤아린다는 건 참으로 어렵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거부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고, 목적은 놓쳐 버린 채 수단에 기뻐하지. 온갖 불유쾌한 일이 겉으로 드러나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치유하려고들 해. 그렇게 된 근원이 어디에 있고 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알아보지도 않고서 말이야. 그래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는 아주 현명하지만 내일 그 다음의 미래는 거의 내다보는 일이 없는 자들과는 의논하기가 어려워. - P79

공공시설을 지을 경우 어떤 자는 이익을 보고, 어떤 자는 손해를 본다면 그것을 조정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지. 그래서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 모든 것이 절대 권력에 의해 추진되어야 하는 걸세. - P80

사업이란 춤과도 같다. 같은 걸음을 걷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기 마련이며, 서로 간의 호의도 거기서 생겨나는 법이어서 샤를로테는 대위를 더 가까이 알게 된 후로는 그에게 진정으로 호의를 베풀었다. - P83

원래부터 서로 호감을 가진 사람들도 법이 그들을 묶어 놓으면 더욱 잘 결합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모양이 서로 꼭 맞는 돌들도 이러한 접착력을 통해 더욱 잘 하나로 결합됩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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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죽이기 위해 쥐는 죽음을 선택한다. 쥐의 죽음은 개인을 베제한 거대 담론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일까. 일본이 저지른 비극의 역사와 개인의 삶이 전혀 관계없다고 외면할 수 없는 관계를 드러낸 설정으로 보인다. - P196

‘나’의 관점으로 보면 ‘양을 쫓는 모험’은 과거를 쫓는 체험을 통해 그 시기로부터 마비된 자신의 감각, 주체성을 일깨우는 사건이다. 양을 죽여, 일본을 근본부터 지배하고 있는 권력 시스템의 운명을 정지시키고 싶은 무의식이 하루키의 작가 의식이다. - P196

하루키는 ‘양을 쫓는 모험’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번져가는 폭력적 우익 사상을 경고한다. 양으로 상징되는 악이 한 개인에서 다른 개인으로 옮아가며 확산해가는 구조를 보여준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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