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고 나면 현실에서 체험한 모든 ‘기억’을 잊고, 마음까지 없어진 채 영원한 평화의 마을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 - P215

융은 그림자를 정면으로 만나야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융의 견해에 따르면 그림자를 직시할 때 "자신의 그림자를 통찰하여 얻어지는 이익은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인식함에서 오는 겸손함"을 얻을 수 있다. 그림자를 직접 대하고 페르소나와 섀도가 일치할 때 인간은 비로소 성숙한다고 융은 본다. - P231

신용카드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물품 중 하나다. 모든 신용카드를 태우는 행위는 이 세상과 ‘관계’를 정리하는 의식이다. - P235

"너, 지금 어디야?" / 이 질문은 인간이 모든 순간에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이다. 성경에서 이 질문은 절대자가 인간에게 물은 최초의 질문이기도 하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장 9절)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고 인간이 숨자, 절대자가 인간에게 물은 최초의 질문이다. - P240

인간은 늘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삶의 자리를 물어야 한다. - P241

하루키 소설에서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 P241

현실에서 육체는 소멸해도 영혼은, 그 의식은 어딘가에서 영원히 살아남은 것이다. - P245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는 기독교의 부활이나 불교의 윤회와 다르다. 영원회귀는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의 사상인 동시에 ‘일회성의 연속‘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원성의 연속에 놓여 있다. 영원회귀를 긍정한다는 것은 반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세계의 원인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아니다. 주체는 영원회귀의 한 원인이 되고, 영원회귀의 결과다. 영원회귀는 ’소멸’과 ‘생성‘의 반복이다. - P246

‘나’라는 존재는 육체가 죽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삶이 동일하게 무한 반복된다면, 따분한 일상을 반가운 우연으로 받아들이고 즐겁고 진중하게 살아야 한다. 죽고 끝나는 삶이라면 그냥 가볍게 살아도 된다. 그러나 영원히 남는다면 ‘디오니소스적인 긍정’의 마음을 품고 모든 순간을,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로 살아야 한다. 무한한 즐거움, 무한한 책임이 영원회귀 사상의 알짬이다. 이것이야말로 허무를 극복하는 적극적 허무주의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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